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9장을 근거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탐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왜 간절히 기도했을까요? 이 신학적 분석은 기도가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에 참여하는 필수적인 통로임을 밝힙니다. 다니엘의 성경 기반 중보기도, 공동체적 죄의 고백,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간구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기도 생활을 변화시키는 심오한 원리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 : 다니엘 9장의 내용을 근거로
서론: 예언적 확실성과 난해한 기도
다니엘 9장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긴장 관계를 제시하며 시작된다.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은 예언서들을 연구하던 중,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주어진 예루살렘의 70년 황폐 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해방이 보장된 상황에서, 논리적으로 기대되는 반응은 기쁨에 찬 기대와 축제 준비일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은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는 등 극심한 고통과 간절함이 묻어나는 기도의 행위에 돌입한다. 이미 하나님의 약속으로 보장된 것을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간구하는가? 이 역설적인 행동이 본 소논문이 탐구하고자 하는 핵심 질문이다.
본 소논문은 다니엘 9장이 기도를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을 변경하려는 인간적 시도가 아니라, 그 작정의 전개 과정에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필수적인 인간 참여의 수단으로 제시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기도는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고, 축복을 위한 언약적 조건을 충족시키며, 기도하는 자를 즉각적인 역사적 맥락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속 목적에 대한 더 깊은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하는 기능을 한다. 하나님의 약속의 확실성이야말로 기도를 단념시키는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기도를 촉발하는 원동력이 된다. 약속의 '무엇'(회복)에 대한 확신이 '어떻게'(회개하는 기도)의 필연성을 이끌어내며, 이로써 역설은 일관된 신학적 메커니즘으로 전환된다.
I. 다니엘 중보기도의 해부: 신중심적 모델
이 부분에서는 다니엘 기도의 구조, 내용, 신학적 논리를 분석하여 그 힘이 철저한 신중심성에 있음을 밝힌다.
A. 기도의 성경적 기초 (다니엘 9:1-2)
다니엘의 기도는 개인적 필요라는 진공상태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가 "책들" , 특히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부지런히 연구한 데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다. 이러한 사실은 정보에 입각한 효과적인 기도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말씀으로 충만하다는 근본 원리를 확립한다. 신학자 존 파이퍼가 지적했듯이, "기도는 성경에서 시작된다... 마음이 성경으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면, 마음은 일반적으로 기도로 가득 차지 않는다". 다니엘의 기도는 신명기, 시편, 예레미야서의 내용을 암시하며 이를 증명한다. 기도는 신적 계시에 참여하는 주요한 형태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간구의 형태로 그분께 되돌려 드리는 행위이다.
B. 기도의 자세: 공동체적 고백과 신적 공의의 인정 (다니엘 9:3-14)
다니엘의 육체적 자세, 즉 금식, 베옷, 재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깊은 내적 겸손, 애통, 회개를 외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그의 집중된 강도와 상황의 심각성을 나타낸다. 주목할 만한 특징은 다니엘이 일관되게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의로웠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자신을 백성의 죄와 분리하지 않는다. 다니엘은 그들의 죄책감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 틈에 서는데 , 이것이 참된 중보의 특징이다.
기도는 "죄를 범하였고... 악을 행하였고... 반역하였나이다" (5-6절)와 같이 다양한 죄의 용어를 사용한 고백의 연속이다. 변명은 없으며,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할 뿐이다. 결정적으로 다니엘의 고백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확고한 인정과 나란히 놓인다.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7절). 그는 포로 생활이 임의적인 행위가 아니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언약을 어긴 것에 대한 공의롭고 확증된 결과임을 인정한다 (11-14절).
C. 기도의 논리: 하나님의 자비와 영광에 대한 호소 (다니엘 9:15-19)
기도의 간구는 백성의 어떠한 공로에도 근거하지 않는다. 다니엘은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18절)라고 명시적으로 밝힌다. 다니엘의 호소의 궁극적인 근거는 신중심적이다: 즉, 하나님 자신의 명성이다. 간구는 "주를 위하여" (17, 19절) 하는 것이며, 이는 예루살렘과 그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19절) 되기 때문이다. 백성의 치욕은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치욕이 된다. 이러한 내용들은 존 파이퍼 등이 명료하게 설명한 신학과 일치한다. 즉, 기도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향한 그분의 열정에 호소할 때 가장 강력하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비와 신실함의 성품을 영화롭게 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시기를 구한다.
II. 신학적 종합: 신적 작정에 대한 규정된 참여로서의 기도
이 부분은 주석에서 신학적 종합으로 나아가 주권과 기도의 핵심적인 역설을 직접 다룬다.
