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편 3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 땅에 겸손하게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적으로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겸손의 자세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며, 본문에 관한 매튜헨리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시편 8편 3절-9절, 하나님의 겸양 - 주석과 해설 정리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특히 인간 그리스도 예수를 영화롭게 하신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여기에서 계속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있다. 거룩한 은혜의 겸양은 거룩한 영광의 높임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찬미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친절하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셨는가를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놀라움과 감사함을 품고 관찰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제 다음 사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사모해야 할 하나님의 겸손한 은총
그로 인하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겸손한 은총을 사모하도록 인도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전체의 광채와 영향력에 대한 통칠이었다(3절). "주의 하늘"과, 특히 그 속의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옵니다." 그러나 그는 왜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해는 보지 않는가? 아마도 그것은 그가 해가 사라지고 오직 달과 별들만이 있었던 밤에 달빛 속을 걸으면서 묵상하기를 즐겼고 그 속에서 그 스스로를 가르쳤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것들이 모두 해처럼 그렇게 유용하지는 못하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창조주의 지혜와 권능과 선하심을 해에 못지않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다음을 살펴보자.
1. 하늘을 주시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다. 볼 수 밖에 없다. 여러 가지 사실 가운데서 이러한 점에 의해 사람은 동물과 구별된다. 즉 그것들은 몸의 구조가 땅을 내려다 보도록 만들어졌으나 사람은 하늘을 향해 올려다 볼 수 있도록 세워져 있다. Os homini sublme dedit, coelumque tueri jussit- 즉 "인간에게 그는 직립한 얼굴을 주셨으며, 하늘을 응시하도록 명하셨다. 그리하여 인간이 위에 있는 것에 마음을 두도록 하셨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가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2. 우리는 항상 하늘을 하나님의 하늘로 생각해야 한다.
즉 이 세상 모든 것, 심지어 땅과 그 위의 모든 것조차도 그의 것으로 여겨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특별하게 여겨야 한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다"(115:16). 그 곳은 그의 영광이 거하는 곳이며 우리는 그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해야 한다.
3. 하늘은 그의 손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의 것이다.
그는 그것을 만드셨고, 그것을 쉽게 만드셨다. 하늘을 펼치실 때 그는 팔을 펴실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주의 손가락"만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매우 진지하고 훌륭하게 예술가가 손으로 만든 훌륭한 작품처럼 그것을 만드셨다.
4. 조금 부족해 보이는 것들도 모두 그의 것이다.
좀 열등한 빛들, 곧 달과 별들까지도 하나님 빛의 영광과 권능을 나타내며, 우리에게 찬미의 일을 부여한다.
5.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
천체는 거룩한 권능의 창조물일 뿐만 아니라 그 거룩한 통치에 의해 다스려진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베푸셨다." 그러한 하늘의 법도는 결코 변경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찬미하기 위한 이러한 것이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가?
(1) 윗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빛나는 가를 생각할 때에, 즉 우리가 그가 인간처럼 천한 창조물을 인지하신다는 사실과 가장 빛나고 축복된 창조물 속에 거하시는 그가 스스로를 낮추시어 이 세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을 바라보신다는 사실에 매우 경탄하게 될 것이다(113:5, 6 참조).
(2) 하늘이 땅 위에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유익하며, 어떻게 하늘의 빛들이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되었는가를 생각할 때(신 4:19; 창 1:15), 우리는 당연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여 사람이 무엇이관데 주께서 그와 그의 유익을 위해 하늘을 베푸셨으며, 하늘의 빛을 만드시고 그 운행을 명하시어 그를 즐겁고 편하게 하셨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관대
그는 어떻게 그 경탄을 표현하고 있는가?(4절) "주여 사람이(주를 잊어 버리고 주에 대한 의무를 잊을 정도로 사악하고 연약하며 비참한 사람이)무엇이관대 주께서 이처럼 저를 생각하시며 그와 그의 행동과 일들을 인지하시고 세상을 지으실 때 그를 존중하셨나이까!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자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먹이시고 입히시며, 저를 다른 창조물들과 같게 보호하시고 부양하실 뿐만 아니라, 친구를 방문하시듯 저를 찾으시어 그와 더불어 교제하시고 관심을 기울이기를 기뻐하시나이까! 사람이(이처럼 비천한 창조물이) 대면하시고 총애하시나이까!"
1. 이것은 일반적인 인간을 가르키고 있다.
비록 인간이 벌레이고 인자가 구더기일지라도(욥 25:6) 하나님께서는 그를 존중하시며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신다. 사람은 이 아래 세상의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이 총아이며 귀염둥이이다.
