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도의 한복판에서, 나는 9월을 잊었다 - 요한계시록 20장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44도의 한복판에서, 나는 9월을 잊었다
2012년 9월 6일 목요일 오후 1시. 사해 남단, 마사다 근처의 기온은 44도였다.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이스라엘 최남단 홍해 근처의 타바 국경에, 성지순례팀을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이 정도의 기온이라면, 버스 밖을 나와 광야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숨이 막히고, 그늘에 들어가도 별 소용 없는 더위였다고 기억한다.
올해 한국의 8월도 40도를 넘나들었다. 그런데 지금 9월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선선해졌다. 새벽 공기는 벌써부터 차갑다. 우리는 그걸 이미 여러 번 겪어서 알고 있다. 50년 넘은 인생이니, 50번 이상은 경험했고 체득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8월의 불볕 더위 한복판에 서 있으면 9월을 잊어 버린다. 참으로 고약한 건망증이다. 곧 선선해질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더위에 지치고, 짜증 내고, 불평한다. 머리로 아는 계절의 흐름과 몸으로 견디는 계절은 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믿음도 그런 것 같다.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오늘이 너무 뜨거우면, 그 끝을 잊어버리고 그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신앙의 여정에는 불볕더위 같은 때가 있다. 치열하고 뜨겁고 피곤하다.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요한계시록 20장은 바로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신앙의 여정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악한 자는 심판을 받아 불못에 던져지고, 끝까지 주를 붙잡은 성도들의 이름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다. 그리고 주와 함께 영생의 복을 누린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성도의 마지막 모습이다.
요한이 핍박과 환난 가운데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너희들이 견디는 이 시간이 마지막은 아니라고.
히브리서 11장 1절은 말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보이지 않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반드시 이루어 진다. 그 약속을 오늘 붙들고 사는 것. 그게 믿음일 것이다.
8월의 40도 앞에서 9월의 바람을 기억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고통이 너무 뜨거우면 성경이 보여주는 마지막을 자꾸 잊는다. 그래도 다시 그 말씀을 붙든다.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늘을 견딜 수 있다. 지금은 여전히 덥고, 아직 바람은 불지 않는다. 하지만 9월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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