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11장 21절부터 45절까지의 말씀은, 북방 왕국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거짓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며, 그가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전쟁을 일으킬 것임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매일성경큐티와 새벽설교를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다니엘 11장 21절-45절,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통치
이 모든 것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통치에 대한 예언이다. 이전에는(8:9) 그를 "작은뿔" 이라 했고, 유대 종교에 대해서는 불구대천의 원수였고, 유대 종교의 신봉자에게는 가혹한 박해자였다. 바사 왕들의 통치 중에 당했던 유대인들의 재난은 여기서 만큼 다니엘에게 자세히 예언되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그때에는 학개와 스가랴 등의 예언자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있어 그들을 격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티오커스의 통치 때에 있을 어려움에 대해서는 예언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그 이전에 예언이 중지될 것이고, 그들이 기록된 말씀에 의지할 필요를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티오커스에 대한이 예언 중 어떤 것은 적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 성서의 예언을 암시하고 있는데, 특별히 36, 37절이 그렇다.
예언자들은 보통 유대 교회의 번영을 예언할 때는 "그리스도의 나라" 에도 적응될 수 있는 그런 표현을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 사용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언자들이 교회의 재난에 대해서 예언할 때는 적 그리스도의 나라, 혹은 그 왕국의 흥망성쇄에 대한 표현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표현으로 예언한다. 이제 천사가 여기에서 안티오커스에 대해 예언하는 내용을 살펴보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성격
그의 성격. 그는 "비천한 사람" 일 것이다. 그는 자신을 "에피파네스" -즉 "훌륭한 자" 라는 뜻-라고 불렀으나, 그의 성격은 그의 별명과는 정반대의 것이였다. 이방인 작가들은 그를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 무례하고 거친, 그리고 비열하고 옹졸한 사람이라고 서술한다. 그는 때때로 궁정에서 몰래 빠져나와 도시에 들어가 "변장하고서" 파렴치한들과 어울려 놀곤 했다. 그는 스스로를 천민으로 만들었고, 그 마을에 찾아 온 가장 비열한 사람들의 친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기묘한 변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여겼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는 에피마네스(Epimanes) -즉 미친 사람이라고 불리웠다.
그는 "비천한 사람" 이라고 불리우는데(21절). 그 이유는 그가 그의 아버지의 충성심을 대신하여 오랫동안 로마에 인질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가 로마 군대에게 굴복하였을 때 일어난 사건이다. 그리고 다른 인질들이 교환되었을 때에도, 그는 오랫동안 포로로서 남아 있었을 것이라 한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왕위 계승
그의 왕의 계승. 그는 간계를 써서 그의 형의 아들 데메트리우스(Demetrius)를 자기와의 교환을 위해 로마로 보내오도록 만들었다(이것은 포로 교환 협정의 위반이었다). 그리고 그의 형은 헬리오도루스(Heliodorus)에 의해서 제거되었고 그는 왕국을 손에 넣었다(20절). 수리아의 대신들 은" 그에게 왕국을 넘기지 않았다" (21절). 왜냐하면 그들은 수리아가 그의 형의 아들에게 속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왕국을 칼로써 얻은 것도 아니었다. 당시에 로마로 인질이 되어간 그의 형의 아들 데메트리우스를 대신하여 통치를 하겠다고 가장함으로써 "평화스럽게 왔다." 그러나 이웃제후들이었던 유메네스(Eumenes)와 아탈루스(Attalus)의 도움으로 그는 국민들의 관심을 얻었고, "궤사로 그 나라를 얻었다." 그리고 "넘치는 물 같은 군대로" 그에게 대적하였던 헬리오도루스를 진압하였다. 그에게 대적한 사람들은" 그 앞에서 넘쳤으나 파멸되었고" 심지어는 그와 "동맹한 왕" 까지도 멸망되었다. 