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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주석] 시편 22편 11절-21절, 메시아의 고난 - 주석과 해설 정리

시편 22편 11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은, 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묘사의 말씀입니다. 그 고난을 시인은 탄식하며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구합니다. 매일성경큐티와 새벽설교를 준비하기 위한 주석과 해설 자료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시편 22편 11절-21절, 메시아의 고난



시편 22편 11절-21절, 메시아의 고난 - 주석과 해설 정리


이 구절들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리스도의 기도를 읽을 수 있으며, 이것은 우리에게 고난을 내다보게 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보도록 지시하고 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있다


다윗은 실재로 자주 환난을 당했고 대적들의 공격을 받았었다. 그러나 여기에 열거된 여러 가지 세부적 상황은 결코 다윗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깊이 굴욕 당하신 그리스도께 적용되어야 한다.


1. 그는 친구들에게 버림받았다.

"환난"과 고통이 "가깝고" "도울자," 격려해 줄 자"없나이다"(11절). 그는 혼자 포도주 틀을 밟았다. 그의 모든 제자들은 그를 버리고 도망했던 것이다. 모든 도움과 구조가 끊어졌을 때 돕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예이다.


2. 대적들에게 포위 당했다.

그는 여기에서 그의 대적들에 의해 모욕당하고 포위당하고 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의 힘과 광포는 살찌고 포식하는 오만하고 심술궂은 황소, 즉 "바신의 힘센 소"에 비유되고 있다(12절). 그리스도를 핍박했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바로 이러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더럽고 게걸스런 개의 비유되고 있는데(16절), 그들은 그를 쓰러뜨리기에 지칠 줄 몰랐다.

그를 칠 계교를 꾸미는 악한 무리가 있었다(16절). 대제사장들이 회당에 앉아 그리스도를 잡을 방법과 수단을 의논했던 것이다. 이 대적들은 무수했고 또 혼연일치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 그리고 헤롯과 빌라도처럼 서로 다르고 상반되는 타산을 지닌 자들이 나를 에워싸기로 동의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계획을 많이 수행했으며, 이제는 그들의 목표를 획득한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를 둘렀기" 때문입니다.(12절). 그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16절). 그들은 거대하고 위협적입니다.(13절). 그들이 내게 그 입을 벌려, 나를 삼키려 한다는 것을 내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으르렁대며 먹이를 찾아 다니는 사자가 먹이를 덮치는 것과 같은 큰 힘과 맹렬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3. 그는 여기에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있다.

그의 죽음의 특별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결코 사용되지 있지 않다. "악한 무리가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16절). 그의 수족은 저주받은 나눔에 못박혔으며 온몸도 거기에 매달렸었다. 그 결과 그는 가장 격렬한 고통과 고문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구약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이처럼 철저하게 타락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뛰어난 예언으로서 분명히 이루어졌었기 때문이다.


4. 그는 여기에서 죽어가고 있다(14,15절).

고통과 번민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그것은 그가 고통을 초래하는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원한 번민 속에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 나타나 있는 그의 상태를 살펴보자.

(1) 그의 몸의 골격이 용해되었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나이다." 그는 물같이 연약하셨으며 인상의 모든 도움들을 버리고 사망의 권세에 굴복하셨다.

(2) 그의 뼈가 어그러졌다. 그의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않도록 주의가 기울여졌으나(요 19:36) 그의 몸을 고문대 위에서처럼 십자가 위에 우악스럽게 펴서 박았기 때문에 모든 뼈마디가 어긋났다. 또는 이것은 그가 동산에 있었을 때 그를 번민 속에 사로잡은 두려움을 지적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때에 그는 몹시 번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큰 두려움을 느낄 때 그러하듯이, 단 5:6),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쳤을 것이다. 그의 뼈는 하나님께 전부 다시 만들어 주셔야 할 정도로 어그러졌었다. 그 마디를 어그러지게 한 것은 죄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그러진 뼈도 다시 맞추어 주실 것이다.

