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는 과정에는 영광과 기쁨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팎으로 여러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유대교의 핍박으로 스데반이 순교하였지만 그로 인하여 복음이 확장되어 나갔음을 묵상하고 설교로 준비하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 54절-8장 3절, 스데반의 순교와 복음의 확장
초대교회의 고난의 시작
"공유교회"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공유교회란, 말 그대로 교회건물을 여러 교회 공동체들이 공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건물이 없는 교회의 경우, 건물을 구입하기 힘들거나 월세를 내는 교회들의 경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큽니다. 특히 요즘과 같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모이기 힘든 경우에는, 월세를 내지 못하는 교회들이 더이상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는 신문 보도를 접하였습니다.
자기 것을 나누며 서로 공유하는 이유가 이처럼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초대 교회의 공유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내가 쓰고 남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까지 흘러가도록 하기 위하여 공유하였습니다. 자발적으로 서로 나누고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완벽해 보였던 초대 교회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성령을 속이고 헌금을 바치는 척 하면서 자신의 명예를 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교회 안에서 헬라인 그리스도인들보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을 나누어 주는 일이 생겨 났습니다. 필요에 따라 나누어 줌으로써 모두가 부족함 없이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던 출신을 기준으로 구제의 우선 순위가 정해지는 불평등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곱 명의 집사를 세웠습니다. 모두에게 존경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을 세워서 구제의 문제와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이들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스데반 집사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고 은혜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두려움 없이 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로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가는 일이 많던 이 때, 스데반은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과 같이 복음을 선포하는 중에 순교하게 됩니다.
순교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신앙 행위"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순교의 길을 간 성도를 "순교자"라 하며, 순교자와 연결된 헬라어는 'μάρτυς'(마르투스)라고 하는데, 마르투스의 원래 의미는 '증인'입니다. 즉, 순교자들은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증거하다가 생명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스데반 역시 순교자이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증인 즉 마르투스입니다.
스데반의 순교
마르투스인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 우리가 어떤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만 할까요?
첫째,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 생활을 해야합니다.
스데반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전한 복음은,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 행했던 위선과 예수님을 향해 저질렀던 악행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들었던 악한 자들은 마음에 찔리고 이를 갈며 분노하였습니다.
- 사도행전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찔렸다는 말은 'διαπρίω'(디아프리오)라고 하는데, 화가 나도록 거칠게 감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선언한 복음은 위선적이고 사악한 자들에게 화가 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간다는 말은 'βρύχω'(브뤼코)라고 하는데, 이를 부득 부득 간다는 뜻입니다. 너무나도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는 뜻입니다. 진실을 말하자 거짓말을 하던 사람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분노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들이 분노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복음을 듣고도 성령님의 충만함을 경험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선포하면서 예수님의 정체를 설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가 기다리던 그 메시야이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가 되셨다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분노하고 이를 갈았던 사람들은 복음 속에 나타난 예수님을 바라보기 보다, 자신들의 자존심과 체면과 지위를 바라보았습니다. 복음을 접하고 예수를 바라보기보다 자기 자신이 가진 세상적인 것들을 바라보니 분노가 솟아 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복음이 선포되니 세상적인 것과는 부딪히게 되고, 그들은 예수님을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분노하고 이를 갈고 험악한 분위기가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성령 충만하여 예수님만을 바라본 스데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장면, 하나님의 오른편에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할 때,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내 마음과 생각과 삶에 충만하게 임재하심으로써, 천국에서 우리를 보고 계신 우리 주 예수님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둘째, 핍박하는 사람까지도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예수님을 바라보던 스데반이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다고 선포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 험악하고 공포스러워졌습니다. 그들은 분노하고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귀를 막고 스데반을 폭행하였습니다.
- 사도행전 7: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복음 듣기를 거부한 이들은 급기야 스데반을 끌어내어 돌로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스데반이 신성모독의 죄를 범했다고 생각했기에, 사정없이 돌을 던져 스데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 때 스데반이 취한 자세는 상상을 초월한 행동입니다. 그는 복음 전파를 멈추지도 않았고 살려 달라고 빌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못 박았던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님처럼,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외치며 마지막으로 했던 기도의 내용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 사도행전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선포하는 성도는 핍박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능력과 믿음이 있습니다. 용서하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삶이며, 용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분명히 갚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생명이 꺼져 가는 상황 속에서도 용서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원수를 용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데반은 돌에 맞는 순간에 "무릎을 꿇고 크게 불렀다"라고 기록하는데, 이 말은 원수 용서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겸손하게 엎드려 주의 도움을 구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도 스데반이 가졌던 성령 충만과 믿음으로 원수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갑시다. 용서할 수 없다면,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무릎을 꿇고 크게 기도합시다.
셋째, 핍박을 각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 드디어 사울이란 청년이 나타났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은 신성모독을 하였기에 돌에 맞아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사울은 의심이 가는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초대 교회는 큰 핍박을 받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유대 땅으로 흩어졌고 사마리아 지역까지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 사도행전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잔멸'하였는데, 잔멸하였다는 말은 'λυμαίνω'(뤼마이오)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는 멧돼지가 포도원을 완전히 황폐화 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후좌우로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율법에 충실했던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들여 핍박하며 잔멸하였습니다. 닥치는대로 잡아 들이고 서로 나누고 화평하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습니다.
복음에 충실했던 스데반은 복음을 위해서 생명까지 버렸습니다. 스데반의 신앙을 본받아 믿음을 지키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감옥에 붙잡혀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핍박을 각오하며 복음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비록 손해가 있고 핍박이 있어도 복음을 끝까지 붙들고 믿음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무모해 보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이 부족하고 고지식해 보인다 할지라도, 복음을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어야만 합니다.
순교와 복음의 관계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는 순간까지 복음을 붙들었고 예수님을 닮아 용서하는 헌신을 하였습니다. 그의 헌신으로 인해 초대 교회에 핍박이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이 사건 이후에 사울은 다메섹까지 흩어지던 그리스도인들을 쫓아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하고 이방인들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박해와 순교의 순간은 고통스럽고 아픕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인하여 박해 받고 순교하였다면, 그 피로 인하여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성도의 환란과 핍박은 교회의 부흥과 성장과 하나님의 일하심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의 복음에 대한 헌신과 수고로 인한 핍박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열매를 맺게 됨을 기억합시다.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복음을 전파하는 우리가 됩시다.
참고할 글들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다섯 가지 솔라들, 그것들은 어떤 것이며 왜 중요합니까 - 성경사전
사도행전 5장 1절-11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의 결과 - 묵상과 설교 새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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