A. 변경의 원인이 아닌, 규정된 수단으로서의 기도
이 부분은 핵심적인 신학적 해결책을 명확히 제시한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행동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정적인 숙명론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목적뿐만 아니라 그 목적에 이르는 수단까지도 주권적으로 작정하신다. 기도는 이러한 규정된 수단 중 하나이다. 그것은 마지못해 하는 하나님을 설득하거나 그분의 영원한 작정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다. 대신,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선택하신 통로(channel)이다. 제시된 본문에서 기도를 "통로"라고 지칭한 개념을 이 부분에서 신학적으로 입증할 것이다. 한 문헌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자신이 하실 일에 대한 확실한 작정을 가지고 계시지만... 이와 함께 순종하는 백성이 기도를 통해 그 실행에 참여할 기회를 이미 연관시키셨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데 대한 순종과 참여"이다.
느헤미야의 예는 강력한 유사점을 제공한다. 다니엘 9장의 시간표는 이미 작정되었지만, 그것은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라는 특정 사건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 조서는 느헤미야의 열정적인 관심과 결정적인 순간에 드린 그의 구체적인 기도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느 2:4). 느헤미야의 기도가 그 계획을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활성화하기 위해 사용하신 인간의 행동이었다.
이는 기도의 '능력'을 재정의한다. 기도의 능력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맞추도록 구부리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뜻의 성취에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우리를 그분의 뜻에 맞추는 능력에 있다. 기도의 효력은 그분의 일에 당신의 백성을 포함시키려는 하나님의 주권적 설계에 대한 증거이지, 그분의 통제에 대한 도전이 아니다. 기도는 '얻는 것'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되는 것', 즉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기꺼이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는 인간의 책임을 신적 주권의 구조 바로 그 안에 통합함으로써 역설을 해결한다.
B. 신적 응답: 요청을 넘어서는 계시 (다니엘 9:20-27)
응답의 즉각성은 주목할 만하다. 다니엘이 아직 기도하고 있는 동안, 천사 가브리엘이 도착한다 (21절). 응답에 대한 명령은 "네가 빌기를 시작할 즈음에" (23절) 주어졌는데 , 이는 하나님의 뜻과 영광에 부합하는 기도에 응답하시려는 하나님의 열렬한 준비 태세를 의미한다.
응답의 내용인 '일흔 이레'(Seventy "Sevens")의 예언은 다니엘의 즉각적인 요청을 극적으로 초월한다. 다니엘은 70년 포로 생활의 끝을 위해 기도했다. 가브리엘은 궁극적인 구속을 위한 490년 계획을 드러낸다. 일흔 이레의 여섯 가지 목표(24절)는 포로 생활의 근본 원인인 죄 자체를 다룬다: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하나님은 역사적 회복에 대한 기도에 종말론적이고 구원론적인 구원의 약속으로 응답하신다.
이는 올바르게 지향된 기도가 기도하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훨씬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기도를 단지 행동의 계기로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과 궁극적인 그리스도 중심적 목적을 드러내시는 계기로 사용하신다. 이 응답은 물리적 성전의 회복을 넘어, "끊어져" 없어질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아의 속죄 사역을 가리킨다 (26절).
결론: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다니엘 9장의 영원한 유산
이 부분은 본 소논문의 발견을 종합하여 초기 질문에 대한 간결한 답변을 제시한다. 다니엘 9장의 모델에 근거하여,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무지하시거나 의지가 없어서도 아니며, 그분의 마지못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심오한 신학적 이유로 기도한다.
하나님의 뜻에 뿌리내리기 위해: 다니엘의 기도처럼 성경으로 시작하는 기도는 우리의 요청이 덧없는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된 성품과 약속에 의해 형성되도록 보장한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우리 자신을 맞추기 위해: 고백 행위는 하나님께 정보를 드리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에 동의하고, 우리의 실패를 인정하며, 그분의 방식의 공의를 확증하게 하여,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그분의 자비를 받을 준비를 시킨다.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기 위해: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의 전개에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참여하는 주요 수단이다. 세상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소명적 부르심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기도의 가장 높은 동기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분의 자비와 그분의 이름을 위해 호소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이 만물의 근원이자 목표이시며, 우리의 구원은 그분의 궁극적인 찬양을 위함임을 확증한다.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해: 가브리엘의 응답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도는 더 큰 신적 계시의 문을 연다. 하나님은 종종 겸손하고 신중심적인 간구의 맥락에서 자신의 영원한 구속 계획에 대한 더 깊은 통찰력을 부여하기로 선택하신다.
궁극적으로 다니엘 9장은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는 메커니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훈련임을 가르친다. 그것은 인간의 책임이 신적 주권과 만나는 신성한 공간이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춰지고, 우리가 가장 위대한 이야기, 즉 그분의 구속과 그분의 영광을 위한 이야기에 기꺼이 참여하도록 초대받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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