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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친일의 역사, 뼈아픈 한국교회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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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는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에 대한 회개 부재로 시작해, 신사참배 강요와 전쟁 협력으로 변질되었습니다. 해방 후에도 진정한 회개 없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의 과제는 과거사에 대한 집단적 반성과 회개를 통해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친일의 역사, 뼈아픈 한국교회 역사 1. 한국 교회의 회개 부재 한국 교회는 신도들에게 항상 회개를 강조하지만,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회개한 적이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 한국전쟁 전후 반인륜적 행위, 군사독재 시절 부당한 권력에 협조한 일 등에 대해 공식적인 회개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회개 없는 한국 교회의 역사가 한국 교회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 전체가 일그러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 번째로 잘못 끼워진 단추가 바로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에 대해 회개하지 않은 것이며, 이는 가장 큰 문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초기 한국 기독교의 특징과 선교 방식 초기 한국 기독교는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그들은 미국적 가치와 기독교적 가치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선교 방식으로는 교육과 의료를 통한 접근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선교사들은 학교와 병원을 세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면서 기독교를 전파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기독교와 물질적 혜택을 연결시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선교사들의 풍족한 생활은 한국인들에게 기독교와 부의 연관성을 강화시켰습니다. 3. 한국 기독교의 초기 반일 성향 191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한국 기독교는 강한 반일 성향을 보였습니다.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 대표였으며, 많은 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이는 미국적 가치와 기독교적 가치를 동일시하는 경향과, 일본의 문화적, 종교적 압박에 대한 저항의식이 결합된 결과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직접 미국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