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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주석] 다니엘 9장 4절-19절, 약속된 자비를 구함 - 주석과 해설 정리

다니엘 9장 4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은, 다니엘이 하나님께 중보와 회복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올려 드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이어서 예루살렘의 회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매일성경큐티와 10분새벽설교를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다니엘 9장 4절-19절, 약속된 자비를 구함



다니엘 9장 4절-19절, 약속된 자비를 구함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다니엘의 기도와 그 기도를 통한 다니엘의 고백을 본다.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였다." 모든 기도에서 우리는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신뢰, 그리고 죄로 인한 슬픔과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도 고백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우리가 충심으로 행하기로 서약하는 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며, 우리 자신의 확신에 대한 언어가 되어야 한다.

이 기도는 여기에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이 기도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니엘의 간구


여기에는 하나님께 대한 다니엘의 겸손하고 진지한, 그리고 경건한 간구가 나오며 그 간구를 통해서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1. 하나님께 영광

그는 먼저 두려워해야 할 분으로서, 그리고 언제나 두려움으로 그 앞에서야 할 분으로서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오, 여호와여!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이시여!" 그는 극히 크고 두려운 교회의 적들도 능히 처치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이다.


2. 하나님을 신뢰하라

신뢰해야 할 하나님으로서, 즉 우리가 의지하고 신뢰해야 할 분으로서 그에게 영광을 돌린다.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는 분이시여!" 만약 우리가 우리의 계약을 지킨다면 하나님도 자기 언약을 어기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자기 말씀 못지 않게 선히 대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하나님은 그들과의 언약을 지키시며, 그의 약속은 일점 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보다 더 좋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언약된 것 이상의 것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그의 백성들의 불행을 나열하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겨냥하고 약 속의 이행을 간원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겨냥한 것은 적절한 것이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크심과 그의 선하심 그리고 그의 존엄과 자비를 결합해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주목하자.



주의 백성들의 회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랫동안 그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었던 재난의 유발 원인인 죄에 희개의 고백이 나오고 있다(5,6절). 우리가 민족에 대한 자비를 하나님께 구할 때, 우리는 민족의 죄 때문에 우리를 앞에서 낮추어야만 한다. 다니엘이 여기서 슬퍼하는 죄는 그런 국가적 죄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다니엘이 그들의 큰 죄를 열거하면서 사용한 말의 다양성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죄의 무거운 짐을 자기가 지려고 하는 것은 참회자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우리는 많은 특수한 경우에 죄를 범했습니다. 아니, 우리는 범죄했으며 범죄의 장사를 했으며 강퍅한 마음과 곧은 목으로 사악하게 행했으며 이 점에서 반역하였으며, 무기를 들고 왕 중의 왕이신 여호와와 그 존엄과 그 왕권에 대적하였나이다. "두 가지일이 그들의 죄를 더욱 악화시켰다.


1. 주의 율법을 어겼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을 위반하였다. "우리는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나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았나이다" (10절). 그것은 죄의 본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또한 율법의 파괴와 그것의 악의를 말해 주는 것이다. 만일 죄가 죄로 드러나게 된다면 그보다 더 나쁘게 나타나는 것은 없다. 죄의 죄됨은 최대의 증오성이다(롬 7:13). 하나님은 우리 앞에 그의 율법을 분명하고 완전하게 세우셨으나, 우리는 그 법대로 살거나 행하지 않고 곁길로 가거나 돌이켜 갔던 것이다.


