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 전에 시작된 사랑, 세상을 향해 달리는 발걸음 - 예정론에 관한 칼럼
창세 전에 시작된 사랑, 세상을 향해 달리는 발걸음
우리는 가족 구원에 대한 죄책감을 가질 때가 있다.
가족과 이웃의 영혼을 품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할 때 성도의 마음에는 깊은 무기력과 두려움이 찾아오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구원받을 사람을 이미 정하셨다면, 내가 굳이 눈물 쏟아 전도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나 "내가 제대로 전하지 못해 저 영혼이 멸망하면 어쩌나"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과 에베소서 1장에서 선포한 예정론은 성도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운명론의 족쇄가 아니었습니다. 서슬 퍼런 박해와 영적 혼란 속에서 흔들리던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구원의 닻을 내려주려는 따뜻한 목회적 위로였습니다.
- 로마서 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에베소서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핵심 원어의 의미들
핵심 헬라어 원어를 살피면 예정의 본질이 냉정하고 기계적인 조종이 아닌 깊은 언약적 사랑임을 알게 됩니다. 바울이 사용한 '프로오리조(προορίζω, 미리 정하심)'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삶에 파멸 대신 그리스도의 형상이라는 영광스러운 최종 지평선을 그어두셨음을 의미합니다.
'프로기노스코(προγινώσκω, 미리 아심)' 역시 단순한 사전 지식을 넘어 성도를 마음에 품으신 언약적 사랑의 결속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고 부르심과 의롭다 하심을 거쳐 영화의 자리까지 이어지는 구속의 황금 사슬을 확정하셨습니다. 구원의 뿌리가 변덕스러운 인간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있기에 성도의 구원은 영원히 안전합니다.
예정론은 우리의 믿음과 용기의 근원이다.
그렇다면 주권적 예정과 복음 전도는 어떻게 연결될까요?
하나님은 구원의 목적뿐만 아니라 성도의 입술을 통한 복음 선포라는 거룩한 수단까지 함께 계획하셨습니다. 주님은 고린도에서 지쳐 있던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며 말하라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정이란, 전도를 멈추게 하는 핑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택한 백성을 반드시 찾게 만드는 믿음과 용기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거절의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일상 속에서 소박하게 복음의 씨앗을 뿌릴 때, 성령 하나님께서 택하신 영혼의 문을 열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신다는 뜻입니다.
예정론을 힘입어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신 목적은 지옥 형벌에서 벗어나는 은혜에 있습니다. 더 나아가, 궁극적인 목적은 맏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십자가 사랑을 본받아 참된 자녀로 성숙해지(聖化)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참된 예정론은 성도를 교만이나 영적 나태로 이끄는 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도들이 십자가 앞에 겸손히 무릎 꿇어야 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따라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입니다.
실패감과 두려움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창세 전 시작된 주님의 영원한 사랑을 가슴에 품으십시오. 성도가 삶의 터전에서 전하는 소박한 위로와 복음의 한마디를 통해, 주님은 오늘도 당신의 귀한 자녀들을 빛으로 불러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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