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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지 vs 하나님의 은혜: 1600년 신학 논쟁의 핵심,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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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일까? 1600년 전 시작된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자유의지 논쟁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원죄, 은혜, 구원에 대한 두 거인의 대립을 5가지 핵심으로 요약하여 나눕니다. 인간의 의지 vs 하나님의 은혜: 1600년 신학 논쟁의 핵심,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1. 낙관 vs 비관: 인간 본성에 대한 극단적 대립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능력에 대해 깊은 신뢰를 보였습니다. 그는 아담의 죄는 단지 나쁜 선례일 뿐, 후손에게 죄책이나 타락한 본성이 유전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과 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노력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어거스틴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는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서 죄를 지었기에, 모든 후손은 태어날 때부터 죄책과 오염된 본성을 물려받는 '죄의 덩어리'(massa peccati)라고 선언했습니다. 타락 이후 인간의 의지는 죄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선을 행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았습니다. 2. 죄는 '행위'인가, '상태'인가: 죄의 본질에 대한 논쟁 인간 본성에 대한 다른 시각은 죄를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로 이어졌습니다. 펠라기우스에게 죄는 개인이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해 저지르는 의지적 '행위'(act)였습니다. 죄는 인간의 본성 자체가 아니라 잘못된 선택의 결과일 뿐이므로, 이론적으로 인간은 죄를 짓지 않고 완전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에게 죄는 개별적인 행위 이전에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처해 있는 보편적인 '상태'(state)이자 실존적 조건이었습니다. 즉, 인간은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라는 근본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non posse non peccare)라고 ...

[종말론의 유형] 무(無)천년설에 대하여, 천년왕국은 제자들의 마음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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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습니다. 역사적 전(前) 천년설 , 세대주의적 전(前) 천년설 , 무천년설, 후(後) 천년설 등이 그것인데, 그 중에서 "무천년설"에 대한 개념과 관련된 성경의 내용, 그리고 이 주장이 가장 활성화된 시기를 정리하였습니다. 무(無)천년설에 대하여 무(無)천년설이란 무엇입니까? 종말론의 유형들 가운데 '무(無)천년설'은, 천년왕국이 이 땅에 실제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마음에 존재한다는 주장입니다. 무(無)천년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마음에 있는 천년왕국을 통치하신다고 강조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5절의 "첫째 부활"은 죽은 자들이 육체적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부활하는 "중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이미 사탄에 대하여 승리하셨고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사탄의 권세를 억제하셨습니다(계 20:1-3) 요한계시록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 혹은 대환란은 예수님께서 이 땅이 재림하실 때까지, 즉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가는 천년 동안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즉시 모든 악의 세력들을 완전히 물리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구원 받은 자와 구원 받지 못한 자를 부활시키시고 심판하셔서 영원한 생명과 멸망을 결정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들이 나타난 것은, 이스라엘이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무(無)천년설에 대한 성경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1,000'이라는 숫자를 비유적으로 자주 사용합니다(시 50:10; 90:4; 105:8; 벧후 3:8). 첫번째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영적 부활을 의미합니다(계 20:4; 롬 11:13-15; 엡 2:1-4). 또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