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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주석] 다니엘 1장 17절-21절,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지혜 - 주석과 해설 정리

다니엘 1장 17절부터 21절에서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부정하고 채식을 결단한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왕의 앞에서 인정받게 됩니다. 큐티와 새벽예배설교 준비를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다니엘 1장 17절-21절,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지혜



다니엘 1장 17절-21절,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지혜 - 주석과 해설 정리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의 학문 성취(17절).


그들은 모두 침착하였고, 근실하였으며 열심히 공부하였다. 우리는 그들의 비상한 능력을 발견하고 노심초사해가며 가르친 선생들을 생각할 수도 있으나 결국 그들의 성취는 오직 하나님 덕분이다. "이들에게 지식을 얻게 하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왜냐하면 각양 좋은 은사와 완전한 선물은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기 때문이다" (약 1:17). 이런 재물 얻을 능력을 인간에게 주시는 분도 오직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다(신 8:18). 정신도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맑아진다. 하나님께서 이 네 소년에게 주신 큰 학식은 다음 두 가지를 위해서다.


1. 그들의 상실을 상쇄하기 위해.

그들은 부조(父祖)의 죄 때문에 자기들의 고귀한 신분에 부수될 명예와 즐거움을 박탈당하였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하나님은 그들에게 학식을 주심으로써 상실한 명예와 기쁨보다 더 큰 명예와 기쁨을 주셨다.


2. 그들의 신앙에 대한 보상으로써.

그들의 고결함에 대한 보상으로써 그들은 극히 대수롭지 않은 일로써도 자기들의 신앙을 지켰다. 그들은 왕의 진미나 포도주로써도 자기를 더럽히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사실상 나실인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혁혁한 학업으로써 그것을 보상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회락을 주시기 때문이다" (전 2:26). 다니엘에게는 하나님께서 두 배의 몫을 주셨다. 그는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 수 있었다. 그는 요셉처럼 꿈을 해석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해몽가들에 의해서 주장하는 기술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신적인 지혜와 총명으로 해몽을 할 수 있었다. 아니, 그는 예언의 영을 부여받았고 이로써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으며 꿈과 환상으로 신적 일에 대한 고지를 받을 수 있었다(민 12:6) 우리는 다니엘이 하나님께로서 받은 은사를 따라 이 책에서 줄곧 꿈과 환상을 해석하고 그런 환상과 봉사를 얻게 됨을 보게 된다. 그는 본서에서 계속 꿈과 환상에 결부되어 있다. 각자가 은사를 받았듯이 말은 그 은혜대로 봉사할 기회와 의욕도 가지게 될 것이다(벧전 4:10).



왕이 이들을 크게 기뻐함.


3년 동안의 교육을 마친 후(그들이 왔을 때 그들은 아마도 20세였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들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환관장 앞에 나아갔다(18절). 그리고 왕은 그들을 시험하고 그들과 말하였다(19절). 그는 학식과 재능을 갖춘 인물이었기에 그들과 담소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렇게 위대한 왕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직접 이렇게 시험하는 것은 등용할 인물을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이 남의 말만 신용하여 선발하는 것보다 현명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왕은 많은 말로써 즉 웅변이나 시문학으로 시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지혜와 총명의 모든 일로 시험했다. 그것은 곧 슬기의 시험과 진정한 정치 철학의 시험법이 었다. 그는 인생의 올바른 태도와 공공 업무에 대한 그들의 판단력을 조사하였다. 즉 "그들은 재줏군인가?" 를 시험하지 않고 "그들은 현인인가?" 를 조사한 것이다. 그는 그들의 동류의 젊은 후보자들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모든 스승과 노인보다 명철하다는 것도 발견했다(시 119:99, 100 참조). 왕은 자기 나라에서 종교와 학식으로 쟁쟁한 자들에게 편파적이기는커녕 시험 결과 이 불쌍한 유대인 포로 소년들이 "온 나라의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더 나은 줄을 알겠다" (20절)고 스스럼없이 인정하였다. 그는 이 젊은이들에게서 곧 비범한 점을 발견하고 놀라움과 민족감을 느꼈다. 그는 그들이 조금 보여 준 참 신의 위력이 자기가 그때까지 익히 봐 오던 아주 많은 점성술보다 더 낫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렘 23:28). 술객의 지팡이와 아론의 지팡이를 어찌 비교하겠는가? 이들에게 비교될 자는 없었다. 이 네 젊은 학도들은 모든 늙은 술객이나 박수보다 나았다. 십 배나 나았다. 온 나라에 있는 점쟁이를 다 합쳐야 이들보다 못했다. 우리는 그 나라에 적지 않은 술객과 박수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은 교만한 갈데아인들을 이처럼 수치스럽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들 네 사람 뿐만 아니라 나머지 유대인들도 이 소년들을 인하여 포로된 땅에서 더욱 존중받게 하셨다.



왕의 앞에 서게 된 다니엘과 세 친구들


끝으로, 그들에게 대한 판단을 이렇게 내린 왕은 그들로 자기 앞에 모시게 했다(19절). 그들은 왕의 알현실 아니 집무실에서 왕을 시종하였다. 왜냐하면 용안을 본다는 것은 대신의 완곡한 표현이기 때문이다(에 1:14). 이것은 솔로몬의 관찰을 확실하게 해 준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잠 22:29). 근면은 출세의 지름길이다. 나머지 세 사람이 언제까지 궁정에 있다는 말은 없다. 그러나 다니엘은 명성과 총애가 항상 동일하진 않았지만 "고레스의 원년까지 계속 있었다" (21절). 그는 고레스의 원년 이후까지 살았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고레스 원년만 언급된 것은 그가 자기 동포의 바벨론 해방과 고국 귀환의 증인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때때로 하나님은 근심 중에 시온과 같이 슬퍼하는 자기 종들로 하여금 처음보다 더 나은 교회의 처지를 보기까지 살면서 교회의 기쁨을 함께 나누도록 은총을 베푸신다는 데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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