그와 동맹한 왕은 그의 조카였다. 그는 조카가 언제든지 돌아오면 왕위를 양보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당한 상속자였다(22절). 그러나 "그와 조약한 후에 그는 거짓을 행할 것이다'(23절). 그는 마치 제왕은 자기들의 권익에 도움이 되지 않은 한 자기들의 말로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에 그에게 충실히 붙어있던" 적은 백성과 함께" 그는 "강하게 될 것이며," 수리아 왕국이 "가장 기름진 평화로이 들어 올 것이며,' 그의 선왕들과는 달리 백성들에게 교묘하게 환심을 사기 위해서" 노획하여 탈취한 재물을 던져 나누어" 주었다(24절).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그들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 "모략을 베풀어 산성을 칠 것이다." 그래서 그의 관용은 잠간 동안만인 것이다. 그는 주둔군만 손에 넣으면 더 이상 전리품을 뿌리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는 사기 수단으로 행하는 사람들처럼 무력으로 지배하게 될 것이다. 여우처럼 온 그는 사자처럼 다스린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첫 애굽 원정에 대한 이 성서 구절을 보고 이렇게 이해한다. 그가 처음에는 적으로서 온 것이 아니라 친구로서 왔다고 즉 젊은 톨레미우스 필로미터 왕에 대한 보호자와 친구로서 왔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몇 사람되지 않는 수행원과 함께 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용감한 사람들, 그리고 그의 이해관계에 신실했던 사람들을 시켜 애굽의 요새에 잠입하고 나서, 그 나라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애굽 원정
이것은 25, 27절에 서술되어 있다. 안티오커스는 애굽의 왕 톨레미우스 필로미터를 대적하여 "힘을 말하고 용맹을 떨칠 것" 이다. 그래서 곧 톨레미는 그에게 대적하기 위해 "심히 크고 강한 군대" 를 이끌고 올 것이다. 그러나 톨레미는 그렇게 강한 군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안티오커스 앞에 설 수 없을 것이다. 안티오커스의 군대를 "뒤엎고" 이길 것이며, 애굽의 무수한 군대가 "살해되어 넘어질 것이다." 애굽의 왕이 그 자신의 모사(謨士)들에게 배신당하리라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애굽 왕의 "진미를 같이 먹는" 사람들, 그의 빵을 같이 먹고 살던 사람들이 안티오커스에게 매수당하여, 전략을 미리" 알려 줄 것이니, "심지어는 바로 "그들이 그(애굽의 왕)를 멸할" 것이다. 이런 배신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으랴! 전쟁이 끝난 후, 평화 조약이 수립될 것이며, 이 두 왕은 "한 회석상에 앉아" 조약문장을 작성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그 조약에 신실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친목과 우애의 약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속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은 서로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피해를 행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조약이 성공하지 못할" 것임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평화는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평화의 "종말은" 하나님의 섭리로 "지정된 때에" 있을 것이다. 그때에 다시 일어란 것이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또 한 번의 애굽 원정
먼저 번 전쟁에서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돌아갔다" (28절).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로 "작정한 때에" 즉 2년 후인 그의 통치 제8년에 그는 다시 애굽을 침략할 기회를 잡았다(25절). 그는 "남방으로" 향해 갈 것이다. 그러나 이번 시도는 지난 번 그가 두 번 행했던 것처럼 성공하지 못할 것이며,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깃딤의 배" 즉 로마의 해군, 혹은 로마의 원로원에서 보낸 대사들의 배가" 그를 대적하여" 올 것이기 때문이다. 애굽의 왕 톨레미우스 필로미터는 이제 로마군과 완전히 동맹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도움을 얻어 그 자신과 그의 어머니 클레오파트라를 알렉산드리아의 도성에 포위하고 있던 안티오커스를 대적하였다. 