2. 주의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주신 따끔한 경고를 무시했다. 하나님은 매 시대마다 선지자를 일으켜 보내셨다(6절).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상기시켜 주던 주의 종 선지자들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말했지만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분과 지위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존중하면서 그들의 메시지를 신실하게 전했습니다. 그들은 왕들에게 메시지를 전할만큼 용기와 자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조와 모든 국민들에게 말할 만큼 자신을 낮추고 측은지심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말한 것을 듣지 않았고, 그들에게 관심조차 표하지 않았으며,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조롱하고 그의 말을 경멸한 것은 예루살렘의 죄의 양을 채우는 행위였다(대하 36:16). 죄에 대한 고백은 여기서 반복되고 강조된다. 회개자는 자기 마음이 완전히 깨질 때까지 몇 번이고 자신을 비판하고 수치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모든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했나이다(11절). 하나님의 규례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알 것으로 기대된 백성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특수 민족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은총으로 둘러쌌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떠나며 범한 것은 여기 저기서 한 사람씩 나온 것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었다. 백성전체였다. 그들은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않음으로써 청종치 않으려고 그 길에서 벗어났다. 이 불순종이이야말로 진정한 모든 참회자가 가장 민감하게 자책하는 점이다. "우리는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않았으며(14절),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15절). 자비를 구하려고 하는 자는 이처럼 자기 죄를 먼저 회개해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달게 받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진 모든 심판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한 겸손한 인식이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의롭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자의 길이다. 회개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분명하시며 죄인들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1.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들을 이 모든 환난 속에 빠뜨린 것은 바로 죄였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스라엘은 주위 모든 나라로 흩어졌고, 아주 약화되었으며 궁핍해졌다. 하나님의 손은 이스라엘을 여기 저기로 쫓아 내셨다. 어떤 자들은 가까운 데로, 또 다른자들은 먼 데로 쫓겨났다. 가까이 쫓겨 난 자들은 전부터 그곳에 잘 알려져 있었기에 더 수치스러웠고 먼 데로 추방된 자들은 알지 못하는 곳이기에 더욱 설움을 당했다.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7절). 그들은 스스로 열방과 혼합되어 타락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열방에다 섞어서 박탈당하게 하셨다.


2.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우십니다.

다니엘은 이 일로도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입히신 모든 재난으로도 그들에게 잘못 행하지 않으셨으며 그들이 마땅히 받을 바를 그들에게 행하셨다고 자인한다. "오, 여호와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나이다. 우리는 당신의 섭리에 어떤 결합도 찾을 수 없나이다. 당신의 심판에는 예외가 없다는 것을 아니이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그가 행하시는 모든 일에 의로우십니다. 혹독한 재난 속에서도 주는 의로우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의 목소리 즉 주의 입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손의 무기를 느껴 마땅합니다." 이것은 애가 1장 18절에서 인용된 것인 듯하다.


3. 우리의 고난은 당연합니다.

다니엘은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 속에서 성서의 성취를 눈여겨본다. "그는 약속한 대로 신실하게 그들에게 고난을 주셨다." 그 고통은 그가 말한 말씀에 의해서 생긴 것이었다.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그것은 모세의 율법 가운데 기록된 명세대로 된 것입니다(11절)." . 더 나아가 이것은 그들에게 환란을 주시는 하나님을 정당화시킨다. 즉 하나님은 율법의 형법을 부과하셨을 뿐이다. 그는 율법의 형벌을 공정히 그들에게 경고하셨던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실성에 대한 명예를 보존하고 그의 통치에 대한 경멸을 방지하는 데 필요하였다. 그의 경고의 말씀은 성취되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하나님을 단순히 공갈군이나 허깨비로 간주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전혀 놀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와 우리를 판단하는 재판관들을 쳐서 하신 말씀을 확증하셨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율법을 위반했고, 재판관들은 하나님의 율법 위반자들인 우리들을 처벌해야 할 의무를 이행치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재판관들이 행악자들에게 정의를 실행하여 공포를 주지 않는다면, 하나님 자신이 저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그가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커다란 재앙을 내리심으로써" 성취하셨다. 그 재앙은 제왕들과 재판관들 자신도 함께 당했다. "하나님의 말씀의 심판이" "하나님의 손의 심판" 과 얼마나 정확히 일치하는가를 주목하자!


4. 고난의 유익을 기대합니다.

다니엘은 그들이 처한 재난을 중히 여겼다. 그래야 그러한 하나님의 심판이 가져다주는 유익을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저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징계를 업신여겨 왔었던 것이다. "이 재난은 우리가 불평하는 바 생활의 일반적인 고통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재난 속에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특수한 징표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온천하에 예루살렘에 임한일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12절). 그것은 교회의 이름으로 말해졌던 절규, "내게 임한 슬픔 같은 슬픔이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예레미야의 애가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이와 유사한 다른 물음을 생각나게 한다. 즉 "나의 죄와 같은 죄가 또 어디에 있었던가?"


5. 부끄러운 심판은 당연합니다.

