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 십일조에 관한 질문을 받고 논쟁하는 현장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십일조의 신학적인 분석과 기원, 목적 등에 대한 내용들을 정리하였습니다. 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십일조를 어떤 자세로 해야 할 지에 대해 소논문의 형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오늘 날에도 십일조를 해야 하는 것인가?
서론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십일조에 대한 부담을 느끼거나 그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곤 합니다. 이러한 고민의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존재합니다. 첫째, 신약 성경에서는 십일조에 대해 분명하게 명령하는 구절을 찾기 어렵다는 신학적인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일부 교회의 재정 운영 방식이 너무나도 불투명하다는 불신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재정의 투명성에 대한 문제는 십일조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현대적인 고민을 염두에 두고, 성경에 나타난 "십일조"의 개념을 구약과 신약의 맥락에서 균형 있게 살펴보고, 다양한 신학적인 관점들을 바탕으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십일조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져야 할지를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하여, 십일조를 보다 깊이 있고 성숙된 이해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론
1. 구약 성경에서의 십일조 : 그 근거와 목적
구약 성경에서 십일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중요한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 기원은 모세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은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또,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서원한 바가 있습니다. 이러한 족장 시대의 사례들은, 십일조가 고대 근동의 보편적인 관습이었다는 주장과 함께, 율법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신앙적인 원리였다는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그리고 율법이 모세를 통해 주어진 이후, 십일조는 보다 더 체계화되고 의무적인 성경을 띠게 되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땅의 소산이나 가축의 십분의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가 구체적인 제도로까지 확립이 됩니다. 구약의 십일조 제도는 단순히 소득의 10%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넘어서, 여러 목적을 가진 복잡적인 제도였습니다.
표 1 : 구약의 십일조 제도의 개요
종류 |
주요 성경 구절 |
목적 |
주기 |
수혜자 |
레위인의 십일조 |
레 27:30-33; 민
18:21-26 |
토지 분깃이 없는 레위인과 제사장의 생계 및 성막/성전 봉사 지원 |
매년 |
레위인, 제사장 |
절기 십일조 |
신 12:17-19; 14:22-27 |
예루살렘에서의 종교 절기 준수 시 가족 및 레위인과 함께 소비 |
매년 |
헌납자 가족, 레위인 |
구제(자선) 십일조 |
신 14:28-29; 26:12-15 |
각 성읍 내의 레위인, 나그네,
고아, 과부 등 사회적 약자 구제 |
매 3년마다 |
레위인, 나그네, 고아, 과부 |
위의 표 1에서 제시한 세 가지의 십일조가 별개의 것인지, 혹은 하나의 십일조를 각각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인지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지금도 니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부담했던 십일조는 소득의 10%보다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또한, 구약의 십일조는 주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 난 농산물과 가축까지도 해당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구약에 나타난 십일조의 신학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행위였습니다.
- 둘째,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감사와 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 셋째, 제사장 직분과 성전 예배를 유지하는 실질적인 방법이었습니다.
- 넷째, 공동체의 유대를 더욱 강화시키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사회 복지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말라기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따라서, 이러한 내용들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약적인 의무 이행의 관점에서 그리고 성전 중심 제사 제도의 배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신약 성경에서의 십일조와 나눔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십일조에 관한 관점은 변화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직접 언급하신 경우는 주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는 맥락 속에서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이나 누가복음 11장 42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 말씀을 두고서, 예수님께서 십일조 자체를 폐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강조하시면서 여전히 지켜야 할 것으로 인정하셨다는 해석을 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십자가 사건 이전, 즉 구약의 율법 아래에 있던 유대인들에게 당시의 의무를 언급하시며 위선을 지적하신 것이지 새 언약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명령하신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한편,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7장을 통하여 멜기세덱의 제사장직과 레위 제사장직을 비교하면서, 그리스도의 우월한 대제사장직을 논증합니다. 이 부분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사건을 언급합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 내용을 근거로 신약 시대에도 십일조의 원리가 지속된다고 주장합니다.
결정적으로, 사도들의 서신서나 사도행전 등의 다른 신약 성경에서도 교회가 성도들에게 십일조를 명령하거나 헌금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바울을 비롯한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구약의 십일조 제도를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에 관해 가르칠 때 십일조를 헌금 기준으로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신약 성경에는 '나눔'과 '연보'라는 새로운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나눔과 연보는 구약에서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동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강조하는 나눔과 연보의 핵심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 자발성과 기쁨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9:7을 통하여, 마음에 정한 대로 바치되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겨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 둘째, 관대함과 희생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힘에 지나도록 연보하였으며, 바울은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며 칭찬하였습니다.
