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아 공의회, 삼위일체 교리의 초석을 다지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왜 열렸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둘러싼 아리우스 논쟁의 핵심과, 교회가 어떻게 ‘호모우시오스(ὁμοουσios)’라는 한 단어를 통해 삼위일체 교리의 결정적 토대를 마련했는지 그 신학적 여정을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초대교회사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이정표를 확인하십시오.
니케아 공의회, 삼위일체 교리의 초석을 다지다
서론: 교리는 왜 중요한가?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조직신학의 여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신학적 개념과 교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때로는 이러한 교리들이 너무 추상적이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핵심 교리들은 단순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고백이 무엇에 근거하는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명확히 하는 생명의 등대와도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탐구할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 325년)’는 바로 그 등대 중에서도 가장 밝은 빛을 발하는, 기독교 2000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신학적 분수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론
4세기 초, 기나긴 박해의 터널을 지나 막 자유를 얻은 교회는 이제 외부의 핍박이 아닌 내부의 신학적 도전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직면하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신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답변이 바로 니케아 공의회와 그 신조에 담겨 있습니다. 본고에서는 니케아 공의회가 소집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과 아리우스 논쟁의 핵심을 살펴보고, 공의회의 결정적 선언인 ‘호모우시오스(ὁμοουσios)’의 의미를 분석한 뒤, 이 모든 것이 오늘날 우리의 조직신학, 특히 삼위일체와 기독론에 어떤 영속적인 유산을 남겼는지 심도 있게 고찰하고자 합니다.
1. 폭풍의 눈, 아리우스 논쟁의 발발
니케아 공의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리우스 논쟁(Arian Controversy)’이라는 거대한 신학적 폭풍을 알아야 합니다. 4세기 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던 아리우스(Arius, 약 256-336)는 매우 논리적이고 금욕적인 인물로 존경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헬라 철학, 특히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절대적 유일성’과 ‘초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사상에 따르면, 하나님 아버지만이 유일하게 시작이 없으신(unbegotten) 분이며, 그 외의 모든 존재는 그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이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아리우스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격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그는 "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ἦν ποτε ὅτε οὐκ ἦν)"고 선언하며, 성자(the Son)는 성부(the Father)에 의해 ‘무(無)로부터’ 창조된 첫 번째이자 가장 뛰어난 피조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즉, 성자는 하나님과 유사한(homoiousios) 신적 존재일 수는 있으나, 성부와 동일한 본질(substance)을 지닌 완전한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고 명쾌해 보였지만, 이는 기독교 신앙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와 같았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이 아닌,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라면 어떻게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 피조물은 다른 피조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아리우스의 주장에 맞서 그의 감독이었던 알렉산더(Alexander of Alexandria)와 그의 뒤를 이은 젊은 부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는 성자는 피조물이 아니며, 성부와 함께 영원 전부터 존재하시는 ‘동일한 본질’의 하나님이라고 강력하게 반박했습니다. 이 논쟁은 알렉산드리아 지역 교회를 넘어 로마 제국 동방 전체를 극심한 분열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2. 제국의 평화와 교리의 통일, ‘호모우시오스’의 승리
교회의 분열이 제국의 정치적 안정까지 위협하게 되자,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 the Great)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25년, 소아시아의 니케아(현 튀르키예 이즈니크)에서 제국 전역의 감독들을 소집하는 최초의 ‘세계적(Ecumenical)’ 공의회를 개최합니다. 황제의 주된 관심은 신학적 진리의 규명보다는 제국의 통일과 평화였을지 모르나, 성령께서는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교회의 신앙고백을 바로 세우는 결정적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약 300여 명의 감독들이 모인 공의회에서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아리우스파는 성경적 용어들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니, 모든 아들은 아버지보다 나중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논리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통 신앙을 수호하던 이들은 성경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아리우스주의의 허점을 정확히 파고들 수 있는 신학적 용어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리하여 채택된 결정적 단어가 바로 ‘호모우시오스(ὁμοουσιος)’입니다. 이는 ‘동일한(homo) 본질(ousia)’을 의미하는 헬라어로, 라틴어로는 ‘콘숩스탄티알리스(consubstantialis)’로 번역됩니다. 이 한 단어는 성자가 성부와 ‘유사한 본질’이 아니라 ‘완전히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는 분임을 선언합니다. 즉, 성부께서 하나님이신 것처럼, 성자 역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완전하고 동등한 하나님이심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이 ‘호모우시오스’라는 비성경적 용어의 채택은,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려는 이단적 해석에 맞서 그 본질적 의미를 수호하기 위한 교회의 신학적 결단이었습니다. 공의회는 이 핵심 개념을 담아 최초의 ‘니케아 신조’를 작성하고, 아리우스의 가르침을 명백히 정죄하며 폐회했습니다.
3. 니케아의 유산, 삼위일체 교리의 영원한 초석
니케아 공의회가 아리우스주의를 정죄했다고 해서 논쟁이 즉시 끝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후 수십 년간 아리우스파의 정치적 반격과 신학적 도전은 계속되었고, 아타나시우스는 평생 다섯 번이나 유배를 당하는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니케아에서 선포된 ‘호모우시오스’의 진리는 결국 교회의 신앙고백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고,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재확인되고 확장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고백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갖게 되었으며, 이는 성부와 성자뿐 아니라 성령의 신성까지 포함하는 완전한 삼위일체 교리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니케아 공의회의 유산은 지대합니다.
- 첫째, 기독론(Christology)의 정립입니다. 니케아는 ‘예수는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가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이심을 선포하는 교리의 첫 단추를 꿰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확립함으로써, 그의 성육신, 십자가 죽음, 부활이 인류를 위한 유효한 구원 사건이 될 수 있음을 신학적으로 보증한 것입니다.
- 둘째, 삼위일체(Trinity) 교리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 선언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person)으로 존재하신다’는 삼위일체 신비의 문을 여는 열쇠였습니다. 니케아가 없었다면,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는 유대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엄격한 단일신론으로 회귀하거나, 다신론적 위험에 빠졌을 것입니다.
- 셋째, 교회의 교리 형성 방식에 대한 선례를 남겼습니다. 니케아 공의회는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치열한 신학적 사유를 통해, 시대의 도전에 응답하고 신앙의 핵심을 수호하는 ‘정통(Orthodoxy)’ 교리를 형성하는 공적 과정의 중요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결론: 과거의 논쟁이 아닌 오늘의 신앙고백
지금까지 우리는 4세기 초 교회를 뒤흔들었던 아리우스 논쟁과, 이에 맞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선포한 니케아 공의회의 역사적, 신학적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니케아 공의회는 단순히 오래된 교회사 속 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할 때, 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교회의 가장 권위 있는 답변입니다.
니케아의 신학적 투쟁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신앙은 단지 감정적인 체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바를 정확히 알고 고백하는 지적인 확신을 포함한다는 사실입니다. ‘호모우시오스’라는 한 단어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아타나시우스처럼, 우리 역시 우리가 믿는 진리가 무엇인지 바로 알고, 그 진리 위에 우리의 신앙과 삶을 굳건히 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니케아 공의회는 조직신학의 심장부에 위치하며, 그곳에서부터 뻗어 나온 신학의 동맥들이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을 살아 숨 쉬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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