다니엘은 온 국민, 즉 그 나라의 가장 높은 자에게서 가장 낮은 자에게 이르기까지 부끄러움을 돌렸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다니엘의 기도에 "아멘" 하고 말하려고 한다면-이것은 저들이 이 기도의 혜택을 같이 누리고자 한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그들은 모두 그들의 손을 그들의 입에 대야하며, 그 입은 땅에 대야한다. "수욕이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도다(7절). 우리는 오늘날 심판의 부끄러움 아래 있으며, 그 수욕에 우리 자신을 적응 시켜야만 한다. 또한 수욕은 우리 자신 때문에 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일 이스라엘이 그들의 특성을 보존했더라면, 또 거룩한 백성으로서 계속되었더라면, "모든 나라 가운데서 그들의 이름과 영광이 높아졌을 것이다" (신 26:19). 그러나 지금은 "죄를 범하여 사악하게" 타락했으므로,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거인들" 에게 치욕이 돌아갔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치욕은 "모든 이스라엘," 즉 바벨론의 강가에 "가까이 있던" 두 지파와 앗수르 땅에 "멀리 떨어져 있는" 열 지파에게 모두 속한다. "수욕은 우리 땅의 서민들에게 뿐만아니라, 우리의 열왕과 방백과 열조에게로 돌아왔다(8절). 그들이 보다 선한 모범을 보였어야 했고, 이 같은 악을 막는 데에다 자기들의 권력을 행했어야 했었기 때문이다.


6. 이스라엘은 완고합니다.

그는 이 심판이 계속되는 것은 심판을 당하고도 이스라엘이 완고한 탓이라고 말한다(13,14절). "이 모든 재앙이 우리에게 임했으며 오래 계속되었으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도다. 우리들은 매를 맞았으나 하나님께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지 않았도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고 평화를 구하는 데 마음을 쓰지 않았도다. 다니엘은 그의 형제들에게 끊임없는 기도의 선한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의 모범을 따르는 자가 거의 없음을 보고 그의 마음이 아팠다.

그들이 "재난" 을 당하며 "곧 하나님을 찾을" 것이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죄로부터 돌아서고"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구하지 아니했다. 재난이 오는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람들이 죄에서 떠나"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엘리후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설명했다(욥 36:10). 재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귀를 열어, 그들이 죄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훈계와 명령을 듣게 하신다." 그리고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고, 그 진리의 능력과 권위에 복종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잘못된 길로부터 되돌아올 것이다.

이 길을 가는 첫 번째 단계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즉 재난이 사라지기 전에 먼저 그 재난이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의 섭리에 뒤따라서 하나님의 은총이 옵으로써 재난이 소기의 목적을 다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재난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속박하는 데도 부르짖지 아니하는" 자들은 "죄에서 떠나거나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므로, 즉 저들이 재난을 선용하지 아니하므로, 마치 법관이 선고대로 형이 집행되는가를 주목하듯,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주시하셨다. 또 우리가 녹지 아니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계속 풀무불에 가두고 그 풀무를 살피셨으니, 풀무를 더욱 뜨겁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는 그가 이기실 것이요, 그 모든절차에서 올바르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다니엘


여기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이스라엘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의 오랜 증거와 저들의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에 대한 관심에 대한 간절한 호소가 있다.


1. 언제든지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언제나 죄를 용서하실 준비가 되어 있다(9절)는 사실이 그들을 크게 위로한다.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있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의 선포를 말해 주는 것이다(출 34:6, 7). 즉 "주 하나님, 은혜스럽고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의 하나님" 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의가 하나님께 속한 것처럼 "자비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 는 사실을 회상하는 것은 불쌍한 죄인들에게는 더없이 고무적인 일임을 주목하자. 또한 하나님의 정의에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위로를 받을 것이다(시 62:12). 하나님에게는 풍부한 자비강 있다. 또한 단 한 번의 용서만이 아니라 끝없는 용서가 있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 이시다(느 9:17 난외주). "비록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였지만," 하나님에게는 자비가 있다. "대적자까지도" 하나님에게는 자비가 있다. "대적자까지도 "용서하시는 자비가 있다.