그래서 로마의 원로원은 안티오커스에게 대사를 보내어 포위 공격을 중지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가 그 명령을 생각하고 그의 친구들, 즉 대사 중에 하나였던 그의 친구 포필리우스(Popilius)와 상의할 시간을 요구했을 때, - 이때 그 친구는 권위있게 말했다-그가 그 대사들의 포위망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전에 적극적인 답변을 해야만 했었다. 로마의 권력을 두려워하면서 그는 그 때문에 그의 군대를 애굽에서 철수시키고 포위망을 풀으라는 명령을 내리도록 강요당하게 되었다. 리지(Livy)와 다른 사람들은 이 예언, "그가 낙심하고 돌아갈 것이다" 는 말은 이것을 뜻한다고 본다. 그와 같은 강요를 받는 것은 그에게는 커다란 울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그의 분노와 잔인한 책략
이 책략은 이 예언 가운데서 가장 자세하게 설명된 그의 악한 치적의 일부분이다. 애굽 원정에서 돌아와서(28절에 예언되어 있다), 그는 그의 통치 6년째 되는 해에 유대인들을 박해했는데, 그 때에 그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약탈했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폭풍은, 2년 후 애굽에서 돌아오는 중에 있었고, 이것은 30절에 예언되어 있다. 그 때에 그는 유대를 임의로 취했다. 로마 군대의 간섭으로 애굽에서 승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힘없는 유대인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유대인들은 그를 화내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크게 노엽게 하여 그가 그런 일을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게 만들었다(단 8:23).
1. 그는 유대 종교에 대해 깊은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음으로 거룩한 언약을 거스렸다" (28절). 그리고 그는 유대인들을 다른 모든 민족들로부터 구별하여 결속되게 만들었던 "그 언약에 대해서 크게 분노했었다." 그는 모세의 율법과 참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미워했었다. 그리고 유대 민족의 특권과 그들에게 주어진 언약에 성이 났었다.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과 희망이 그들의 이웃 사람들의 질투가 된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거룩한 계약도 마찬가지다. 에서는 야곱이 축복을 받았다고 그를 미워했었다. 계약에 낯선 사람들이 종종 계약에 대적한다.
2. 그는 악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딴 마음을 품은 유대인 배신자들의 도움으로 유대인들을 대적할 그의 악랄한 계획을 실행하였다. 그는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를 중히 여겼다" (30절). 어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종교에 대해 어리석었고, 이방인의 관습을 소개하면서 이방인들과 계약을 맺었다. 마키비하 1장 11-15절을 보라. 거기에 이런 이야기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런 유대인 배신자를 주목해 보라. 그들 유대인 배신자들은 "스스로를 무할례자로 만들었고, 거룩한 계명을 버렸다." 우리는 마키미하 4장 9절에서 대제사장 오니아스의 동생야손이 안티오커스와의 약속에 의해서 "이방인의 관례에 따라 젊은 이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학교를 세웠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안티오커스가 애굽에서 마지막으로 되돌아와 예루살렘에 들어오도록 도왔던 메넬라우스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마카비하 4:23). 우리는 마카미서에서 야손과 메넬라우스 등 동족 가운데 있는 배신자들에 의해서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재난을 볼 수 있다. 안티오커스는 언제나 이런 자들을 이용했다. "계명을 대적하여 사악하게 행동하는 자, 그리고 자기들의 종교를 버리고, 이방인들과 어울리는 자들을, 그는 궤사로 타락시킬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배신이 더욱 견고해지게 하고, 그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미끼로 이용하리라" (32절). 일반적으로 그들의 종교에 따라 살지 않고, 계약을 거슬려서 "사악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쉽사리 "궤사에 의해서 타락되어" 종교를 버리는 것이 이상스러운 일이 아님을 주목하자. 선한 양심이 파선된 사람은 곧 "신앙도 파선시킬 "것이다.
3. 그는 성전을 더럽혔다.
