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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9장 1절의 '무저갱': 심연의 상징과 종말론적 재앙의 서곡

요한계시록 9장 '무저갱(아뷔소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떨어진 별', 황충 재앙, 파괴자 '아바돈'의 신학적 의미와 상징을 심도 있게 분석합니다. 심연의 문이 열리는 종말론적 경고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며 전하시는 궁극적인 승리의 메시지를 확인하십시오.


요한계시록 9장 1절의 '무저갱' 심연의 상징과 종말론적 재앙의 서곡



요한계시록 9장 1절의 '무저갱': 심연의 상징과 종말론적 재앙의 서곡



서론: 심연의 문이 열리다


요한계시록은 신약성서의 마지막 책으로, 수많은 상징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어 신학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깊이 있는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요한계시록 9장 1절에 등장하는 '무저갱(無底坑)'의 등장은 일곱 나팔 재앙의 정점으로,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아 그 문을 열자, 마치 거대한 용광로의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며 해와 하늘을 어둡게 하고, 그 속에서 황충 떼가 나타나 인류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준다. 이 '무저갱'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심오한 신학적,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종말론적 공간이다. 본고에서는 요한계시록 9장 1절을 중심으로 '무저갱'의 어원적, 문맥적 의미를 살피고, 다양한 신학적 해석들을 비교 분석하며, 마지막으로 이것이 요한계시록 전체의 서사 구조 속에서 갖는 상징적 중요성과 종말론적 메시지를 심도 있게 고찰하고자 한다.


요한계시록 9장 1절의 '무저갱' 심연의 상징과 종말론적 재앙의 서곡



본론 1: '아뷔소스(ἄβυσσος)'의 언어적 탐구와 성서적 용례


요한계시록에서 '무저갱'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아뷔소스(ἄβυσσος)'이다. 이 단어는 '없는(a-)'과 '바닥(byssos)'의 합성어로, 문자적으로 '바닥이 없는 구덩이' 또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이'를 의미한다. 70인역(Septuagint) 성서에서는 창세기 1장 2절의 '깊음(תְּהוֹם, 테홈)'을 '아뷔소스'로 번역하며, 태초의 혼돈하고 깊은 물의 상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처럼 '아뷔소스'는 구약성서의 배경 속에서 창조 이전의 혼돈, 어둠, 그리고 신의 통제 아래 있는 깊은 물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아뷔소스'는 주로 악한 영적인 존재들이 감금되는 장소로 묘사된다. 누가복음 8장 31절에서 거라사 지방의 군대 귀신들은 예수께 자신들을 '무저갱(아뷔소스)'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 또한 로마서 10장 7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모셔오기 위해 "누가 무저갱(아뷔소스)에 내려가겠느냐"고 말하며, 이곳이 죽음과 지하 세계와 관련된 공간임을 암시한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총 7번 등장하며(9:1, 2, 11; 11:7; 17:8; 20:1, 3), 사탄과 그의 악한 세력들이 일시적으로 갇히거나, 마지막 심판의 때에 잠시 풀려나 활동하는 근원지로 그려진다. 따라서 '무저갱'은 단순한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대립하는 혼돈의 세력, 즉 악과 죽음의 권세가 유폐되어 있는 영적 차원의 감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 9장 1절의 '무저갱' 심연의 상징과 종말론적 재앙의 서곡



본론 2: '떨어진 별'과 무저갱의 사자에 대한 신학적 해석들


요한계시록 9장 1절에서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의 정체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첫째, 이 별을 타락한 천사, 즉 사탄으로 보는 해석이다.

이사야 14장 12절("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과 누가복음 10장 18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은 '떨어지는 별'을 사탄의 몰락과 연관 짓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서 일시적으로 사탄에게 권세를 허락하시어 무저갱을 열고 악한 영들을 풀어놓아,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들을 괴롭게 하는 것을 허용하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악의 활동조차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제 아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둘째, 이 별을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선한 천사로 보는 해석이다.

'열쇠를 받았다'는 표현은 그 권세가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았음을 강조한다. 요한계시록 20장 1절에서는 한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용, 곧 사탄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는다. 이와 유사하게 9장의 '별' 역시 하나님의 심판 계획을 집행하는 대리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유대 외경에서는 '우리엘(Uriel)'과 같은 특정 천사장이 심연을 다스리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 경우, 무저갱이 열리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시작되는 신호이며, 그 과정은 철저히 하나님의 통제하에 진행됨을 나타낸다.

이 두 해석은 서로 상충하는 듯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무저갱의 개방과 그로 인한 재앙이 결코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허락 안에서 일어나는 종말론적 사건임을 분명히 한다.


요한계시록 9장 1절의 '무저갱' 심연의 상징과 종말론적 재앙의 서곡



본론 3: 무저갱의 상징적 의미와 종말론적 경고


요한계시록에서 무저갱이 열리는 사건은 단순한 재앙의 시작을 넘어, 깊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큰 풀무의 연기'는 해와 공기를 어둡게 만들어, 창조 질서의 파괴와 영적 어둠의 확산을 상징한다. 빛이신 하나님과 대조되는 어둠은 죄와 혼돈, 그리고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며, 인류가 직면할 극심한 영적 위기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연기 속에서 나타난 '황충'은 전갈과 같은 권세로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괴롭게 하지만,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은 자들은 해하지 못한다. 이는 마지막 때의 재앙이 무차별적인 파괴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별하는 심판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황충들의 왕은 '무저갱의 사자'이며, 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아바돈(Abaddon)', 헬라어로 '아볼루온(Apollyon)'인데, 두 이름 모두 '파괴자'라는 뜻을 가진다. 이는 무저갱에서 비롯된 세력의 본질이 파괴와 멸망에 있음을 명백히 한다.

궁극적으로 무저갱의 개방은 인간의 죄악과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이다. 사람들은 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죽기를 구하나 죽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한다. 이는 육체적 죽음보다 더한 영적인 고통과 절망을 상징하며, 동시에 회개할 기회가 여전히 주어져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9장 20-21절은 이러한 재앙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우상숭배와 죄악을 계속 저지른다고 기록한다. 이를 통해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심판의 불가피성과 함께,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끝내 돌이키지 않는 인간의 완악함을 고발하며, 독자들에게는 깨어 신앙을 지킬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요한계시록 9장 1절의 '무저갱' 심연의 상징과 종말론적 재앙의 서곡



결론: 심연을 넘어선 소망의 빛


요한계시록 9장 1절의 '무저갱'은 바닥없는 깊이를 의미하는 헬라어 '아뷔소스'에서 유래한 용어로, 성서 전체의 맥락에서 악한 영들이 감금되는 혼돈과 어둠의 공간을 상징한다. '떨어진 별'이 사탄이든 선한 천사든, 무저갱의 개방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허락과 통제 아래 일어나는 종말론적 심판의 일부이다. 이 사건은 창조 질서를 위협하는 영적 어둠의 확산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과 불신자들을 구별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무저갱에서 올라온 파괴자 '아바돈'의 세력은 인류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지만, 그들의 권세는 제한적이며, 하나님의 인 맞은 자들을 결코 해할 수 없다. 이는 요한계시록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 즉 어떠한 혼돈과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며, 악의 세력은 결국 패배하고 심판받을 것이라는 소망과 연결된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9장의 무저갱에 대한 묘사는 독자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어둠의 심연을 넘어 최후 승리를 이루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며, 믿음 안에서 인내하고 깨어 있도록 독려하는 강력한 신학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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