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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부활주일] 나를 붙들지 말고 전하라, 요한복음 20장 11절-18절 - 부활주일 설교 요약

2022년 부활주일을 맞이하며, 날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묵상하고 부활주일 설교를 정리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 주신 장면에서 하신 말씀들을 중심으로 부활주일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2022년 부활주일 설교



나를 붙들지 말고 전하라, 요한복음 20장 11절-18절



예수님의 사명 - 아이로(αἴρω)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삶과 그분의 사명을 한 단어의 헬라어로 표현한다면, "αἴρω"(아이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의 원 뜻은, "제거한다"입니다.


1. 지고 가는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던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2. 없이 하소서

세례를 받으신 이후,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하시며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들까지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위대한 사역들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칩니다.

요한복음 19: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3. 치워 달라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셨습니다. 이 날이 안식일이 시작되는 날이면서 유월절 저녁의 어린 양을 먹는 만찬(סדר, 세데르)에 참여하는 날이므로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체들을 나무에 매달아 두지 말고 치워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합니다.

요한복음 19: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4. 가져가니라

그렇게, 운명하신 예수님의 시체를 빌라도가 십자가에서 내려 보관하고 있었고,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당돌하게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요한복음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5. 주님의 삶 - 아이로

이 과정들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이라는 말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며 외치던 "없이 하소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예수님의 시체를 "치워 달라"고 요청한 것이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빌라도에게 받아 "가져가는 것" 등에 사용된 단어들이 동일한 "αἴρω"(아이로)라는 단어 입니다.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결국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언할 때, 유대인들의 외침 소리에 의해 예수님의 죽음이 결정될 때, 운명하신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릴 때 그리고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시체를 가져갈 때 모두 공통적으로 "제거 한다"라는 뜻의 "αἴρω"쓰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 전체가 일관된 십자가의 생애, 즉 죽기 위한 삶임을 증명하는 단어가 바로 "αἴρω"입니다.

예수님은 살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다는 것은, 곧 죄인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나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나는 살았다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신 말

이처럼 죽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죽음으로서 사명이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죄를 제거하시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을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님을 3일 만에 부활 시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시자,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 보고 붙들려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17절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붙들지 말고 전하라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자신을 붙들지 말라, 혹은 만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실제로 마리아가 예수님께 손대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8장 9절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을 붙들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의심하던 도마에게는 예수님이 직접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붙들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1.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이전처럼 제자들과 함께 유대 땅을 다니시며 말씀을 전하시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죽었던 나사로가 부활한 이후,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자신을 살리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살았겠지만, 그의 삶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평소와 같이 먹고 자며 일상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더 이상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 마리아와 함께 하시며 제자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올라가시기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아버지 하나님께 올라가셔야, 예수님처럼 제자들도 부활하며 모든 믿는 자들이 부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모습을 제거하고 새로운 모습, 새로운 자세, 새로운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나를 붙들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도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살아 가야만 합니다. 부활의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이전 것은 다 지나갔으니 새로운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받은대로 되돌려 주는 삶이 아닌, 인내하며 참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바뀌어야만 합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우리 모두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2. 가서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모습을 붙들고 멈추어 있지 말고, 가서 부활하신 주님을 전해야만 하기 때문에 붙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가서 형제들에게 본 것과 들은 것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변화산 위에서 변화하신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는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고 여기에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시 산으로 내려 가셨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셔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변화산 위의 영광에 붙잡혀 있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로 올라가셔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영광을 보았다면, 머물러 있지 말고 전해야만 합니다.

부활의 영광이 놀랍고 은혜가 됩니다. 하지만 나 혼자서 그 영광과 은혜를 목격한 채 숨겨 두지 말고, 가서 전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음을 증언했고 아버지 하나님께 올라가시겠다고 말씀하신 내용들을 있는 그대로 알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사명입니다.



우리의 사명

제자들은 알지 못하는 것,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부활의 현실 앞에서 도저히 부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 부활의 소식을 한마디도 전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알지 못하는 것, 바로 부활을 경험하고서 자신이 귀신을 만났다거나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믿었을 뿐 아니라 전했습니다.

부활이 정말 우리에게 믿어지는 현실이 된다면, 아니 점점 현실이 되어 가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이 더 또렷하게 들릴수록 우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게 되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죽음이 전부인 듯 보이는 현실 앞에 굴복하지 않고, 이미 시작된 부활의 삶을 살아 내고, 복음으로 타인을 살려 내는 삶을 살기 시작할 것입니다. 복음의 증인으로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내가 만났다라는 막달라 마리아의 고백을 전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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