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편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에는, 고통 받는 영혼이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인생 중에 큰 고통 속에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신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대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시편 14편 1절-3절, 인간의 타락 - 주석과 해설 정리
만일 우리가 솔로몬처럼 전심으로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지 알고자"(전 7:25) 한다면, 이 구절들은 우리에게 그것을 찾도록 도와 줄 것이며, 죄는 극히 악하다는것을 우리에게 알려 줄 것이다. 죄는 인류의 질병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것은 해롭고 전염성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죄가 얼마나 해로운가를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보라(1절).
1. 죄는 하나님의 영화를 경멸한다.
왜냐하면 모든 죄의 밑바닥에는 실제적인 무신론의 요인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우리는 때로 "분명히 우리의 세대처럼 무신론과 이단적인 것이 이처럼 크게 범람한 적은 없었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도 현재보다 더 낫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윗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존재와 믿음의 명백하고도 제일 첫째가는 원리를 거부할 정도로 불경건의 극치에 이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면 이제 다음을 주시하자.
[1] 여기에 묘사된 죄인. 그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하는 자이다. 즉 그는 무신론자로서, "세상에는 하나님(Elohim)이 없으며 재판장이나 다스리는 자가 없다. 또한 인간의 일을 주관하는 섭리도 없다 라고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할 수 없으나 그의 주권을 의심할 것이다. 그는 "그의 마음에"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판단이 아니고 오직 그의 상상일 뿐이다. 그는 현재 아무도 없다는 것으로써 그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전에 아무도 없었기를 원하며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가능성에 대한 공상으로 즐거워한다. 그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으므로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기를 즐긴다. 그는 반박당할 것이 두려워 그것을 감히 입 밖에 내지 않으며, 따라서 진실을 깨우치지도 못한다. 그는 그의 양심의 항의를 잠잠케 하고 그의 악한 길을 담대히하기 위해 그것을 은밀히 "그의 마음에"속삭일 뿐이다.
[2] 죄인의 성품, 그는 어리석은 자이다. 그는 비천하고 지혜롭지 못하며, 이것이 그가 어리석은 증거이다. 또한 그는 사악하고 불경스러우며, 이것이 어리석음의 원인이 되고 있다.
무신론적인 생각은 매우 어리석고 사악한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악함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생각을 분별"하시며 그것을 품고 있는 자에게 타당한 낙인을 찍으신다. "나발이 그의 이름이요, 우세가 그와 함께 있다."왜냐하면 그는 가장 명료한 빛에 대적하여 생각하고, 그 자신의 지식과 신념, 그리고 인간의 모든 지혜롭고 온전한 부분에속한 보편적인 감정에 대적하여 생각하기 때문이다. 죄 중에서 매우 냉혹하게 되어 그를 문책하는 자가 없는 것이 유익하다고 느끼게 되기 이전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2. 죄는 인간의 성품을 치욕스럽게 만들며 타락시킨다.
죄인들은 인간의 순수한 상태로부터 더렵혀졌으며 매우 타락했다. 저희는 "더러운," 타락한 "자가 되었다"(절3). 그들의 모든 능력은 매우 불온한 상태에 있어서 그들은 그들의 조물주를 증오하고 그들의 창조 목적에 응답할 능력을 온전히 잃게 된다. 정말로 "저희는 부패하도다."
[1] 즉 그들은 아무런 유익도 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이 세상의 무익한 짐일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며 그를 영화롭게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참된 친절을 행하지도 않는다.
[2] 그들은 많은 해로움을 끼친다. "저희는 소행이 가증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소행은 모두 사악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죄는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그가 미워하는 가증한 일이다(렘 44:4). 그리고 조만간에 죄인들에게도 역시 그것을 미워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미워함을 받는"(36:2), "가증의 멸망"(마 24:15)이 될 것이다. 즉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말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그들의 말 다음에 나오고 있다. 왜냐하면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이기 때문이다(딛 1:16).
이 병이 얼마나 번지기 쉬운 것인가를 보라.
그것은 인류 전체에 감염되어 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여기에 오셔서 목격자가 되신다. 그리고 그는 현장 목격자이신 것이다(2,3절). 여기에서 다음을 주시하라.
1. 그의 탐문.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이 낮은 세상을 지휘하시는 전망대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시도다." 그곳에서 모든 것을 보는 눈으로써 모든 "인생"을 살피시며 그들 가운데 스스로에 대해 올바른 "지각이 있는 자"그들의 의무와 유익에 대해 올바른 지각이 있는 자. 그리고 하나님을 찾고 그들 앞에 하나님을 내세우는 자가 있는가를 물으신다. 이렇게 살피시는 그는 아무리 어둡다 하더라도 필요하다면 선한 자를 발견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를 기꺼이 찾아내고자 하시며, 옛 세상의 노아에 대한 것처럼 그에 대해 분명히 주목하시고자 하신다.
2. 이 탐문의 결과(3절).
그가 찾아보신 결과, 저희는 "다 치우쳤으며" 배신이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고, 하나님의 대범하고 강력한 은혜가 변화를 일으키기 전에는 "선을 행하는 자가 없고, 하나도 없도다." 어떠한 선이라도 인생들 속에 있거나 그들에 의해 행해지는 것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그 자신의 지으신 것을 보셨을 때 "모든 것은 심히 좋았다"(창 1:31). 그러나 얼마 후에 그가 인간의 소행을 보셨을 때 모든 것은 매우 악했다(창 6:5). 즉 사람 마음의 모든 생각이 오직 악하게만 움직였고, 또 항상 그러했다. 그들은 그들의 올바른 길,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에서 다 치우치고, 파괴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우리가 연약하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이것을 노래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품의 타락을 탄식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가를 알도록 하자. 그리고 육에서 난 것은 육이므로 우리가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말을 듣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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