"군대는 그의 편에 섰다" (31절). 그가 애굽에서 데려온 그의 나라의 군대뿐만 아니라, 유대 종교에서 이탈한 많은 도망병이 그의 편에 가담했다. 그리고 그들은 거룩한 도성만이 아니라 성전, 곧 견고한 "성소까지" 더럽혔다. 이 이야기는 마카미상 1장 21절에 있다. 그는 "거만하게 성소로 들어갔고," "황금제단과 촛대를 폐했다." 그러므로(52절). "이스라엘에는 커다란 애곡" 이 있었다. "방백들과 장로들도 통곡했다. "그리고(마카비하 5:15) "안티오커스는 지성소에 들어갔고, 자기 나라의 율법과 민족을 배신한 메넬라우스가 그의 안내자" 가 되었다. 안티오커스는 자기 주변의 모든 자들로 자기의 종교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지시켰다" (31절).
여기에서 "매일" 이라는 의미만을 지닌 "탐미드" (Tammidh)라는 단어는 오직 이곳과 그 병행 구절에서만 "매일 드리는 제사"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서 마치 안티오커스가 제거한 "제사" 란 말이나 적그리스도가 폐지하는 "복음의 예배" 란 말을 연결시킬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는 듯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제단 위에다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웠다" (마카미상 1:54). 심지어는 "우상의 제단을" 쌓고(59절), 성전을" 올림푸스의 쥬피터" (Jupiter olympius)의 성전이라고 불렀다(마카비하 6:2).
4. 그는 순전함을 지켰던 사람들을 박해하였다.
비록 "율법을 저버리고 율법을 대적하여 사악하게 행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강하여 용맹을 발할 것이다" (32절). 다른 사람들이 그 독재자의 명령에 순응하고, 그의 협잡에 양심을 포기하였을 때, 이들은 용감하게 신념을 지켰으며, 유혹에 항거하였고, 독재자로 하여금 그가 행한일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서기관 중의 하나였던 나이 많고 선량한 엘르아살은 독재자가 그의 입에 억지로 돼지고기를 넣었을 때, 용감하게 내뱉었다. 비록 그는 그가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죽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행동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마카비하 6:19). 그 어머니와 그의 일곱아들도 신앙을 지킴으로써 죽음을 당하였다(마카비하 7장). 이것은 아마도 "용맹을 행하는" 것이었으리라. 왜냐하면 죄를 짓는 것보다 오히려 고통을 선택하는 것이 용감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신앙에 의해서, 신앙 안에서 강하게 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고, "석방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문을 당하였다." 사도의 말은 아마 이것을 말하리라(히 11:35). 아니면 그 이야기는 군대로서의 용기와 안티오커스에 대적하는 유다 마카비의 성과를 언급하는 것이리라.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은 영혼의 힘이며, 또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지식의 힘 안에서 온순한 영혼은 용맹을 발할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신뢰할 것이며, 그 신뢰에 의해서 위대한 일을 행할 것이다.
우리가 할게 되는 사실들
1.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가르칠 것이다"(33절).
진리와 거짓, 선과 악 사이의 차이점을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일을 그들의 업무로 삼을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그 지식을 교환하여야 한다. 이러한 영적 자선을 확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
혹자는 본문을, 신령한 지식을 신포하기 위해서 새롭게 선택된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그들은 "아시디안들" (Assideans), 즉" 경건한 사람들" 이라 불리운다(그 말 뜻이 이렇다). 그들은 율법을 알고 있을 뿐만아니라 율법에 열심인 사람들이다. 배신과 박해의 시대에는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 지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강건하게 일으켜 세우는 데 이용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라.
자기 자신을 바르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이란 다른 사람들과 교류되어야 할 하나의 재능이기 때문이다. 혹은 그들이 그들의 의무에 대한 인내에 의해서, 그리고 그 의무를 위해서 고통을 참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칠 것이다. 좋은 모범은 많은 사람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가르침이다.
2. 핍박에 많은 이들이 넘어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안티오커스의 학대에 의해서 "넘어질 것이며," 고문을 받고, 그의 분노에 의해서 죽게 될 것이다. 비록 그들이 아주 탁월하고 지혜로울지라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유익하게 봉사할 수 있을지라도, 안티오커스는 그들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들은 여러 날 동안 쇠패할 것이다." 요한 계시록 2장 10절의 말씀, "너는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라는 말씀처럼 읽을 수 있다.