(1) 인간은 매우 영예로운 부류의 존재에 속한다. 우리는 사람이 이 낮은 세상에 거하는 만물 중에 제일 웃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정말조금 못하게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몸을 통해 부서져 버리는 땅이나 짐승들과 관련되어 있을지라도, 영적이고 영원한 그의 영혼에 의해 그는 그 거룩한 천사들과 매우 가까운다. 따라서 실지로 그는 단지 "천사보다 조금 못할"뿐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 순위로는 그 다음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의 위대한 영혼이 흙으로 된 집에 갇혀있는 동안에는 단지 천사들보다 조금 못할 뿐이나 부활의 자녀들은 "천사와 동등"하게 되어(눅 20:36) 더 이상 그들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2) 그는 귀한 자격과 능력을 부여받는다. '주께서 저를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그의 존재를 부여하시는 그가 저를 구별하시며 열등한 창조물들을 지배할 권한을 주셨다. 하나님께서"저에게 지혜 주시기를 땅의 짐승과 공중의 새에게 주심보다 더하게 주시어(욥 35:11) 저로 그들을 다스리기에 합당하게 만드셨다. 그들은 인간에게 다스림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 인간의 이성(理性)은 그의 영광의 면류관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소홀하게 사용함으로써 그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인간은 하나님 아래서 자기보다 열등한 창조물들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 받았고 그들의 주인으로 선정되었다. 그들을 만드시고 그들을 아시며 그들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이 "저로 그들을 다스리게"하셨다(6절). 인간이 창조되던 그날에 그는 이러한 권한을 갖게 되는 특허장을 지녔고(창 1:28) 그것은 노아의 홍수 후에 갱신되었다(창 9:2). 하나님은 만물을 사람의 발 아래 두시어 스스로 자급자족하게 하셨다. 즉 노동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열등한 창조물의 소산물과 생명에 의해서도 필요한 물건을 얻도록 하셨다. 그들은 모두 그이 손에 양보되었다. 아니, 그들은 모두 "그의 발아래 두어졌다." 그는 몇 가지의 하등 동물들을 열거하고 있다(7,8절). 즉 사람들이 돌보고 양육하는 우양뿐만 아니라 들짐승도, 그리고 인간 활동 범주가 다른 곳에 사는 "공중의 새"와 보이지 않게 지나가는 "바다의 어족"을 열거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것들을 잡을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그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사람보다 더욱 강하거나 더욱 날렵할지라도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는 그들을 지배한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버러지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다"(약 3:7). 그는 또한 필요한 경우에 그것들을 사용할 자유를 갖고 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행 10:13). 우리는 생선이나 새고기를 식사할 때마다,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신 것에 대한 사람의 주권을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우리의 우두머리 되시는 주님께 복종해야 하고 그의 다스리심에 복종해야 하는 이유이다.
2. 그러나 이것은 특별한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그에 관한 설명을 히브리서(2:6-8)에서 읽을 수 있다. 거기에서 사도 바율은 하늘과 땅에 대한 그리이스의 통치권을 증명하기 위해 그가 바로 그 사람임을, 인자임을, 즉 여기에 쓰여진 대로 하나님께서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고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신" 자임을 보여 주고 있다. 인류에게 보여 준 것 중에서 가장 큰 은총과 인간성에 부여된 가장 큰 영예가 주 예수의 성육신과 높이 들리심 속에서 예증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창조와 섭리로써 우리에게 베풀어진 은총과 영화는 매우 큰 것이고 우리가 받을 만한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이긴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높이 들리심은 그러한 것들을 크게 능가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 속에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평가하고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모해야 하는 것이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성품을 취하시고 그 속에서 그 스스로를 낮추셨다. 그는 "인자"를 곧 육체와 피를 취하신 자가 되셨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권고하셨는데 어떤 사람은 이것을 그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일에 적용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죽음의 고난을," 진노의 권고를 "받으심을 인하여 그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고 일컬어지기 때문이다(히 2:9) 하나님은 그를 권고하셨다. 즉 그에게 우리의 모든 죄악을 씌우신 후에 그를 죄인으로 간주하시어 막대기와 회초리로 그를 권면하셨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고침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는 "잠간 동안"(그 사도는 그것을 그렇게 풀이하고 있다)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시어 종의 형체를 취하셨고 자리를 비워 놓으셨다.
(2) 이러한 성품 속에서 그는 높이 들리우시어 모든 것의 주님이 되셨다. 그가 자기를 낮추셨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높으셨고 "영화와 존귀로." 즉 세상이 있기 전에 그가 갖고 계셨던 그 영화로 관을 씌우셨다. 그리고 그를 그의 우편에 두셨고 그로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하셨다. 또한 만물을 그의 손에 주셨고, 은혜의 왕국과 관련을 맺고 또 그것에 종속되어 섭리의 왕국을 통치하시도록 그에게 위임하셨다. 모든 피조물이 그의 발 아래 있다. 그리고 그가 육신을 입으신 날에도 그는 바람과 바다를 명하시고, 물고기로 찬미를 받으셨을 때와 같이 그들에 대한 그이 여러 가지 권능을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훌륭한 이유와 함께 시편 기자는 그가 시작했을 때와 같은 구절로 이 시편을 이렇게 끝내고 있다.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구속자가 계심으로 인하여 주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었고, 그것은 그의 복음으로 인해 여전히 밝혀지고 있으며 그의 지혜와 권능으로써 다스려지고 있다.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이것을 노래하고 간구함에 있어서 우리는 특히 그 열등한 피조물이 우리에게 주는 유용함 속에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을 참된 마음으로 인정하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주 예수가 우리의 주님이심을 인정하고, 우리 주님으로서 그에게 복종하며, 만물이 그 아래 있고 모든 그의 대적들이 그의 발 아래 엎드림을 볼 때까지 기다림으로써 우리는 특별히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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