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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주석] 시편 7편 1절-9절, 대적들에 대한 다윗의 기도 - 주석과 해설 정리

시편 7편 1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은, 대적들에 대한 다윗의 기도의 말씀입니다. 대적들을 멸해 주시고 자신을 구원해 달라는 다윗의 기도가 담긴 본문의 주석과 해설을 매튜 헨리 주석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시편 7편 1절-9절, 대적들에 대한 다윗의 기도 - 주석과 해설 정리



시편 7편 1절-9절, 대적들에 대한 다윗의 기도 - 주석과 해설 정리



Shiggaion은 "노래" 또는 "찬송가"이다(이 단어는 단지 이곳과 하박국 3장 1절에만 사용되어 있다). 즉 그것은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소재와 구성을 인위적으로 함께 모아 놓은(어떤 사람들의 견해대로) "통일되어 있지 않은" 노래이며(또 다른 사람들의 견해대로)매우 흥겹고 "즐거운"노래이다. 다윗은 그것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에 대한 헌신적인 믿음의 태도로 그 자신이 그것을 노래했다. 그것은 "베냐민의 구스의 밀"이나 일들에 관한 노래였으며, 진짜 이스라엘 태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구스 곧 에티오피아 태생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정도로 다윗에게 야만적인 태도를 지녔던 사울 자신에 관한 노래였다. "또한 더욱 타당한 견해에 의하면, 그것은 "구스"라는 이름을 지닌 사울의 한 친족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다윗의 숙적으로서 그를 사울에게 반역자라고 거짓 보고하여 그것으로 인해 사울을 격분시킨(이것은 매우 무익한 일이었다), 사람들의 자손들, 실상 벨리알의 자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다윗은 그와 사울 사이를 이간시킨 그를 원망하고 있다(삼상 26:19). 이처럼 야비하게 모욕당한 다윗은 이제 여호와께 의지하고 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해를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그에게 우리의 일을 의탁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주님께 찬송하고 있다. 그의 영은 그 친송에 의해 좌절되거나 위축되지 않고 매우 평정되고 유쾌해졌다. 따라서 그는 계속 거룩한 노래가 불리워지게 했고, 그의 하프는 한 번도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적이 없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받은 해가 우리를 진노케 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불붙이고 자극하도록 해야 한다.



그는 그 자신을 하나님의 보호 아래 두고 있으며 도움과 피난처를 위해 그에게로 도망하고 있다(1절).


"여호와여,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그들의 세력과 해로움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리하면 그들이 나를 칠 뜻을 품비 않을 것입니다."


1. 그는 하나님과 그의 관계를 탄원하고 있다.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하오니 내가 주께로 가지 않으면 어느 곳으로 가겠습니까?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곧 나의 방패이십니다(창 15:1).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는 보호받기를 기대할 수 있는 주의 종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2. 하나님께 대한 그의 확신을 탄원하고 있다.

여호와여, 나를 건지소서. 나는 주께 의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팔을 의지하지 않고 주께 피하오니 나를 건지소서." 영예로운 자들은 결코 의지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그들 자신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할 때는 특히 그러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3. 그의 대적들의 횡포와 악의, 그리고 그들에 의해 그가 곧 삼키우게 된 절박한 위험을 탄원하고 있다.

"여호와여 나를 구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나는 파멸합니다. 저희가 먹이를 뜯는 사자같이 나를 뜯으려 합니다." 그들은 매우 오만하게, 즐겁게, 강력하게, 그리고 매우 쉽고도 잔인하게 그렇게 행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다윗이 사울을 사자에 비교하고 있는 것처럼 네로를 사자에 비교하고 있다(딤후 4:17).


4. 다른 모든 도움이 실패했음을 탄원하고 있다.

"여호와여 나를 건지시기를 기뻐하소서. 당신외에는 나를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2절)." 하나님의 영광은 더움 받지 못하는 자들을 더우심에 있다.



자신의 결백을 하나님께 호소하다


그는 그의 대적들이 고소한 것에 대해 자신의 결백함을 엄숙히 표명하고 있으며, 그것에 관해서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무서운 저주와 함께 호소하고 있다(3-5). 여기에서 다음은 주목하라.


1. 우리 양심은 결백함을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람들에 의해 그릇된 고소를 당할 때에도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방면(放免)한다면 우리는 큰 위로를 얻을 수 있다.

계속 네 양심의 무죄함을 지키는 것, 이것이 네 방어의 강한 보루가 되게 하라.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이 비방한 것에 대해 증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만족스럽게 반증할 수 있다면 우리는 큰 위로를 얻을 수 있다.


2. 하나님은 억울함을 당한 무죄한 자를 옹호하신다.

