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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신학] 요한복음 6장 67절의 "너희도 가려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과 제자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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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장 67절]]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μὴ καὶ ὑμεῖς θέλετε ὑπάγειν;)" 1. 개요 신약성경 [[요한복음]] 6장 67절에 기록된, 예수님이 열두 제자에게 던지신 결정적인 질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너희도 집에 갈 거니?"라고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1세기 유대 사회의 배경과 헬라어 원어의 뉘앙스를 파고들면 제자도를 가르는 매우 무겁고 신학적인 의미가 담긴 구절이다. 거짓 제자들과 진정한 제자를 구분 짓는 분수령으로 평가받는다. 2. 어휘적 분석 (TDNT 중심) 신약에 대한 최고 권위의 사전인 '''TDNT(신약성서 신학사전)'''의 헬라어 용례 분석을 보면 이 짧은 질문에 얼마나 무시무시한 의미가 압축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2.1. θέλω (텔로 - 원하다, 의지하다): 단순한 미래 시제('갈 것이냐')가 아니다. TDNT에 따르면 이는 '주관적인 충동이나 확고한 결단에 따른 적극적인 의지'를 뜻한다. 즉, 예수님은 " 너희의 진정한 의지와 내면의 결단이 나를 떠나기를 원하고 있느냐? "라며 제자들의 멘탈과 결단을 정면으로 찌르며 촉구하신 것이다. 2.2. ὑπάγω (휘파고 - 가버리다, 떠나다): 요한복음에서는 주로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심'을 뜻하는 고급스러운(?) 신학 용어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제자들을 향해 쓰였다. 육체적인 이동이 아니라 ' 관계적인 단절과 영적인 이탈(배교) '을 의미한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칼같이 손절한 군중들의 영적 철회와 같은 뜻이다. 2.3. δώδεκα (도데카 - 열둘): 놀랍게도 요한복음 전체에서 '''열두 제자'''라는 명칭이 이 6장 67절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이전까지는 그냥 뭉뚱그려 '제자들'이라고 부르다...

요한복음 3장 3절, 다시 태어나는 기쁨 - 요한복음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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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았던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하여, 거듭남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거듭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함을 강해 설교로 요약하여 나눕니다. 요한복음 3장 3절, 다시 태어나는 기쁨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83장, 나 속죄함을 받은 후 새 찬송가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이 필요합니다 밤에 3층에서 1층으로 내려 올 때, 계단의 불을 켜지 않으면 계단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단 양 옆의 손잡이를 잡고 내려 오거나 조심 조심 한 발씩 디디며 계단을 내려 옵니다. 캄캄한 밤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침이 되어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밝히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빛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밝히 보기 위해 빛이 필요하고, 따뜻한 공기를 누리기 위해 빛이 필요합니다. 또 우리가 건강하고 모든 만물들이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서 빛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웠던 니고데모 바리새인이자 산헤드린 공의회원이며 유대인들의 지도자였던 니고데모는 어두움 속에 헤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율법과 유대인들의 일과 세상의 일은 잘 알고 있었지만, 하늘의 일은 몰랐으며 눈이 어두워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고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웠던 니고데모는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고 알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1. 보는 눈이 달라야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누가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 함께 3절을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