2. 하나님의 과거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옛날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심으로써 이전에 영광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이 그들에게 힘이 되었다. 그는 자기의 신앙의 격려를 위해서 그렇게 멀리 소급해서 바라본다(15절). "주께서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셨나이다. 그처럼 이스라엘을 강한 손으로 바벨론에서 인도해 내시지 않겠나이까? 이스라엘은 그 때에 주의 백성이 되었사온대, 이제 다시 주의 백성으로 새로이 만드시지 않겠나이까? 지금 이스라엘은 죄가 많고 쓸모없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은 힘이 세고 거만합니다. 그리고 그 때에도 대적자들은 여전히 힘이 세었고 거만하지 않았나이까? 그리고 하나님은 바벨론으로부터의 이스라엘의 구원은 애굽에서의 탈출보다 더 빛난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이까?" (렘 16:14, 15) 이러한 호소의 힘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놓여 있다.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하나님, 우리를 계속 바벨론에서 고통받도록 버려두심으로써 그 명성을 상실하시렵니까? 우리가 그토록 자주 회상했던 그 구원으로 명성을 얻으셨는데, 지금은 우리가 이토록 자주 기도하고 대망하는 구원을 베푸시사 다시 명성을 얻지 않으시려 하나이까?"



주의 백성들을 구원하소서


여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처한 치욕에 대한 애처로운 호소와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의 타락에 대한 안타까운 호소가 있다. 양자는 모두 하나님께 불명예를 가져왔고,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킴으로써 얻었던 명성을 격려시켰다.


1.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업신여김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와 조상들의 불의" 에 의해서, 그들의 명예를 더럽혔고, 스스로를 비천하게 만들었다. 당시 그들은 명실공히 하나님의 백성이었으며, 따라서 진실로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백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위 모든 나라들에게 치욕거리" 가 되었다. 그들의 이웃들은 이스라엘을 비웃으며, 자들의 치욕에 개가를 올린다. "죄는 어느 백성에게나 치욕이 된다" 는 것을 주목하자. 그러나 특히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더욱 치욕적인 것임을 항상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저들에게 더 많은 눈이 있어, 더 많이 수치를 당하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거룩한 장소가 황폐하게 되었다.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이 치욕거리가 되었다(16절). 예루살렘은 그 성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놀람" 과 조롱거리가 되었다. 성소, 거룩한 집이 황폐하였고(17절). 제단들이 파괴되었고, 모든 건물들은 잿더미로 변했다. 거룩한 것의 황폐는 모든 성도들의 가장 큰 슬픔임을 주목하자. 성소의 폐허 속에는 이 세상에서 저들이 받는 온갖 위안이 함께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회복의 기쁨을 주소서.


또 불쌍한 유대 포로민들에게 이전의 기쁨을 회복해 달라는 끈질긴 요구가 있다. 이 청원은 대단히 강력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서 자기와 씨름하는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오 여호와여! 내가 구하옵나니(16절) 만일 당신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시고자 하신다면, 이것을 해하시옵소서. 그것은 나의 마음의 기도이며 소망이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오, 우리의 하나님!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17절). 평화의 응답을 허락하옵소서."

그러면 그의 간구와 요구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1. 진노를 거두어 주소서.

그것은 먼저 하나님이 그의 분노를 이스라엘에서 거두시기를 간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성도들이 그 어느 것보다도 더 무서워하고 걱정하던 바이다. "오, 주의 분노를 주의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16절) 다니엘은 이스라엘을 포로 생활에서 탈출시켜 주기를 먼저 기도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진노를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원인을 제거하면, 결과는 쉽게 해결될 것이다.


2. 얼굴 빛을 비추어 주소서.

그는 주의 얼굴 빛을 저들에게 비추기를 간구했다(17절).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소서. 자비를 다시 보이시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화해하시사, 만사형통하리라는 것을 나타내소서." 바로 황폐한 성소에 대한 하나님의 얼굴의 빛이 바로 그것의 회복을 의미하게 된다는 것을 주목하자! 그 기초 위에 성소를 세워야 한다.