다윗은 그가 호소할 만한 법정을 이 세상에 갖고 있지 않았다. 그의 결백함을 밝혀 주어야 할 왕이 그의 숙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날아가서 호소할 수 있는 하늘의 법정을 갖고 있었고, 그곳에는 그가 "나의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었던 의로우신 재판장이 계셨다. 그러면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그가 무죄함을 진술하는 고발장은 어떠한 것인가? 그는 사울의 왕관과 생명을 해할 음모를 꾸몄다고 하여 힐책당했다. 즉 그의 왕위를 찬탄하고 살해하기 위해 그와 싸우려 했을 것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었다. 이것을 그는 완전히 부인하고 있다.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이러한 종류의 불의가 없었다(3절). 그는 그러한 생각조차도 혐오했던 것이다. 그가 결코 "화친한"적이 없었던 사울이나 다른 사람들을 "악으로 갚은"일은 없었다(4절). 다른 사람들은 악을 악으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자기를 해친 자를 결코 해하지 않았다.

(2) 그의 무죄함에 대해 그는 어떤 증거를 내놓고 있는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다윗은 그 부정적인 사실을 매우 훌륭히 증명할 수 있었다. "내가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다"(4절). 이것은 직접적인 반박 이상으로 다윗이 사울의 생명을 해할 의도가 없었음을 말해 준다. 즉 두 번씩이나 하나님의 섭리가 사울을 그의 수중에 넣을 수 있도록 명했고 그 주위에는 곧 그를 죽이려는 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너그럽게 그리고 양심적으로 그것을 막았다. 그가 그렇게 행할 수 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르고(삼상 24:4). 그의 창을 가져갔던(삼상 26:12) 것이다. 사울 자신도 이 두가지를 다윗의 결백함과 그에 관한 선한 마음을 명백히 증명하는 것으로 인정하였다. 우리가 악을 선으로 갚고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기를 스스로 거절한다면, 우리의 그러한 행동이 언젠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우리에게 유익한 증거가 될 것이다.

(3) 만일 그가 유죄하다면 그는 어떠한 파멸을 당하게 될 것인가?(5절)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죽이게 하시고, 내 훌륭한 이름도 사라지게 하소서. 그로 내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리게 하소서."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1] 만일 그가 정말로 다른 사람들을 해하였다면, 그는 그들이 똑같은 대가를 돌려 주리라고 예상했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대적하는 손을 가진 자는 모든 사람들의 손이 자기들을 대적할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 또한 그는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가 그를 건져달라거나 그의 편을 들어달라는 청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범죄하여 마땅한 대가를 받고 있는 자들이 마치 무죄함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자들처럼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은 무례하고 위험한 일이다. 이러한 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겸손히 하고 그들의 죄악에 대한 형벌을 달게 받아들여야 하며, 의로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의를 보호하시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3] 그는 그의 무죄함에 대해 스스로 매우 만족하게 여겼다. 우리가 우리들 자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짓된 맹세를 한다면 우리에게 내리는 저주는 그 어떤 맹세에 대한 것보다도 더 무서우리라고 간주되어 있다. 이러한 맹세, 또는 저주로써 다윗은 여기에서 그의 무죄함에 대한 항변을 재가하고 있다. 그러나 사소하고 하찮은 주장에 대한 맹세와 저주는 우리를 정당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중대한 경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물리쳐 주신다


그 자신의 무죄함에 대한 양심의 증언을 한 후에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나타나시어 그를 핍박하는 자들을 대항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고소하는 법을 아는 자로서 합당한 탄원을 드려 그의 모든 청원을 후원하고 있다.


1. 하나님께 탄원하는 시인.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대적들에게 진노를 보이실 것을 기도하고 있으며, 그를 대적하는 그들의 분노를 탄원하고 있다. "주여. 그들은 내게 부당하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주께서 그들에게 정당하게 진노하시고 그 진노를 그들이 알게 하소서(6절). 진노로 일어나서 심판의 자리에 가시어, 주의 능력과 심판이 명백히 드러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 대적들의(이 단어는 복수로 쓰여져 있다)노를, 맹렬한 분노를 막으소서." 자기를 옹호해 줄 하나님의 진노를 갖고 있는 자들은 사람들의 진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리요?"


2. 나의 사정을 변호해 주소서.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사정을 변호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1)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나를 위하여 깨소서(즉 내 호소에 귀를 기울이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다.

[1] 거룩한 권능, 하나님께서 실제로 복을 주시기 때문에 "복을 명하신다"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실제로 판단하시므로 "심판을 명하신다"고 일컬어진다. 따라서 그 심판은 아무도 취소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 심판에 대한 집행은 함께 시행되어지는 것이다.

[2] 거룩한 목적과 약속." 그것은 주께서 주의 백성을 대적하는 모든 대적들에게 내리시기로 결정하신 심판입니다. 주는 세상의 왕들과 방백들에게 피해받는 자들을 구제해 주고 핍박받는 자들을 옹호해 주도록 명하셨습니다. 주여 깨어나셔서 그것을 심판하소서." 의를 사랑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요구하는 자들은 틀림 없이 그 자신도 그것을 시행해야 한다. 비록 하나님께서 잠들어있는 자처럼 그것을 묵인하고 계시는 듯이 보일지라도 합당한 때에 깨어나실 것이다(78:65), 그것을 지연시키신 것이 결코 무관심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히실 것이다.

