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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주석] 시편 7편 10절-17절, 핍박자의 파멸 - 주석과 해설 정리

하나님께 자신의 무죄함을 호소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 주시길 다윗은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본문인 시편 7편 10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에서 다윗은 대적들을 심판하시고 파멸시켜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대한 매튜헨리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시편 메튜헨리 주석



시편 7편 10절-17절, 핍박자의 파멸 - 주석과 해설 정리


이 시편의 앞 부분에서 기도로써 하나님께 호소하고 그의 결백함을 엄숙히 고백하였던 다윗은 뒷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써 그 호소에 대한 심판을 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심판이 의인에게는 행복과 안전을 가져다 주고 계속 회개할 줄 모르는 악한 자들에게는 명백한 멸망을 가져다 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만이 다윗의 보호자이시다


다윗은 그의 강력한 보호자이시며 구세주이신 하나님, 그리고 억압당하는 무죄한 자를 옹호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10절). "나의 방어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하나님께서 내 방어가 되신다는 사실을 내가 발견하게 될 뿐만 아니라, 나는 오직 그 속에서만 방어와 안전을 구한다. 위험한 때에 내가 바라는 피난처는 오직 하나님 안에만 있다. 내게 방패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임에 틀림이 없다. "나의 방패는 하나님께 있도다"(어떤 사람들은 그 구절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그 방패는 그의 것인 모든 사람들에게 보호를 확신시켜 준다. 그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이다(잠 18:10). 다윗은 다음 두 가지 근거위에 이러한 확신을 갖고 있다.


1. 하나님은 신실한 모든 사람에게 특별한 은총을 내리신다.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을 영원히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을 하늘의 왕국에 있게 하실 것이다. 그들에게 선을 베푸시는 한 그는 현재의 환난에서 그들을 구원하신다. 그들의 결백함과 정직함은 그들을 보존할 것이다. 마음이 정직한 자는 인전하며, 거룩한 가호 아래서 그러하다고 스스로 알아야 한다.


2. 하나님은 공의에 대해 일반적인 관심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의 의인을 판단하시도다." 그는 모든 의로운 주장을 인정하신다. 그리고 모든 의로운 자들의 주장을 옹호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며"(어떤 사람들은 그 구절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그는 친히 의를 행하실 뿐만 아니라 인생들이 의를 행하도록 돌보실 것이다. 그리고 모든 불의를 보복하시고 벌하실 것이다.



그는 그를 핍박하는 모든 사람들의 멸망을 확신하고 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려" 하지 않는 자들인 것이다. 그는 여기에 그들의 파멸을 적어 놓고 있다. 그것은 가능하다면 그들이 자신의 유익함을 위해 악의를 떠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거나, 또는 자신의 위안을 위한 것이었다. 즉 그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한 때 형통하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그곳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1. 그들은 진노의 자손들이다.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노하시며, "매일 분노하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일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을 행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분노하시며 "진노의 날에"대비하여 그 분노를 쌓아 놓으신다. 그의 자비가 매일 아침 그의 백성들에게 새롭게 부여되는 것과 같이, 악인들의 새로운 범죄가 저질러짐에 따라 그의 진노도 매일 아침 그들에게 새로 임한다. 하나님은 악인들이 가장 형통하고 즐거워하는 날에도, 그들이 예배드리는 날에도 그들에게 분노하신다. 그들이 형통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분노 속에서 행해지는 일이며, 그들이 기도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기도가 가증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 위에 머물러 있으며(요 3:36) 그 진노는 계속적으로 불어난다.


2. 사망과 지옥의 아들들이다.

그들은 사망의 자손들이며, 모든 진노의 자손들과 같이 파멸하게 되어 있는 지옥의 아들들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그들의 멸망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파멸은 "전능자로부터 나온 멸망"이다. 우리 각자는 이 멸망을 두려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하나님의 분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13,14절).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암시하고 있다.

[1] 죄인들의 멸망은 그들의 개심에 의해 방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위협에는 이러한 단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아" 그 악한 길에서 "회개치 아니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일을 버리지 아니하면, 그는 그것이 그의 파멸을 초래하리라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면 그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며 모든 것은 잘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분노의 위협 가운데에도 은혜로우신 자비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은 파멸하는 자들의 멸망 속에서도 영원히 하나님을 의롭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회개하여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악행을 계속하여 나아가 죽게 되고 그들의 피가 그들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게 된다.