3.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소서.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의 구원을 속히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한다(19절). "주여, 들으소서, 오 주여 용서하소서." 즉 "간구한 자비를 자비롭게 허락하소서. 그리하여 우리와 자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가 떠나가게 급히 하소서. 지체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신앙을 통해서, 자기들을 속히 구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윗도 종종 "서두르시옵소서, 오! 하나님이시여 나를 도우시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을 향한 간구와 그 논증


여기에는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는 여러 간구와 논증이 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변론도 허락하신다. 이 변론은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시려고 하는 것을 스스로 알고 계신다) 우리 자신을 감동시켜 우리의 열심을 극대화시키고 우리의 신앙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1. 이스라엘은 의로울 것 없는 죄인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어떠한 의로움에도 의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어떤 것도 받을 만하지 못하다. 다만 진노와 심판을 받아야 할 뿐이다(18절).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선함, 혹은 우리에 의해서 행해진 선행 때문에 주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고 하거나, 혹은 채권자처럼 어떤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는 것처럼 만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아니, 비록 우리가 지금보다 더 의로왔을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의를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재판관에게 간청할 뿐입니다." 모세는 오래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한 모든 것은 "이스라엘의 의로움 때문은 아니었다 "고 말했다(신 9:4, 5). 그리고 에스겔도 나중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구출됨은 "이스라엘 자신들 때문에" 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겔 36:22, 32). 자비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는, 언제나 우리 자신의 의에 대한 일체의 의존과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주의하자.


2.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의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기도에서 용기를 가졌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비의 이유는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서 자비를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자비와 은총을 구할 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1) "주(主) 자신을 위해서 하시옵소서(19절). 주 자신의 계획의 성취를 위해서, 주의 약 속의 완성을 위해서, 그리고 주의 영광의 선포를 위해서 행하시옵소서."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과 때에 따라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 자신의 일을 행하신다는 것을 주목하자.

(2) "주를 위해서, 즉 주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시옵소서." 즉 약속된 메시야를 위해서, 다윗이 메시야를 부를 때 말한 주님을 위해서(시 110:1) 행하시옵소서. 그리고 인자(人子)(시 80:17)를 위해서, 또한 "주의 말씀 자신을 위해서 자비를 베푸소서" (삼하 7:21).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주님이심을 주목하자.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들어 죄인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들어 죄인들에게 비추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것을 인해서 간구의 기도를 해야 한다. 우리는 "주의 의(義)" 곧 오직 주님의 의를 말해야 한다" (시 71:16). "기름부음 받은 자의 얼굴을 바라보자." 주께서 친히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도록 가르치셨다."

(3) "주여, 주는 주의 공의(公義)를 좇아서 행하시옵소서(16절). 즉 주의 공의를 따라서 우리의 박해자와 억압자들에 대한 우리의 신원을 갚아 주소서. 비록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불의하지만, 그들 박해자와의 관계에서는 의롭습니다." 혹은 여기서 "하나님의 공의" 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신실성을 뜻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그의 공의를 따라서" 경고를 시행하셨다(11절). 그러니 "주여, 이제는 모든 것을 주의 공의를 따라서 행하시지 않겠습니까? 경고에 대해서처럼 약속에 대해서도 신실하시지 않으시렵니까?"

(4) "주여, 주의 큰 긍휼을 인하여 행하시옵소서(18절). 그래서 주는 자비가 풍성한 하나님이 심이 드러나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바 선한 것을 우리는 "자비" 라고 부른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선을 순수하게 하나님의 자비로부터만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참이란 자비의 적절한 대상이 되기 때문에, 여기에서 예언자는 교회의 애처로운 처지를 하나님께 아뢰다. 말하자면 동정심을 자아내려는 것이다. "주의 눈을 들어 우리들의 슬픔을 보시옵소서. 특히 성소의 폐허를 보시옵소서! 이 가엾은 처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교회의 황폐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아뢰고, 그에게 맡겨야 한다.

(5) "주께 대한 우리의 관계를 위해서 행하시옵소서. 황폐케된 성소는 주의 성소입니다(17절). 주의 영광에 바쳐졌고, 주께 봉사하기 위해 세워진, 주의 거처입니다. 예루살렘은 주의 도성이며, 주의 거룩한 산입니다(16절) 또한 예루살렘은 주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도성입니다" (18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거기에 두기 위해" "이스라엘은 모든 지파 가운데서 택하여낸" 도성이었다. "수치를 당하는 백성은 주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당하는 수치로 인해서 바로 당신의 이름이 수치를 당하나이다(16절).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불리우나이다(19절). 주여! 그들은 당신의 것입니다. 그들을 구원하시옵소서" (시 1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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