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왜 고난을 겪어야만 하는가, 욥기 42장을 중심으로 본 고난과 하나님의 자기계시
I. 서론: 왜 성도는 고난의 이유를 묻는가
병상에 누워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환우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쉽습니다. 사고로 자식을 잃은 사람, 사업이 실패하며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빈털터리가 된 사업가에게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첫째 아이가 호르몬 문제로 인해 부산의 고신의료원에 매달마다 가서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만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주변의 분들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믿으세요"라는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분들의 위로의 말씀들이 귀에는 들리나 마음에까지 닿지는 않았습니다. 딸로 인하여 겪는 나의 아픔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고난을 경험할 때 본능적으로 원인과 의미를 찾기 마련입니다.
"내가 왜?"
라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성도들 역시 고난과 실패와 역경 속에서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가?"
라는 질문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욥기는 고난의 원인을 모두 설명하기보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욥이 고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고난의 원인을 알아서였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알았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욥기 42장을 중심으로 성도의 고난을 해석하는 성경적 관점을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II. 고난은 반드시 죄에 대한 직접적인 형벌인가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욥을 찾아 왔던 욥의 친구들이 전통적인 인과응보 사상을 강조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욥기는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단순한 공식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고난을 한층 더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인정받은 의인이었음에도 일반 사람들이 경험하기 힘든 극심한 고난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따라서, 모든 고난을 개인의 특정 죄에 대한 결과로 단순하게 환원하는 해석은 성경 전체와 욥기의 증언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도의 고난은 단순한 형벌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III.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신비이다
우리는 욥기 1~2장은 인간이 볼 수 없는 하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보게 됩니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지 못하는 욥은 자신이 겪게 되는 고난의 배경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됩니다. 욥기를 읽는 독자는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욥은 끝까지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인식과 이해와 지혜로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모두 파악할 수 없다는 분명한 한계를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성도는 고난의 이유 전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합니다.
IV. 하나님은 고난의 이유보다 자신을 계시하신다
욥기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시는 장면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창조와 섭리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셨습니다(욥 38-41장). 왜냐하면, 하나님의 응답은 정보 제공이 아니라 창조주로서의 "자기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욥기의 결말에서 욥이 하나님께 따지듯이 질문하는 태도가 완전히 변화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난의 원인을 설명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욥이 눈으로 귀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해답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입니다.
V.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하는 통로이다
욥은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욥기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이 극심한 고난을 당한 이후, 욥에게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주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인식"의 변화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난은 성도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끄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성화"되어 가는 존재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성도의 고난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은혜의 통로가 될 수가 있습니다.
VI. 결론: 성도는 정답보다 하나님을 구한다
성도는 고난의 원인을 묻고 따지며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원인을 탐구하는 그것이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그리고, 욥기의 결론 역시 "이유를 알았다"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났다"입니다. 참된 신앙은 모든 질문이 해결된 상태라기 보다는, 질문이 남아 있어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조급하게 고난 속에서 정답을 찾는 일만을 해서는 안됩니다. 고난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하며 묵상하며 하나님 자신을 붙드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도의 고난은 언제나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고난 가운데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며 성도를 더욱 깊은 신뢰와 교제의 자리로 이끌어 나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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