(3) 그의 마음은 녹았다. "그의 마음은 촛밀 같아서"그가 대속하고자 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영향을 받자 녹아버렸다. 죽어가는 사람의 기력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마음의 완악함을 대속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것을 깊이 생각해 보는 것도 또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욥은 그의 내적인 고통에 대해 언급할 때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욥 23:16; 시 58:2 참조).

(4) 그의 자연적인 힘이 쇠하였다. "내 힘이 말랐다."그의 마음에 스며든 거룩한 진노의 불에 의해 근본적인 습기가 소모되었으므로 그는 질그릇 조각같이 바싹 타버리고 깨지기 쉬운 상태가 되었다. 그때에 누가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설 수 있겠는가? 혹은 누가 그것의 능력을 알겠는가? 푸른 나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하물며 마른 나무는 어떠하겠는가?"

(5) 그의 입은 찐득였는데 이것은 죽음이 다가오는 일반적인 증세이다.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이것은 십자가에서의 그의 갈증과(요 19:28) 고난 가운데에서의 그의 침묵 때문이었다. "그는 털깍는 자 앞에 선 양이 잠잠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않았고"뿐만 아니라 그에게 행해진 어떤 일도 거역하지 않았던 것이다.

(6) 그의 기운이 다 하였다. "주께서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나는 이제 막 음부로 떨어지려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죄인은 생명을 박탈당했다. 그러므로 그 제물의 생명은 그것을 위한 속죄의 대가임에 틀림 없다. 아담에게 내려진 죽음의 형벌은 "너를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고 표현 되었다. 따라서 그 형벌을 지켜 죽음에 복종한 그리스도는 여기에서 그와 비슷한 표현을 하고 있다. "주께서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5. 그는 벗김을 당했다.

발가벗을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죄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의 옷을 빼앗기셨다. 그것은 그가 우리를 그의 의의 옷으로 입히시어 우리의 벌거벗음에 대한 수치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1) 그의 몸이 이처럼 벗겨졌을 때 그것은 어떻게 보였는가?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17절). 그의 축복된 몸은 그의 모든 사역의 과정 동안에 수고와 슬픔과 금식으로 인해 여위고 쇠약해졌다. 그것은 그가 불과 33세밖에 되지 않았을 때에, 우리가 요한복음 8장 57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그로 하여금 거의 50세가 다 되어 보이게 만들었다. 그의 주름살이 그가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자"라고 불리우기에는 아주 거리가 먼 자라는 것을 해석된다. 그의 몸이 십자가 위에서 펼쳐졌기 때문에 그의 갈빗대를 세기 쉬웠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나이다." 즉 그의 뼈가 뒤틀리고 그것을 덮을 살이 없어"나의 파리한 모양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나의 죄를 증거하나이다"(욥 16:8)라고 말한 욥과 같았으므로 그들은 그를 주목하여 보았다. 또는 "구경꾼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의 뼈가 이처럼 튀어나온 것을 보고 놀라나이다. 그리고 나를 동정하기는커녕 이처럼 불쌍한 광경을 보고서도 즐거워하나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2) 그들이 그에게서 취한 옷으로 어떻게 했는가?(18절) "저희가" 각 군병들이 몫으로 "내 겉옷을 나누며"호지 아니한 옷이라고 "제비뽑나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은 정확히 이행되었다(요 19:23, 24).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뚜렷한 일례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에게서 성경이 실행된 훌륭한 일례이다. "이와 같이 성경은 기록되었고,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에 따라 수난을 당하셨다. 이것으로써 우리는 그를 참된 메시야로 여기는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고, 그를 제일가는 친구로 여겨 그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불붙이도록 하자. 그는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해 이 모든 고난을 당하셨지 않은가!



