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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의 세 시기와 느부갓네살, 그리고 유다에 대한 바벨론의 세 번의 침공

바벨론은 긴 역사를 가진 제국이었습니다. 특히 구 바벨론은 함무라비 왕 등을 통하여 최고의 영광을 누린 제국이었습니다. 신 바벨론의 위대한 왕은 느부갓네살이며, 예루살렘을 세 번 침공하였습니다. 다니엘서에 대한 참고 자료를 정리하였습니다.


바벨론의 세 시기와 느부갓네살, 그리고 유다에 대한 바벨론의 세 번의 침공



바벨론의 세 시기와 느부갓네살, 그리고 유다에 대한 바벨론의 세 번의 침공



바벨론 제국의 세 시기


고대 세계의 위대한 제국이었던 바벨론의 긴 역사는 일반적으로 세 시기로 구분이 됩니다.


1. 구 바벨론(B.C. 약 1900-1600)

구 바벨론은 문명의 황금 시대를 누렸던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치리한 유명한 법을 만든 함무라비 왕 같은 권력 있는 왕이 다스린 시대였습니다.


2. 중간 바벨론(B.C. 1100 년경)

구 바벨론 시대는 바벨론의 대적 앗수르가 바벨론 도성과 그 주위를 침범했던 암흑 시대였습니다. B.C. 1100년 경의 한정된 기간 동안 느부갓네살 1세는 이들 적대적인 침략자들로부터 바벨론을 해방시킬 수 있었고 도성 안에 마르둑 신의 신상을 회복시켰습니다. 그 다음으로 이 시기를 다스린 왕은 왕하 20:12과 사 39:1에, 병에서 회복된 유다 왕 히스기야를 축하하기 위하여 사절단을 보냈다고 언급된 므로닥-발라단(Merodach-Baladan)이었습니다. 그는 B.C. 721년부터 709년까지 바벨론의 왕이었습니다(왕하 20:12, 사 39:1).


3. 신 바벨론(B.C. 626-539)

세계사 책에서 보통 신 바벨로니아로 불려집니다. 앗수르로부터 바벨론을 해방시킨 사람은 나보포라살(Nabopolassar, B.C. 626-605)이었습니다. 신 바빌로니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고 잘 알려진 왕은 신 바벨론 제국을 세운 느부갓네살 2세(B.C. 605-562)였습니다. 그는 유명한 제국의 창건자였으며 바벨론 도성을 탁월하게 건축한 위대한 건축가이기도 하였습니다.



신 바벨론의 왕들


나보포라살(B.C. 626-605) - 느부갓네살 2세(B.C. 605-562) - 아멜-마르둑(B.C. 562-560) - 네리글리싸르(B.C. 560-556) - 라바쉬 마르둑(B.C. 556) - 나보니두스(B.C. 556-539)

나보니두스는 마지막 10 년을 벨사살과 공동 통치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 2세


1. 바벨론 제국의 두 번째 통치자

느부갓네살은 히브리어로 ‘느부카드넷차르’입니다. 바벨론어 나부-쿠두리-우추르의 통상적인 히브리어 음역으로 “나부(Nabu)[신이]여 아들을 보호하소서” 혹은 “나부(Nabu)여 나의 지계석을 보호하소서”를 의미합니다. 그는 B.C. 605년부터 562년까지 바벨론을 통치한 바벨론 제국의 두 번째 통치자였습니다.


2. 예루살렘을 침공한 왕

여호야김 제3년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치러 왔을 때에 여호야김은 아직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아마도 앞에 묘사한 사건들이 일어난 지 70여 년이 지난 후에 그 사건을 기록하면서 느부갓네살을 “바벨론 왕”으로 호칭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기원전 605년 여름에 예루살렘을 침공하였습니다. 당시 유다 왕국은 이집트와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해 6월 1일 쯤에 느부갓네살은 유프라테스 강 북방에 위치한 이집트의 전초 요새인 카르케미쉬(Carchemish)를 함락시켰습니다. 이 요새의 함락으로 이집트는 사실상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남진(南進)을 계속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에서 유대 왕 여호야김에게 이집트와의 동맹을 파기하게 하고 바벨론과 새로운 군사 동맹을 수립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 왕의 충성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다니엘을 비롯하여 상류층 다수를 볼모로 취하였으며, 거룩한 금은 기명들의 일부를 취하였습니다.

그가 이런 조치를 취하였을 때에 본국으로부터 사자가 달려와 8월 15일에 그의 아버지 나보포라살이 사망했다는 기별을 전하였습니다. 본국에서는 왕권 탈취의 음모가 이미 진행 중인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는 포로들은 먼 길로 끌고 오도록 명령하고 자신은 소수의 호위대만을 지휘하여 사막을 가로지르는 위험한 지름길을 택하여 바벨론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그는 하루 80 km를 달리는 속력으로 여행을 하여 9월 7일에 수도 바벨론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착해보니 충성스런 조신(朝臣)들이 그를 위하여 보위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한편 다니엘과 포로들은 일상 무역로를 통하여 하루 평균 25 km를 여행하여 2개월 후에 바벨론 도착하였습니다. 일상 무역로는 예루살렘에서 바벨론까지 1500 km가 넘는 길이었습니다.



바벨론의 유다 침공 세 시기


유다에 대한 바벨론의 주요한 침공은 3번 있었는데,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B.C. 605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포함하여, 왕족과 귀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왕하 24:1-2, 대하 36:5-7).


2. B.C. 597

선지자 에스겔을 포함하여 여호야긴 왕, 왕자들 그리고 제사장들이 잡혀갔습니다(왕하 24:10-14, 대하 36:10).


3. B.C. 586

가난한 자 외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들이 시드기야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왕하 25:1-21, 대하 36:17-20). 이 해가 완전히 남방 유다가 멸망한 해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 느부갓네살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였다.” (Youth Instructor, 1904. 10. 11)

“세상 영광의 절정에 오르고 영감의 글에서까지 ‘열왕의 왕’(겔 26:7)으로 인정을 받았던 느부갓네살이었지만 그도 가끔은 그의 나라의 영광과 그의 통치의 혁혁함을 여호와의 은총에 돌렸다. 이 같은 일은 그가 큰 우상의 꿈을 본 후의 일이었다. 그의 마음은 이 계시에 의하여 그리고 바벨론 제국이 비록 만국을 다스리는 나라이기는 하나 마침내는 망하게 되고 그 뒤를 이을 다른 나라들도 사라져 버리게되어 최후에는 세상의 모든 권세들이 하늘의 하나님께서 세우실 나라로 대치될 것이며 그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아니하리라는 생각으로 깊은 감화를 받았다.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느부갓네살왕이 가졌던 고상한 개념은 그 후에 그의 경험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나 두라 평지에 모인 군중 앞에서 그의 거만한 정신이 겸손하여졌을 때에 그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權炳)은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고백하였다. 느부갓네살은 모태로부터 우상 숭배자요, 우상숭배에 대한 교육을 받은 자인 동시에 우상숭배하는 백성의 수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천부의 공의감(公義感)을 갖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반역자들을 형벌하고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으셨다.” (선지자와 왕, 51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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