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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7장 1절-7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 말씀묵상과 새벽설교

형식적인 금식을 하면서도 이 금식을 이제는 끝내도 되지 않겠냐고 묻는 벧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의 위선과 거짓된 금식에 대해 섭섭함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금식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진정한 진실한 금식



스가랴 7장 1절-7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새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라마단


지난 4월 1일부터 30일까지 이슬람 교인들이 해가 떠 있는 낮에 금식을 하는 라마단 기간이었습니다. 4월 한 달 동안 금식을 하는 이유는, 이슬람교의 선지자인 무하마드가 성전인 '코란'을 배운 신성한 달로서, 이 한 달 동안은 해가 있는 동안에 음식이나 물을 먹거나 마시지 않으며 금식을 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를 합니다.

해가 진 후부터 식사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새벽 해가 뜰 때까지 밤새도록 식사를 합니다. 이스라엘에 있을 때, 이슬람 교인인 관광 버스 기사가 낮에는 물도 안 마시다가 운전하면서 조는 경우가 가끔씩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들은 낮 동안 금식을 하며 경건한 듯 보이지만, 밤새도록  먹고 마십니다. 라마단 기간에 금식을 하는 정확한 목적에는 관심이 없이 해마다 지켜 왔기 때문에 금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놀다가, 해가 뜰 때가 되면 잠을 잡니다.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직장에 나와서 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의 금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정 무하마드가 코란을 배운 것을 축하하거나 감사하는 것일까요? 실제로 옆에서 지켜 본 바에 의하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소에 못 먹던 것을 더 많이 먹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형식적인 유대인들의 금식


형식적인 종교 생활은 라마단을 지키는 이슬람 교인들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의 유대인들 역시 형식적인 금식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벧엘 사람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부하들을 보내고 금식을 계속해야만 하냐고 묻습니다.

벧엘 사람은 아마도 바벨론에서 벧엘로 돌아 온 귀환자인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금식에 대해 물었는데, 다섯째 달의 금식은 70여년 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날을 슬퍼하며 해마다 행하던 금식이었습니다. 일곱째 달의 금식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된 이후,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던 그달랴가 반란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을 슬퍼하며 행하던 금식이었습니다.

이제 스룹바벨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있으니, 굳이 금식을 할 필요가 없지 않겠냐는 의미로 스가랴를 찾아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유대인들이 행해 왔던 금식 그 자체에 대하여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금식에 대해 질문하는 유대인들에게 무엇이라고 질문을 하십니까?


1. 누구를 위한 금식이었는가?

하나님께서는 먼저 70년이나 행해 왔던 2개월의 금식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를 질문하십니다. 처음에는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행했던 금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넷째 달과 열째 달에도 금식을 추가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1년에 총 4달을 금식하였습니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금식(쭘, צום)은 음식을 완전히 안 먹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절제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금식 혹은 음식 절제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스가랴 7: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식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만족을 위한 것이며 책임 회피를 위한 것입니다. 형식적으로라도 금식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배를 드리는 흉내라도 내어야, 양심의 가책을 덜어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몸은 하나님 앞에 나아오며 그들의 모습은 금식하는 흉내를 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째서 주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마 9:14).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때가 되면 금식을 했다는 뜻입니다. 식사 시간이 되면 배가 고프듯이, 금식도 때가 되면 자동으로 행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마태복음 9: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금식"은 때가 되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식을 나의 만족을 위해 하는 것도 아닙니다. 금식은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신랑을 빼앗긴 이들이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슬퍼하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아픔을 진심으로 아뢰고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간구하는 결단의 모습이 금식입니다.

오늘 우리의 금식, 우리의 예배의 모습, 우리의 기도하는 자세는 어떠합니까? 하나님께 나아오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예배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우리의 기도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나의 만족을 위한 것입니까? 금식, 예배, 기도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위한 것이 되길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채워 주십니다.


2. 어떤 자세의 금식인가?

우리의 예배 생활, 우리의 기도 생활, 우리의 금식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면, 우리의 금식의 자세가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예수님께서 금식의 자세에 대해 가르쳐 주신 본문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16절입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금식의 자세는 외모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에 있습니다. 겉으로 금식하는 모습을 나타낸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금식을 통하여 나를 드러내려는 교만함이 그 속에 깔려 있다는 뜻입니다. '너희들은 금식하지 않지만 나는 지금 금식을 하며 경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의를 드러내어 나를 높이려는 모습입니다. 금식하는 성도들이 쉽게 빠지게 되는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식할 때 더더욱 조심하여 교만의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금식의 모습을 보이려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더욱 겸손하게 엎드리는 자세가 진정한 금식의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식은 오직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일상과 같은 자세를 취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내가 금식까지 해야만 하는 슬프고 괴로운 상황을 보고 계십니다. 은밀한 중에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께만 나의 심정을 아뢰는 겸손한 자세로 금식을 행해야만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갚으시리라"는 말씀은 헬라어로 '아포디도미'(ἀποδίδωμι)라고 합니다. 이 말의 원 뜻은, "갚아 준다" "되돌려 준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는 자세의 금식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금식까지 하며 기도할 때는 응답되고자 하는 기도의 제목이 있기 때문에 금식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칭찬으로는 원하는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갚아 주시며 이루어 주십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만 드리는 겸손한 자세의 금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다른 말로 응답되는 "금식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응답의 역사가 있는 금식 기도는, 먼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내 가슴을 치며 내 마음을 다 올려 드리는 진실한 금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아뢰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는 겸손한 자세의 금식을 하나님께서 기뻐 하십니다.

오늘 이 밤의 우리의 기도가 슬퍼하며 가슴 치며 드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의 기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참고할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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