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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주석] 시편 19편 1절-6절, 창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 주석과 해설 정리

시편 19편 1절부터 6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저자는 자연 만물 속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위대하심에 대하여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서 자연 속에서 하신 일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대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시편 19편 1절-6절, 창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시편 19편 1절-6절, 창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 주석과 해설 정리


시편 기자는 이 구절들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온 세상에서 매일 볼 수 있는 것들로부터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도록 인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존재는 의심할 바 없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으며, 그의 영광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 속에서, 그것의 구조와 아름다움, 천체의 질서와 작용 속에서 탁월하게 빛나고 있다. 거룩한 전능에 대한 이 예를 하늘을 보고서도 "하나님이 없다"라고 말하며, 결과를 보고서도 "원인이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자의 어리석음을 보여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자들의 어리석음과 그들의 상상력의 헛됨을 보여 주고 있다. 우상 숭배자들을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지라도 하나님, 즉 빛의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을 뿐인 바로 그날의 빛에다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피조물을 통하여 우리가 보는 것


피조물들이 우리에게 알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유익하고 도움이 된다. 그러나 거기에서 하나님이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냄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1절). 그것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손으로 지어진 것임을 스스로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영원부터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변천과 운동에는 틀림 없이 시작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들은 스스로를 만들 수 없으며 그렇게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것들은 원자의 우연적인 충돌에 의해 만들어질 수는 없었다. 그것은 불합리한 일로서 그 이론을 따지기 보다는 차라리 웃음거리로 삼기로 합당하다. 그러므로 영원한 마음, 무한히 지혜롭고, 유력하며 선한 마음 이외의 것은 될 수 없는 창조주가 있어야 한다. 이처럼 그것들이 하나님이 지으신,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것들임이(8:3) 나타나 있다. 따라서 그것들은 그의 영광을 선포한다.

그가 창조하신 것의 탁월함으로서 우리는 위대하신 조물주의 무한하신 완전함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또한 하늘의 찬란함에서 우리는 창조주가 빛이라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우주의 광대함은 그의 광대하심을 말해 주고 있으며, 그 높음을 그의 초월성과 주권을, 이 땅에 대한 그것의 영향력은 그의 지배와 섭리, 그리고 우주적인 은혜를 말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그의 전능하신 능력을 선포하고 있다. 그것들은 그의 능력에 의해 처음에 만들어졌고, 그때에 정해진 법령에 의해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알리는 것들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것들은 어떤 것인가?


1. 하늘과 창공.

이것은 대개의 광대한 공간이며 운성과 고정된 별들의 영역이다. 사람은 몸의 구조상 짐승들보다 유리한 점을 갖고 있다. 즉 짐승들은 아래를 내려다 보도록 만들어져있고, 따라서 그들의 영혼도 밑으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위를 볼 수 있도록 직립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왜냐하면 위로 향한 그의 영혼은 곧 위로 가야만 하며 그이 사상은 소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2. 낮과 밤(2절).

"낮은 낮에게, 밤은 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빛과 어두움을 가르셨고, "땅에 있을 동안에는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2)는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변동없이 정해진 질서를 태초부터 오늘날까지 지켜오셨다. 그런데 그것의 확고 부동함을 말하기 위해 이 섭리의 언약이 은혜의 언약과 비교되고 있다(렘 33:20; 31:35). 낮과 밤이 그처럼 정확한 방법으로 교체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큰 일례이다.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의 왕국에서 뿐만 아니라 섭리의 왕국에서도, "그가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시는" 것과(사 45:7) 한가지를 다른 한 가지와 상반되도록 배치하신 것을 살펴보도록 이끌고 있다. 그것은 또한 인간에 대한 그의 선하심의 일례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침되는 것과 저녁되는 것을 즐거워 하게 하시기" 때문이다(65:8). 그는 꾸준한 운행에 의해 그 스스로를 영광스럽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흡족하게 하신다. 즉 아침의 햇빛이 그날의 일을 돕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녁의 황혼은 밤의 안식을 돕는다. 매일 낮과 매일 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하며 자기의 증거를 끝냈을 때 그것을 다음 낮과 밤에게 물려주어 그것 또한 하나님의 선을 말하게 한다.


