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지정한 이달의 6.25 전쟁영웅인 "박정모 해병대 대령"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 2010년에 별세하신 분이신데 이 분이 아니었다면, 6.25 전쟁은 그야말로 미국의 식민지처럼 대한민국 곳곳에 성조기가 걸릴 뻔 했습니다.
1. 박정모 대한민국 해병대 대령의 약력
1927.3.20 ~ 2010.5.6. / 을지무공훈장
박정모 대령은 전남 신안군 출생으로, 1946년 해군 1기로 입대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6.25 전쟁이 발발하고 단 3일만에 서울을 점령 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역전하기 위하여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인천상륙작전이 실시되었고, 박정모 대령도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였습니다.
그 이후 1950년 9월 27일, 당시 박정모 소위는 서울탈환 작전에서 해병 제2대대 제6중대 1소대장으로서 소대원들과 함께 공격을 시도하였습니다.
새벽에 벌어진 치열한 교전 끝에 중앙청 안으로 들어가서 북한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가장 먼저 게양하는 위업을 달성하였습니다.
이후에는, 가리산지구 전투에서 야간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957고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하여,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 작전인 리퍼(ripper) 작전에 기여했습니다.
2. 뒤늦게 알려진 역사적 사실
9월 27일 서울 수복 이전까지는, 미군과 국군이 함께 공격을 하여 점령을 하여도 미국의 성조기가 걸렸습니다. 즉, 우리 땅을 우리가 수복하였는데 미국 국기가 걸리는 아이러니하면서도 화가 나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치 일제 시대와 같이 곳곳에 성조기가 걸려 나가는 상황이었기에 국군의 사기도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박정모 소대장이 훈련병(이등병) 3명을 데리고 새벽에 서울 중앙청으로 기습 공격을 하게 됩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원래 미군이 서울 중앙청을 공격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작전을 박정모 소대장이 무시하고 기습적으로 공격하였고, 치열한 전투 끝에 탈환하여 태극기를 걸 수 있었습니다. 서울 중앙청마저 성조기가 걸렸다면, 정말 자존심 상했을 텐데 박정모 소대장 덕분에 체면은 차릴 수 있었습니다.
작전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우리 나라의 위상을 높였다는 면에서 9월의 전쟁 영웅으로 추앙 받을 만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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