우리는 마카비서에서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행한 안티오커스의 야만적인 취급에 대한 많은 사실을 읽을 수 있다. 그가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해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냉혹하게 죽였는지를 읽을 수 있다. 여인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할례받게 하였다는 이유로 살해당하였고, 그들의 자녀들은 교수형을 받았다(마카비상 1:60,61). 그러나 왜 하나님은 이런 일을 허용하셨는가? 어떻게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의와 선하심과 조화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님의 목적하신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한다면 곧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35절). "이해하는 몇몇 사람들이 넘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와 그들 자신의 영적 유익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고 희게 만들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런 재난이 "필요했다." 가장 훌륭한 사람도 깨끗해져야 할 오점과 씻겨져야할 불순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재난이, 특히 "공적인 재난에의 동참" 이 그 일을 돕는다. 하나님이 은총에 의해서 거룩하게 됨으로써, 그 재난은 그들의 타락을 괴로워하고,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구별되며 그리고 종교에 대한 진지성과 헌신을 일깨우는 수단들이 되는 것이다. 재난은 마치 풀무불 속에 있는 은이 불순물에서 정제되는 것처럼, 그들을 시험한다. 재난은 마치 헛간 속에 있는 밀이 키질되어 까불러지는 것처럼 그들을 깨끗하게 만든다. 그리고 재난은 마치 더러운 옷이 세탁공에 의해서 깨끗해지는 것처럼 그들을 희게 만든다. 베드로 전서 1장 7절을 보라. "공의를 위한' 그들의 고안이 유대 민족을 시험하여 깨끗하게 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죽음으로써 지켰던 유대 종교의 힘과 진리, 그리고 탁월함을 그들로 하여금 확신하게 할 것이다.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그것은 귀중한 피다. 그리고 순교자의 피 한 방울도 헛되이 흘려지지 않을 것이다.
3. 그러나 주의 백성들은 믿음을 지킬 것이다.
비록 종교의 명분이 그와 같이 하여 높이 올라갈지언정 쇠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쇠패해질 때에도," 완전히 낙담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다" (34절). 유다 마키비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약간의 그의 추종자들이 독재자에 항거할 것이고, 침해된 저들의 종교적 명분을 주장할 것이다. 그들은 우상들의 "제단을 뿌리뽑았고, 할례받지 않은 자녀들을 할례받게 하였으며, 이방인들의 손에서부터 율법을 회복하였고, 그들의 손에서 번영했던 일들을 회복하였다" (마카비상 2:45). 종교가 위협을 받고 공격을 받을 때, 종교의 명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곧바로 구원을 받거나 승리를 얻지는 않을지라도 여전히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도움" 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때가 아주 나쁜 때에도, 우리는 "약간의 회복으로서"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궤휼로 저들과 친합할" 것이라는 예언도 나와 있다. 그들이 마카비 형제들의 성공을 볼 때 많은 유대인들이 저들에게 연합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종교에 진실한 친우가 아니며, 다만 우애를 가장하여 "배신하거나" "함께 흥하려는" 속셈에서이다. 그러나 "불 같은 시련" (35절)이 "귀중한 것과 나쁜 것" 을 구별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련에 의해서 "완전한 것과 불완전한 것" 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4. 재난의 끝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비록 이 재난이 오래 계속될 것이지만, "끝이" 있을 것이다. 이 재난의 끝은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작정된 때" 이며, 한정된 기한에 있다. 이 전쟁은 끝이 날 것이다. "여기까지는" 적의 세력이 올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은"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그 "교만한 물결은 멈춰질 것이다."
안티오쿠스는 대단히 거만해졌고 무례해졌으며, 속되었다.