3. 해의 빛과 영향력

해의 빛과 영향력은 특별히 뛰어나게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해는 그 자체가 모든 천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며 이 아래 세상에 가장 유익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없다면 세상은 모두 동굴이 되고 사막이 될 것이다. 다윗이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그 찬란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는 것을 보았을 때 이 시편을 지었으리라는 것은 터무니 없는 추측은 아니다. 해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살펴볼 수 있다.

(1) 해에게 지정된 장소, 하나님께서 하늘에 "해를 위하여 장막을 베푸셨도다." 천체는 "천군"이라 불리우고 있으므로 해가 야영하는 병정들처럼, "장막에 거한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합당하다. 해는 그 앞에 장막을 지니고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해가 끊임없이 운행되고 있으며 또한 결코 고정적으로 거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큰 저택은 마지막 때에, 즉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아올려지고 해가 혹암으로 변할 때에 장막처럼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2) 해에게 지정된 진로. 그 영광스런 피조물은 가만히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고(적어도 우리 눈에 보이는 것처럼)"하늘이 끝에서"그 반대편으로(낮 동안의 주기를 완성하기 위해), 그리고 다시 똑같은 지점으로 "운행하도록"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이처럼 불변성과 일정함에 의해 우리는 해가 언제 어디서 오는지를 언제든지 분명히 예고할 수 있다.

(3) 그 해가 나타날 때의 찬란함. 해는 "그의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다." 즉 최대한으로 공을 들여 훌륭하게 차리고 꾸민 신랑과 같이 그 자신이 유쾌하게 보이며 그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즐겁게 만든다. 왜냐하면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는 크게 기뻐"하기 때문이다(요 3:29).

(4) 해의 여정의 즐거움. 해가 걸어야 하는 길을 광대한 회로이며 잠시도 쉴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의 법에 복종하고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해 그렇게 행할 뿐만 아니라 매우 즐겁게, 그리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같이 "행한다. 이처럼 만족한 마음으로 의로우신 태양, 즉 그리스도는 그에게 주어진 일을 마치셨다.

(5) 이 세상에 대한 그의 전반적인 영향력.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땅 속에 파묻힌 금속에게도 태양은 그 영향력을 미친다.



세상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영광


누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는가? 그것은 세상 모든 곳에 선포되고 있다(3,4절). "언어가 없고(나라가 없다. 왜냐하면 나라는 "방언대로" 나뉘어졌기 때문이다. 창 10:31, 22)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줄이(즉 주야 평분선으로 추정된다)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자연의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을 선포하면서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4절).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자기나 또는 다른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노해서는 안 되는 이유로 이것을 듣고 있다. 즉 하나님은 이미 그가 지으신 것으로써 이방 사람들에게 그 자신을 알리셨고, 그들에게 증인이 결여되도록 만들지는 않으셨기 때문이다(롬 10:18). 그러므로 그들이 우상 숭배자가 된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롬 1:20, 21). 그리고 복음을 가리침으로써 그들을 우상 숭배에서 돌아 오게 하려했던 자들은 비난당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들의 배신을 막기 위해 이러한 방법을 쓰셨고 그것이 무효하게 되었을 때, 그 사도들은 그들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곧잘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즉 "언어가 없을지라도(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들리는 소리가 있도다." 만백성들은 이 자연의 불멸하는 설교자가 그들에게 그 자신의 언어와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절을 노래함에 있어서 우리는 하늘의 빛들에 의해 우리가 얻은 모든 위안과 유익에 대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그 하늘의 빛 위에 계신 의로우신 태양을 항상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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