- 셋째, 형편에 따른 비례성입니다. 바울은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드리라고 말했으며(고전 16:2), 하나님께서도 있는 대로 받으신다(고후 8:12)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넷째, 필요 중심성입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구제 헌금과 복음 사역자를 지원하는 헌금, 그리고 공동체 속의 궁핍한 이들을 돕는 헌금 등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신약 성경에는 '청지기 직분'이라는 더 넓은 개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청지기 직분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것-시간, 재능, 재물 등-을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의 소유주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자원들을 관리하는 청지로서 마지막 날에 반드시 결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청지기 직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청지기 관점에서 볼 때, 헌금은 단순히 소득의 일부를 내는 것을 넘어서,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들을 신실하게 관리하는 행동들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0%라는 특정한 비율에 집중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것에 대한 책임과 신실한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어떤 인식을 가져야 하며, 십일조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오늘날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십일조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입니다. 십일조가 오늘날에도 의무적인 규정인지, 아니면 하나의 기준으로 삼을 만한 지침인지, 혹은 완전히 폐지된 구약의 제도인지에 대해 다양한 신학적인 입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표 2 : 현대 기독교인의 십일조에 대한 관점 비교
관점 |
주요 주장 |
주요 근거 |
의무적 규정 |
십일조는 시대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원리이며,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
율법 이전의 실례(아브라함) ,
예수님의 인정(마 23:23) , 사역 지원
원리의 연속성(고전 9장) , 말라기의 축복 약속 |
자발적 지침/기준 |
십일조는 구약의 명령이지만, 신약에서는 의무가 아니다. 그러나 신실한 헌금을 위한 유용한 기준이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10%가 성경적 기준임을 인정하나 , 신약의 자발성 강조 , 개인의 양심과 형편 고려 |
폐지된 제도/원리 |
십일조는 모세 율법과 구약 제정의 일부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고 폐지되었다. 신약은 십일조가 아닌 다른 헌금 원리를 제시한다. |
신약의 명시적 명령 부재 , 율법/새 언약의 불연속성 , 신약의 은혜/자발성/비례성 원리(고후 8-9장) , 구약과의 상황적 차이 |
청지기적 관점 |
논점은 10%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모든 자원(100%)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이다. 십일조는
전체 청지기 직분의 일부일 뿐이다. |
하나님 소유권 , 모든 자원에 대한 책임 , 신약의 청지기 사상(오이코노미아) |
이러한 신학적 논쟁과 더불어,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교회의 재정 투명성 문제는 현대인들이 십일조에 대해 갖는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십일조 명령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과 더불어, 헌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불신은 헌금 자체에 대한 주저함으로 이어지기 쉬운 환경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재정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예: 예결산 보고, 정기 감사), 재정 운영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책들은 단순한 행정적 문제를 넘어, 성도들이 기쁜 마음으로 헌신하도록 돕는 목회적 책임이기도 합니다. 신뢰 없이는 어떤 신학적 논의도 공허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십일조에 대한 논의는 "얼마를 내야 하는가?", "십일조는 10%를 의미하는가"라는 율법적 질문을 넘어 "어떻게 드릴 것인가?"라는 은혜에 기초한 질문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십일조(10%)는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신앙적 헌신을 위한 의미 있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절대적인 율법은 아닐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사도 바울의 권면과 같이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형편에 맞게,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십일조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자원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청지기적 삶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성경적 십일조는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신앙적,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던 복잡했던 제도이자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의 고백이었으며, 제사장 직분을 지원하거나 공동체의 연대와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사회적 시스템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신약 시대로 넘어오면서 십일조를 직접적으로 명령하는 구절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발적이고 기쁨으로 드리는 헌금이 강조되었습니다. 또, 각자의 형편에 따른 나눔과 모든 영역에서의 신실한 청지기 직분이 강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십일조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해석과 논쟁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 10%라는 수치가 의무적인 것인지 아니면 기준인지 아니면 폐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신학자들의 합의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요한 점은, 율법주의적인 접근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동기로 삼아서 자발적인 나눔을 실천하는 자세에 있습니다. 십일조는 실천과 나눔을 위한 하나의 기준이 될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규범으로 강요되어서는 안됩니다.
궁극적으로, 기독교인의 헌금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청지기적 삶의 표현이 되어야만 합니다. 각 개인들은 기도하며 자신의 형편과 믿음의 분량 안에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헌신해야 합니다. 동시에, 교회 공동체에 맡겨진 재정을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관리하며, 성도들의 신뢰를 얻어 건강한 헌금 문화를 조성할 책임이 있습니다. 개인의 신실한 헌신과 교회의 책임 있는 재정 운영이 함께 이루어질 때, 물질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으며 이웃을 향한 실천은 더욱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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