그리고 그의 정복을 으시대면서 하늘에 도전하였고 거룩한 것들을 짓밟아 버렸다(36절).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적그리스도의 예언, 즉 교황의 나라의 출발을 생각한다. 사도 바울이 죄된 인간의 통치와 흥성에 대해 예언한 것(살후 2:4)은 이것을 암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바벨론이 그랬던 것처럼, 안티오커스가 그 대적의 상징이요 모형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 후에 계속된 이야기는 앞에서 안티오커스에 대해 한 예언과 연결되기 때문에 나에게는 바울의 예언도 근본적으로 안티오커스를 언급하는 것이며, 그에게서 그 예언이 먼저 성취되었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다만 적응의 방법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1. 경건치 못하게도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유일하게 살아계신 진실한 하나님이시며, 여기에서는 "신들 중의 신" 이라고 불리운다. 그는 하나님과 그의 권세를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의 거룩한 종교를 대적하여 "임의로" 행할 것이다. 그는 산헤립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자신을 높여, "기이한 것을 말하여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과 제도를 대적할 것이다. 이런 일들은 안티오커스가 하나님의 성전에 "제물 드리기를" 금하였을 때, 그리고 "안식일을 더럽히도록" 명령하였을 때, 성취되었다. 또한 "성소" 와 "거룩한 백성들을 타락시켜," "율법을 잃어버리고 모든 규례를 바꾸게까지" 되었을 때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에게 죽음의 고통이 될 것이다(마카비상 1:45).
2. 그는 거만하게 "모든 다른 신들" 을 경멸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신들보다 자기가 크다고" 할 것이다. 심지어는 국가의 신들보다 자기를 더 높일 것이다. 안티오커스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섬기는 신들로부터 떠나야 하며, 그가 명령한 것을 신처럼 경배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런 일은 안티오커스 이전의 모든 지배자들의 행동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마카비상 1:41,42). 그리고 "모든 이방인들도 이 왕의 명령에 따랐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들을 고통받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들은 무슨 신을 섬기든지 모두 같은 것이었다. 안티오커스는 "어떤 신도 섬기지 않았다." 다만" 자기 자신을 모든 것보다 높였다" (37절). 그는 너무 교만하여 자기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을 넘어서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는 "바다의 물결을 명령할 수 있고, 하느님의 별들에까지 닿을 수 있다" 고 생각하였다(마카비하 9:8,10). 그와 같이 그는" 분노가 쉴 때까지" (36절). 그의 죄악의 분량이 찰 때까지, 그리고 그의 길을 다갈 때까지, 그의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수행할 것이다. 이는 "작정된 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남거나 모자람도 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3. 그는 이방인의 길과는 반대로 그의 조상들의 신들을 경멸할 것이다(37절).
이토록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그들의 조상들의 종교에 대한 애착이 "여자들의 사모하는 것" 만큼이나 자연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만일 우리가 "깃딤의 섬들" 을 조사한다면, "자기들의 신을" 바꾼 나라의 예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렘 2:10, 11) 안티오커스는 그의 "열조들의 신을 경배하지 않을 것이다." 안티오커스는 그의 나라의 종교를 제거하고 희랍의 우상들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안티오커스의 조상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고, 예루살렘 성전에 많은 선물을 바쳤는데(마카비하 3:2,3). 안티오커스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전에 지독한 모독을 가했다. 그가 "여자들의 사모하는 것(소망)을 돌아보지 않은 것" 은 그의 야만적인 잔학성을 나타내는 것이리라(그는 결코 나이나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해칠 것이다). 또는 그가 "여자의 사모하는 것" 을 돌아보지 않는 것" 은 그의 비(非)자연스러운 정욕이나, 혹은 품위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그의 비난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그가 또한 "그의 열조의 신들을 돌아보지 않은 것" 은 그의 나라의 우상 숭배자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많은 육체의 만족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루시안은 수리아의 여신들에 대해서 기록했다).
4. 그는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신을 세울 것이다" (38절).
