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5장 4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은, 맹세와 서원에 대한 의무에 대한 말씀입니다. 맹세 및 서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서원을 이행할 때는 어떤 자세로 해야 하는지를 경고하는 본문의 주석과 해설에 대해 정리하였습니다.
전도서 5장 4절-8절, 맹세에 대한 의무
우리가 맹세를 할 때에는 양심적이어야 한다.
1. 맹세는 영혼에 주워진 제약이다(민 30:2).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미 하기로 되어 있는 일을 엄숙히 행해야 하는 의무를 가질 뿐만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경우에 있어서 이전에 의무로 지워져 있지 않던 일도 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는 일이든,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세력을 확장하는 일이 든지간에 맹세에 따라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맹세를 갚아야 합니다. 약속한 모든 것을 실행하십시오.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마십시오." 서원한 것을 갚을 능력이 오늘 네 수중에 있거든 그것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2. 신속하고 즐겁게 맹세를 이행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을 희롱하려고 꾀한 것처럼 그를 속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에게도 잘못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원"하는 이익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그 맹세를 위반한 데 대한 벌금을 물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유익할 것입니다. "서원"하지 않는 것은 태만에 불과할 것이지만 "서원하고도 갚지 않는 것"은 반역과 파약의 죄명을 입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행 5:4).
우리가 서원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1. 죄된 일은 맹세하지 말라.
우리는 죄된 일을 맹세하지 않고 그 맹세가 범죄의 기회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서원은 잘못된 것이어서 깨뜨려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헤롯의 성급한 약속이 세례 요한의 머리를 베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 같이 그런맹세로 "네 입이 네 육체를 범죄하도록 하지 말아야 합니."
2. 지키지 못할 일을 맹세하지 말라.
우리는 단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맹세하고서도 그 맹세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알지 못하는 자들같이 육체의 취약성 때문에 실행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할 만한 이유가 있는 일을 맹세하지 마십시오. 지키지 못할 일을 맹세하고 지키지 못한다면, 스스로 수치를 얻게 됩니다. 또,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노출하는 셈이 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자기에게 입으로 거짓말을 하며 혀로 아첨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노하시며" 그들의 허위 선전을 불쾌히 여기시고, "그들의 손으로 한 일을 멸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유지해야 한다(7절).
옛부터 "꿈"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많이 있었으며, 그들은 온통 꿈으로 차 있어서 그들의 "꿈"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의 망각하게 할 정도였습니다(렘 23:25, 26). 많은 사람들이 몽사(夢事)가 이런 저런 재난을 예고하기라도 하는 듯이 자기들이 꾼 무서운 꿈과 괴상한 꿈뿐만 아니라, 딴 사람들이 꾼 꿈을 갖고도 불안해 합니다. 꿈에 신경을 쓰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머리를 가득 채울 만큼 무수한 꿈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꿈에는 "많은 헛된 것이 있으니," 이는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헛된 것이 많은 것과 같으며, 우리가 꿈을 중시하면 할수록 헛된 것도 더 많아지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두려움을 억제할 수 있다(8절).
하나님을 네 앞에 모시기에 힘쓰십시오. 그리하면 비록 네가 빈자의 학대를 보더라도 그 일을 이상히 여기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를 탓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네가 사법제도의 목적이 왜곡되는 것을 보는 때에도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종교가 인간이 부당한 학대를 받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나쁘게 생각지 않게 될 것입니다.
1. 이 땅의 우울한 일들.
땅 위에서 일어나는 우울한 광경 중 하나는 가난해서 자기를 방어하지 못함으로써 당하는 "빈자의 학대"를 보는 일과, 권력을 등에 업고 법을 구실로 하여 "한 지역에서" 자행되는 억압, 곧 "판결과 정의의 심한 왜곡"을 보는 일입니다. 그것은 정의감과 인류에 대해 관심을 갖는 모든 선량한 자들에게는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나라 전체는 좋은 통치를 할지 모르나, 어떤 특정 지방은 악인의 통치 하에 들어서 그의 악정으로 정의가 왜곡될 수도 있습니다. 가장 현명한 군주라도 사람을 등용하는 일을 빈틈없이 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은 일이 잘못된 것으로 나타날 때에야 불편의 원인을 교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2. 하늘에 있는 안락한 광경.
모든 것이 이렇게 음울하게 보일 때라도 우리는 다음 사실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아무리 학대하는 자들이 "높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들보다 위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교만히 행" 하는 일에 있어서도(출 18:11) "그들보다 위"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피조물 중 "최고의 것보다 더 높으시며," 최고의 제왕보다 높으시고, "아각보다 높은"왕 보다도 더 높으시며(민 24:7), 최고의 천사들이나 상계의 "보좌들과 주권자들" 보다도 높으십니다. 둘째, 비록 압제자들이 안전한 줄로 여기고 있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보고 계시며 주목하고 계셔서 그들이 판결을 심하게 왜곡시키는 것을 모두 다 눈여겨 두실 것입니다. 그는 "감찰"하시나니 그것을 보고 계실 뿐만 아니라 자세히 살피시고 계속 기록하셔서 다시 점호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의 눈은 그들의 길 위에 있습니다"(욥 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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