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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의 유래와 정신, 감사와 나눔의 영성 - 성경사전

한 해의 마무리, 추수감사절


해마다 11월 3째주에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추수감사절의 유래와 같은 날짜에 지키게 된 이유, 그리고 우리 나라에 전래된 추수감사절의 정신과 그 의미에 대해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할지를 정리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와 정신



감사의 축제


인류가 풍성한 가을걷이를 하게 해 주신 신에게 감사 예배를 드린 역사는 아주 오래입니다. 헬라의 디오니소스 축제가 그것이고, 우리 나라의 경우도 북방 계열인 부여와 고구려 그리고 남방 계열인 마한에서 성대한 제천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구약 시대의 맥추절(오순절)과 포도 수확을 기념 하는 축제도 일종의 추수감사절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땅의 소산을 허락해 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려 왔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한국의 개신교회가 현재 11월 셋째 주일에 지키고 있는 추수 감사절은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원래 스위스의 개혁파 교회와 독일의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9월 마지막 주일에 추수감사절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이주한 이른바 '순례자의 조상들은 11월에 추수감사절을 지켰고, 미국 선교사에 의해 복음이 전해진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그 전통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


칼빈파 계열인 순례자의 조상들은 영국에서 국교인 성공회의 박해를 받게 되자 고국을 떠나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의 라이덴으로 이주 하였다가, 거기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게 되자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 미국으로 개척의 길을 나섰습니다. 그들 일행은 모두 102명이었다. 그들은 180톤급 작은 돛배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1620년 9월에 영국 플리머드 항구를 떠나 대서양의 거친 물살을 가르며 항해 하였습니다.

메이플라워 호는 65일간의 항해 뒤 11월 11일에 원래의 목적지 버지니아보다 훨씬 북쪽인 케이프 코드에 도착하였습니다. 예정한 곳보다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오래 망설이다가 그로부터 열흘 뒤에 일단 육지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때는 추운 겨울이었고, 목적했던 땅 버지니아처럼 기후가 따뜻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음해 봄이 올 때까지 일행의 반수 이상이 추위와 괴혈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에는 인디언에게서 옥수수 씨앗을 얻어 농사를 짓게 되었고, 맑은 날씨와 철따라 내린 비로 옥수수 농사가 풍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또한 라이덴에서 함께 생활하던 믿음의 동지들이 네 척의 배를 타고 도착하여 그들과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나자 행정관 브래드포드의 명에 따라서, 이와 같은 은혜를 내려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기 위해 미국에서의 첫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미국 이주자들과 인디언 손님들은 한데 어울려 야외에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놓고 일주일 동안 추수감사절을 지켰다.

이와 같이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교회 공동체의식에서 지켜졌습니다. 순례자의 조상들은 추수감사절을 지킨 미국의 그 정착지를 자기들이 떠나온 고장의 이름을 따서 플리머드라 이름지었습니다. 이 곳은 훗날 청교도들의 식민지 메사추세츠와 합병했는데, 그들은 기독교, 특히 칼빈주의 정신으로 뭉쳐진 신앙공동체였습니다. 따라서 미국 개척 초기의 2년 동안은 농사 짓는 땅과 농기구와 가축은 말할 것도 없고 수확도 공동으로 분배하는, 초대교회 정신으로 뭉쳐진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추수감사절의 참 정신과 의미를 찾아보게 됩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을 지금처럼 11월 넷째 목요일에 지키게 된데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습니다. 1600년대 말까지 추수감사절은 미국 안에서 커네티컷 주와 메사추세츠 주에서만 지켜졌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날짜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서 대체 로 11월의 어느 목요일에 지켰습니다. 목요일에 추수감사절을 지킨 것은 목요일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통계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미국이 독립을 선포한 후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1789년에 국가의 법령으로 11월 26일을 추수감사절로 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독립 13주 전 지역에서 추수감사절을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각 주에서 추수감사절을 연례 행사로 정하는 문제를 토의하고 있을 때, 추수감사절이 미국 전역의 축제일이 되게 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것은 사라 요세파 헤일 여사였습니다.

헤일 여사는 추수감사절을 미국 전역에서 연례 행사로 지키되, 그 날짜를 일정하게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정하자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그 캠페인이 많은 호응을 얻게 되자, 헤일 여사는 1863년 9월 28일에 당시의 대통령인 링컨에게 편지를 보내, 추수감사절을 미국 전역에서 같은 날짜에 지키는 연례적인 축제일로 선포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링컨은 헤일 여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즉시 전국에 공포하였고, 그 결과 추수감사절은 미국 전역에서 같은 날에 성대한 축제일로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추수감사절


한국 교회에서는 서경조 장로의 제의로 1904년부터 장로교에서 감사절을 지키다가, 1914년에 각 교파 선교사가 협의하여 11월 셋째 주일 후의 수요일을 감사절로 정하였습니다. 그날은 특별 감사 예배를 드리고, 감사예물은 후에 교회 전도사업에 사용하였습니다. 그 후 날짜를 주일로 변경해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였습니다. 요즈음 일부 교회에서는 이 서양식 의식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추수감사절 날짜가 아니라 그 의미요 정신입니다. 추수감사절은 말 그대로 농촌의 추수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에 날로 산업화해 가는 현대 사회에서 그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수확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수확에 대한 감사를 강요하는 것은 위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진정한 의의는 '추수' 보다 '감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수확보다는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감사절의 참 정신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정신


우리의 감사를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자기의 소유를 이웃과 나누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것으로 복을 내려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큰 기쁨과 감사를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께 받은 것 가운데 일 부를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추수 감사절은 더 많은 이웃과의 나눔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제 사업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인간에 대한 자선을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성경의 정신을 반영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의 3대 명절은 유월절과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인데, 이 중 오순절과 초막절은 전적으로 추수감사절과 같은 성격의 명절이었습니다. 오순절에는 첫 수확한 밀로 만든 빵과 첫 수확한 과일을 하나님 앞에 바쳤습니다(레 23:15-21). 또한 초막절 바로 앞에는 속죄일이 정해졌고(레 23:27), 이어지는 초막절에는 수확의 기쁨과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나타내기 위해 초막을 쳤으며, 거기서 7일 동안 살면서 밤새 노래하고 춤추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였습니다. 그와 아울러 가난한 이웃에 대한 구 제 활동을 잊지 않았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점점 퇴색해 가는 이때, 우리는 그 본래의 정신을 되찾아야 합니다. 교회력으로는 추수감사절에 이어 대강절(待降節)이 온다는 것도 의미 깊은 일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속죄일에 이웃과 수확을 나누며 더불어 기뻐한 후(신 16:13~15), 환희에 찬 마음으로 초막절의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도 추수감사절에 헐벗고 굶주린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을 맞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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