"그의 땅에서," 그의 열조들의 신(쾌락의 신, 아폴로와 다니아나)의 방에서, 그는 "세력의 신을 경배할" 것이다. 말하자면 권력의 신, 그의 열조들은 알지도 예배하지도 못했던 "신" 을 숭배한다. 그는 자기가 힘과 지혜에 있어서는 그의 열조들을 능가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이 신을 금과 은, 그리고 보석으로 영화스럽게 할 것이다." 그의 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아까울 것이 없다는 생각하면서 그렇게 할 것이다. 아마도 그 세력의 신은 "하늘의 주인" 이라는 뜻으로서 "바알 세멘" ( Baal-Semen)이라는 이름으로 푀니키아사람들에게 알려진 올림피우스의 쥬피터일 것이다. 그러나 안티오커스가 그 신을 소개할 때까지의 수리아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리하여 그는 "가장 견고한 곳" 이라고 불리우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예루살렘 성전은 "힘의 성소" (31)절)로 불리운다. 여기서는 "산들의 요새" 로 불리운다(우리 성경과 다름). "거기에다" 그가 이 "낯선 신" 의 상을 세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본문을, "그가 견고한 산성" 을, 곧 가장 강한 선의 산성(측 예루살렘 성)을 "그 낯선 신에게 넘겨 줄 것이라" 고 해석한다. 그는 그 산성들을 올림피우스의 쥬피터 보호와 지배 아래 있게 하였다. 그는 쥬피터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형상을 하나님의 제단에 세움으로써 "그에게 영광을 더할 것" 이다. 그리고 안피오커스는 이 우상을 섬기는 사제들에게 많은 사람을 지배한 권한을 줄 것이며, 권위와 신뢰의 자리에 앉힐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 땅을 나누어 얻을 것이며, 그 땅의 소산으로 부유해질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세력의 신", 곧 "마후짐" (Mahuzzim)이라는 말을, 안티오커스가 숭배할 "돈" 으로 이해한다. 그 돈은 "모든 것에 해답" 을 주며 세속적인 사람들의 가장 위대한 우상인 것이다.
여기에는 "죄인" 에게 어울리는 많은 일들이 서술되어 있다. 그는 "신이라고 불리우고 경배받는 모든 것보다 자기를 더 높게 하며," "모든 것보다 스스로 크다고 한다." 아첨군들은 그를 "우리들의 신" 이라고 불렀다. 결혼을 금하고 독신 생활을 찬양함으로써, 그는 여인들의 소망을 돌아보지 않는 체하였다. 그리고 "세력의 신," 즉 "마후짐" 신을 영화스럽게 하였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오랫동안 그들의 악마에게 행했던 것처럼 그의 추종자들은 그 신을 자기들의 보호자로 여겼다. 그들은 이것들을 여러 나라의 대표자로 만들었다. 그들은 많은 보물을 그에게 바침으로써 그것들을 영화스럽게 하였고, 겨기서부터 학식있는 미드(Mede)씨는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디모데 전서 4장 1,2절에서 언급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애굽원정에 대하여
로마 군대는 톨레미를 침략하지 못하도록 그를 막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남방의 왕이 그를 찌른다" (40절). 그러자 "북방의 왕" 인 안티오커스는 남방의 왕을 대적하여,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오리 바람처럼 마주 온다." 그는 여러 나라를 통과하여 올 것이며, "물이 넘침같이 지나갈" 것이다. 이 진군에서 "많은 나라들이 그에 의해서 넘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거룩한 땅," 즉 이스라엘의 땅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것은 8장 9절에서 "평화로운 땅" 으로 번역된 것과 같은 말이다. 그 무렵에 그는 여러 나라에게 무서운 일을 행할 것이다. 그러나 몇 나라는 그의 격분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다. 특히 메돔과 모압, 그리고 "암몬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 이 벗어날 것이다(41절). 