여기에 그리스도의 기도가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써 그의 고난으로 인한 괴로움 가운데서 그 자신의 힘을 북돋우고 있다. 그리스도는 번민 가운데 그 잔이 그에게서 옮겨지도록 간절히 기도하셨다. 이 세상의 왕이 위협적으로 그를 공격하고 "입을 벌림이 부르짖는 사자" 같았을 때, 그는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다윗의 기도는 이것에 대한 모형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자기의 "힘"이라 부르고 있다(19절).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노래로서 즐거워할 수 없을지라도 그를 우리의 힘으로서 의지하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가 영적인 기쁨에 도달할 수 없을 때라도 영적인 힘에서 오는 위로를 취하도록 하자. 여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고 있다.


1. 하나님께서 함께 하소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마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나는 멀리하지 마옵소서"(11절). 그리고 이것을 다시 19절에서 반복하고 있다. "누가 나의 고통에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주께서는 그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울수록 우리는 빨리 하나님 가까이로 나가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가 우리 가까이에 오시리라는 것을 바랄 수 있을 것이다.


2. 하나님께서 도우소서.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시고 서둘러 도우시고 그의 고통을 참을 수 있도록 도우시어 그가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게 되도록, 그가 그의 사업에서 물러나거나 주저앉지 않게 되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그를 들으셨고"(히 5:7) 그로 하여금 그의 사업을 완성할 수 있게 하셨다.


3. 하나님께서 구하소서.

하나님께서 그를 건지시고 구하시기를 기도하고 있다(20,21절).

(1) 그가 돌보고 있는 보석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라. "나의 사랑하는 영혼을 안전케 하시고 그것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리로다(49:15). 아버지여 당신의 손에 영혼을 의탁하오니 낙원으로 안전하게 옮겨 주소서."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그의 영혼을 그의 "사랑," (단어 그대로) 그의"유일한 것"이라 부르고 있다. "내 영혼은 내 유일한 것이옵니다. 내가 돌볼 영혼은 오직 유일하오니 내가 그것을 소홀히 여긴다면 그것은 매우 큰 수치이며, 그것을 파멸케 한다면 그 손실은 더욱 큰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나는 그 영혼의 영원한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내가 나의 영혼을 모든 해로부터 보호하고 그것을 위한 필수품을 모두 공급하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의 행복에 온전히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을 나의 사랑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2) 그가 건져지기를 간구하는 위험은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보라. 그것은 "칼에서," 어느 곳에서나 휘둘러지는 하나님의 진노의 화염검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 어느 것보다도 그를 두렵게 했다(창 3:24).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손에 놓여진 쓴잔 속의 쓸개즙과도 같았다. "그것으로부터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 여호와여, 비록 내 생명은 잃을지라도 주의 사랑은 잃지 않게 하옵소서. 나를 개의 세력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 이것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했던 그 사탄을 여자의 후손이 치열한 격투를 벌여야 했고 또 오고 있는 것을 목격한 그 세상 임금을 (요 14:30)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여호와여, 내가 그의 협박에 압도되지 않도록 구원하소서." 그는, 주께서 이전에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즉 "내 기도에 응답하시고 그에게서 나를 구하셨나이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사탄과 그의 시험을 이기시어 얻은 승리를(마 4장)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때 마귀는 얼마 동안 그를 떠나 있었으나(눅 4:13) 이제 또 다른 모습으로 돌아와 무섭게 그를 공격해 온 것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그 때에 내가 승리하게 하셨사오니 이제도 내가 주권과 권세를 잡고 세상 임금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들소 뿔에서" 우리를 구원하시어 우리가 시달리지 않게 해 주셨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사자의 입에서 구해져 찢기우지 않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갖도록 하자. 건지셨던 자가 건지시며 또 건지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기도는 물론 응락되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항상 그의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아버지께서 사망에서 그를 건지시지는 않았을지도 사흘 만에 그를 죽음의 티끌에서 일으키셨는데, 이것은 그가 십자가에서 내려오도록 도우시는 것보다 더욱 큰 은총의 일례였다. 그를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셨다면 그것은 그의 사업을 방해했었을 것이나 그의 부활은 그것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이것을 노래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해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의 영혼 속에 그의 부활의 능력과 그의 고난의 동참을 체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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