(2) 그는 또한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7절). "그위 높은 자리에 돌아 오소서. 그리하여 주워 위엄을 유지하시고, 그들이 멸시한 주권의 거룩한 보좌를 되찾으소서. 그리고 그들이 그 판결을 무시한 심판대에 오르소서. 높은 자리에, 즉 하늘 자체도 시인하고 있음을 온 세상이 인정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볼수 있는 자리에 돌아 오시어 다윗의 사정을 변호해 주소서."

어떤 사람은 이것을 하늘로 돌아가셨을 때(높이 들림을 받으셨을 때) 모든 심판을 의탁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가르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또 그가 모든 것을 심판하시기 위해 이 세상 높은 자리로 돌아 오시게 될 그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의 상처받은 백성들은 이러한 재림을 기다리고 있으며, 간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기도로써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부당한 책망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3) 그는 다시 기도하고 있다(8절). "나를 판단하소서. 나를 위해 판단하시고 내 편이 되시어 판결을 내리소서."

[1] 이 청원을 강력히 하기 위해 그는 당시에 그의 소송을 합당한 법정으로 가지고 왔었음을 진술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8절). 그것은 그의 본분이었고, 그의 약속이었다. "하나님은 재판장이시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나를 심판하소서." 그는 온세상의 재판장이시므로 틀림없이 옳게 행하실 것이며, 모든 것은 그의 심판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2] 그는 자기와 사울간의 불화 관계에서도 결백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있어서 그 심판이 자신의 의에 따라서, 또한 발자취 속에서 가졌던 그의 마음의 성실함에 따라서 행해질 것만을 원하고 있다.

[3]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나타나신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한층 더할 것이고 그 의 백성들의 교화와 위로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예시하고 있다. "백성들의 회중으로 주를 두르게 하소서. 따라서 그들이 주의 전에서 찬미하고 봉사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그것을 행하소서."

첫째,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것을 행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편이 되시고 그의 약속을 그에게 이루어 주시는 것은 그의 의로움과 선함과 성실함을 부여 주시는 일이므로, 이 사실은 그를 성실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넓힐 것이고 그들의 입을 찬미로 채울 서이다. 다윗은 그의 나라가 특히 그 곳의 모든 백성들이 가장 사랑하는 자였다. 그러므로 그가 정당한 방법으로 왕좌에 오른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크게 기뻐했고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이다. 그들의 무리는 그들의 나라가 축복 받음을 찬미하면서 그의 단어 모였을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가 능력을 물려받는다면,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교회로 돌아오도록 온 힘을 기울일 것이며 하나님의 궤는 결코 "사울 때"처럼 소홀히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대상 13:3).


3. 죄인의 회심과 성도의 확립을 위한 기도

그는 일반적으로 죄인들의 회심과 성도들의 확립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9절). "나의 대적들뿐만 아니라 모든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우리 모두가 원해야 하므로 또 기대할 수 있는 두 가지 일이 여기에 있다.

(1) 죄의 멸망. 우리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죄는 종결되도록 해야 한다. 타락이 없어졌을 때, 악인의 길과 생각이 버림받았을 때, 세상과 육신을 향하여 급격하게 흐르던 물줄기가 역회전하여 하나님과 하늘을 향해 흐를 때, 악인의 사악함은 끝날 것이다. 풍습이 일반적으로 개혁될 때, 무신론자들과 불경스러운 자들이 회심하여 전향할 때, 죄가 퍼지는 것이 중단되어 악인이 더 이상 재앙을 행하지 못하게 되고 그들의 어리석음이 밝혀질 때, 교회의 대적들의 악한 계략이 죄절되고 그들의 힘이 꺾이며 죄인이 멸망할 때, "악인의 악이 끊길"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그를 위해 악을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고 간구하는 것이다.

(2) 의로움의 불멸. "의인을 세우소서." 우리는 악인이 선하게 되도록 기도할 뿐만 아니라 선한 자가 더욱 선하게 되어 더욱 훌륭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악인의 책략에 넘어가지 않고 악인의 악의에 놀라지 않도록, 그들이 하나님의 길을 택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결심을 할 수 있도록, 견고히 하나님과 믿음의 세력을 지키고 "악인의 악을 끊기"위해 열심히 노력하도록 해야 한다. 그가 이러한 탄원을 하는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악인의 은밀한 악을 알고 계시며 그것이 끝나게 하는 방법을 알고 계시다. 그리고 그는 의인의 은밀한 성실함을 증거하시고 은밀히 그들을 세우신다.



오해를 받을 때의 성도들의 대처법


우리가 오해를 받거나 해를 당할 때 우리를 변호할 수 있는 편견없는 양심의 증거를 갖고 있는 한 우리는 이 구절들을 노래함에 있어서 의로우신 하나님께 우리의 호소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우리의 의로운 주장을 인정하실 것이며 어느날, 적어도 마지막 날에는 우리의 결백함을 밝혀 주실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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