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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론: 하나이시며 삼위이신 하나님에 대한 조직신학적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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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조직신학의 핵심인 신론(Theology Proper)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학술 소논문.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비공유적/공유적),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기초와 니케아 공의회를 통한 역사적 정립 과정, 그리고 창조와 섭리 사역을 체계적으로 분석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칼뱅, 바르트의 신론을 비교하여 신학적 방법론의 흐름까지 조망합니다. 신론: 하나이시며 삼위이신 하나님에 대한 조직신학적 해설 신론의 기초: 하나님에 대한 지식 신론(Theology Proper)은 기독교 조직신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분야로, 모든 신학 담론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탐구입니다. 이는 단순히 신의 존재 유무를 따지는 변증론을 넘어,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 그의 본질과 속성,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관계와 사역을 심도 있게 다룹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모든 교리의 출발점이자 기독교인의 신앙과 삶의 궁극적 지향점이기에, 신론 연구는 신학의 심장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하나님의 존재는 피조세계의 정교함과 인과율을 통해 그 존재의 필연성을 유추하는 일반 계시(자연 계시)를 통해 어렴풋이 인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에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은 하나님의 능동적인 자기 계시(Self-revelation)에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특히 성경이라는 특별 계시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과 성품, 그리고 구원 계획을 명확히 드러내셨으며, 이 계시의 정점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납니다. 칼뱅이 강조했듯,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를 아는 지식’은 분리될 수 없으며, 이 지식은 성경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자기 선언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1. 신적 속성의 분류: 비공유적 속성과 공유적 속성 하나님의 본질은 그의 속성들을 통해 이해됩니다. 신학은 전통적으로 이를 다른 피조물과 공유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 완전성을 나타내는 ‘비공유적 속성(Incomm...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주권 - 조직신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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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할까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면, 악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오래된 질문을 탐구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고통과 악의 현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더 큰 목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주권 서론 "왜 이런 나쁜 일이 일어나야만 했을까요?" 이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던져보았을 질문입니다. 특히 믿음의 여정 중에 만나는 고통과 악의 현실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계신다면,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걸까요? 오늘은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해, 특별히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관점에서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본론 첫째, 악의 현실과 하나님의 성품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을 직접 행하시거나 즐기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요일 1:5)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성품은 선하심과 거룩하심입니다. 그렇다면 이 악은 어디서 왔을까요? 이는 마치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진정한 선택의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해진 현실입니다. 사랑이 강요될 수 없는 것처럼, 진정한 관계를 위해서는 선택의 자유가 필요했던 것이죠. 둘째, 하나님의 더 큰 목적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는 악한 행위들을 허용하시면서도, 그것들을 통해 더 큰 선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예로 요셉의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악한 의도로 동생을 노예로 팔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사용하셔서 수많은 생명을 구원하셨죠. 이것은 마치 숙련된 요리사가 쓴 재료까지도 사용해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수와 잘못된 선택까지도 사용하셔서 궁극적으로는 선한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셋재, 우리의 책임과 하나님의...

우리의 선택과 하나님의 계획 사이에서 - 조직신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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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택은 진정으로 자유로울까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들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와, 그 속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가진 실제적 가치와 그 책임에 대해 알아봅니다. 우리의 선택과 하나님의 계획 사이에서 서론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을 맞이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어떤 옷을 입을지부터 인생의 중요한 진로를 결정하는 순간까지,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면, 우리의 선택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일까요?" 오늘은 이 흥미로운 질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본론 첫째, 진정한 선택의 의미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로운 선택'이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외부의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모든 선택은 다양한 요소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성격, 교육 배경, 경험, 주변 환경 등이 모두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죠. 그렇다면 진정한 선택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발적인 의지'에 따른 선택입니다. 즉, 누군가가 강제로 시키거나 물리적으로 강요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스스로 원해서 하는 선택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를 돕는 일을 선택할 때, 그것이 우리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선택인 것이죠. 둘째, 하나님의 주권과 우리의 책임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성경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동시에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이 두 가지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그분의 계획대로 이루어가시지만,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와 자녀의 관계와도 비슷...

에스더, 하나님의 섭리적 돌봄과 그의 백성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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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의 에스더서는 독특한 책입니다. 에스더서는 에스더가 페르시아 왕비가 되어 유대인 학살 음모를 저지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그의 백성이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구원받습니다.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고 부림절을 제정합니다. 에스더, 하나님의 섭리적 돌봄과 그의 백성의 구원 에스더서의 주요 내용 1. 에스더의 왕비 등극 고아인 유대 소녀 에스더가 크세르크세스 왕의 왕비로 선택됩니다. 그녀의 사촌 모르드개는 왕을 해치려는 음모를 발견하고 왕의 생명을 구합니다. 고위 관리로 승진한 하만은 모든 이에게 절하라고 요구하지만, 모르드개는 거부합니다. 분노한 하만은 제국 내 모든 유대인을 멸절시키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2. 하만의 음모와 모르드개의 간청 하만은 왕을 설득해 모든 유대인 멸절 칙령을 발표하게 합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왕에게 중재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합니다. 에스더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초대 없이 왕을 접견합니다. 그녀는 왕과 하만을 두 번의 잔치에 초대합니다. 한편 하만은 모르드개를 처형할 교수대를 준비합니다. 3. 운명의 역전과 구원 왕은 과거 모르드개의 충성을 기억하고 그를 높이 칭송합니다. 두 번째 잔치에서 에스더는 하만의 음모를 폭로합니다. 왕은 하만을 그가 준비한 교수대에 매달게 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하는 새 칙령을 발표할 권한을 받습니다. 유대인들은 적들을 물리치고 승리하며, 부림절이 제정됩니다. 에스더서의 저자 에스더서의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일부는 모르드개를, 다른 이들은 에스라나 느헤미야를 저자로 추정합니다. 저자의 페르시아 관습과 궁정 의례에 대한 상세한 지식은 그가 사건 당시나 직후 페르시아에 살았던 유대인일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생생한 서술 방식은 저자가 직접 목격했거나 목격자의 증언을 들었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저자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에스더서의 저술 시기와 역사적 배경 에스더서는 페르시아 시대인 기원전 46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