[2] 또한 그것은 만일 죄인이 개심으로 인해 그 파멸을 방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그를 위해 예비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13절) 그는 "죽일 기계를 예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죽이고자 하신다면 어떤 피조물도 죽이실 수 있는 기구를 갖고 계시다. 그가 원하신다면 가장 보잘 것 없고 가장 약한 것들도 죽이는 일에 사용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여기에 여러 가지 도구가 나와 있는데, 그것은 모두 협박과 살인의 냄새를 풍기도 있다. 칼은 가까이에 있는 자들을 상처입히고 죽일 수 있으며, 활과 살은 모든 것을 해명하는 하나님의 의가 미치지 못할 정도로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상처입히고 죽일 수 있다. 만일 죄인이 "철병기를 피한다" 할지라도 "놋활이 쏘아 꿸 것이다"(욥 20:24).

둘째, 이 죽일 도구가 이미 모두 예비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찾으실 필요가 없이 그것들을 항상 손에 들고 계시다. "심판은 냉소자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불 지옥은 오래 전에 준비되어 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죽일 기계를 예비하고 계시는 반면에 죄인들에게 그 위험을 적당한 때에 경고하시어 그들이 회개하고 그것을 예방할 수 있는 여유도 주신다. 그는 형벌 주시는 것을 서두르지 않으시며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며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기로 "

넷째, 회개할 시간을 주기 위해 파멸이 오래 지연될수록, 그 때를 잘 선용하지 않는다면 그 파멸은 더 쓰라릴 것이며 더 무거울 것이고 영원한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동안 칼은 갈아지고 있으며 활은 당겨지고 있다.

다섯째,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의 멸망은 그것이 비록 늦게 올지라도 분명히 오고야 만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비되어"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오래전부터 그들에게 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거룩한 분노는 모두 죄인들 가운데 핍박자들을 겨냥의 표적으로 세운다. 다른 사람에게보다도 바로 그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살을 예비하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항하나 결코 그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다.

(2)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파멸시킬 것이다(14-16절). 죄인은 그 스스로를 파멸시키기 위해 큰 수고를 하는 것으로서, 올바른 지시를 받아 그의 영혼을 구원하려 하기보다는 자기 영혼을 저주하기 위해 더 큰 수고를 한다고 여기에 묘사되어 있다. 그의 행위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1] 그릇된 계획을 낳는 수고하는 여인의 고통으로(14절). 꾀가 들어 있는 죄인의 머리는 "잔해를 잉태하여"매우 교묘히 계략을 고안해 낸다. 그리고 그 계획을 깊이 두며 단단히 지키고 있다. 분노로 차 있는 죄인의 마음은 "궤휼을 낳는다." 그리고 그 마음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적하는 해로운 계획을 낳기에 고심한다. 그러나 태어난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궤휼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그의 오른 손에 있는 거짓이다. 그는 자기가 의도했던 것을 획득할 수 없다. 설령 그가 자기 목표를 달성했다 하더라도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감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바람"(사 26:18)과 "겨"(사 33:11)와 "사망"(약 1:15), 즉 "궤휼을" 낳는다.

[2] 웅덩이를 파기 위해 힘든 일을 한 다음 그 속에 떨어져 죽어버리는, 수고하는 남자의 고통으로.

첫째, 이것은 어떤 면에서 모든 죄인들에게 적용되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파멸을 예비하고, 죄의 짐을 지고, 그 타락에 굴복함으로써 스스로 파멸을 준비한다.

둘째,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나 그들이 이웃을 해할 뜻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 흔히 눈에 띄게 일어나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의 의로우신 손에 의해 그것은 "그들의 머리로 돌아 오게 한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수치스럽게 하고 파멸시키기 위해 고안했던 것이 그들 자신을 혼란시키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 증명된다.

살해할 계획을 품은 장본인이 바로 그 계획이 의해 멸망하는 것보다 더 공평한 법은 없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자기 칼에 죽은 사울에 적용시키고 있다.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하라


이 시편을 노래함에 있어서 우리는 여기에서의 다윗처럼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해야 한다(17절). 즉 그가 그의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은혜롭게 보호해 주시고 그들을 괴롭힌 자들을 추적하시어 그들에게 의롭게 복수하시는 일에 대해, 그에게 영광돌려야 한다. 그의 대적들의 교만하게 행할 때 그들보다 위에 계심을 보여 주시는, 가장 높으신 여호와께 우리는 이러한 찬미의 노래를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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