그는 이 나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유대인을 대적하는 데 그와 연합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히 애북 땅은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아주 완전히 그 땅을 벗겨 버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안티오커스의 통치 10년 혹은 11년 되는 해에 있었던 그의 4번째이자 마지막 애굽 원정은 그를 대적하는 톨레미우스 필로미터의 젊은 동생을 돕는다는 핑계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이 예언에서는 어떤 커다란 살륙이 있으리라는 것은 보지 못한다. 다만 커다란 약탈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안티오커스가 약탈을 위해서 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권세로 애굽의 금과 은과 모든 보물을 잡을 것이다" (43절). 아테네에 있었던 폴리비우스는 젊은 필로미터를 망쳐놓음으로써 그리고 그와의 동맹을 파괴함으로써 또한 그의 친구들의 도움으로 많은 물질을 장악하면서, 파울루스에 밀리우스(Paulus Emilius)를 흉내내어, 승리를 크게 자랑했다. 우리는 그가 그렇게 사치스럽게 낭비한 그 돈이 어떻게 손에 넣은 것인지를 볼 수 있다. 애굽에 인접해 있었던 리비아인들과 에티오피아 사람들도 그가 그렇게 이용했음을 엿볼 수있다. 그들은 안티오커스의 시종이 되었다. 그는 그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었고, 그들을 복종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안티오커스가 애굽을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내 주었다.
안티오쿠스의 멸망 예언
이전처럼(8:25) 여기에서도 안티오커스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 있다. 그는 그가 가장 높은 명예를 갖고 승리에 흥분되었을 때, 그리고 약탈품들을 적재했을 때, "동북에서부터" 소식이 이르러 그를 괴롭힐 것이다(44절). 또는 동쪽과 북쪽으로 파르디아(Parthia)의 왕이 그의 왕국을 내습하고 있다는 소식을 돌을 것이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계획을 버리게 하였고, 그에게 항거했던 바사와 파르디아를 대적하러 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그것이 그를 괴롭혔다. 왜냐하면 그가 실패했던 그 원정에서 소환당했을 때, 유대 국가를 완전히 멸절시키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타키투스(Tacitus)의 글에 잘 설명되었다. 타키투스는(그는 불산자였다)안티오커스가 "유대인들의 미신을 제거하고" "희랍의 율례를" 그들에게 "들여온" 것을 칭찬했다. 그리고 안티오커스가 파르티아 전쟁 때문에 그 일을 완수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겼다. 여기에서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1. 유대인들에 대한 분노에 찬 그의 마지막 시도.
그의 일이 난처하게 되고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살육하며 진멸코자 할 것이다" (44절). 이 이야기는 마카비상 3장 27절에 잘 나타나 있다. 유다 마키비가 성공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안티오커스는 대단히 격분했으며 리시아스(Lysias)에게 예루살렘을 파괴하라고 명령하였다. 그 때에 "그는 장막 궁전을 바다 사이," 즉 사해와 홍해 사이에 "펼쳤다." 그가 직접 나타 날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근처의 엠마오에다가 황제의 대형 천막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전권을 그의 대장에게 주어 유대인들과의 전쟁을 주도록 가혹하게 수행하도록 하였다. 마치 "그가 영화롭고 거룩한 산을 소유한 것처럼," 그의 천막을 거기에 쳤고, 그 산을 자기의 것이라고 불렀다. 불경성이 크게 뻔뻔스럽게 되면, 그것의 멸망이 가까이 온 것을 알아야 한다.
2. 안티오쿠스의 멸망.
"안티오커스는 그의 끌에 이르리니, 아무도 도와 줄 자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한창 번성할 때에 그를 제거하실 것이며, 아무도 그의 멸망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8장 25절에서(" 그는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깨어지리라")예언된 것과 꼭 같다. 거기에서 우리는 이미 그의 불행한 최후를 예견했다. 교만한 압제자르이 종말에 이를 하나님의 때가 올 때면 아무도 그들을 도울 자각없을 것임을 주목하라. 아마도 그 누구도 그들을 도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들이 성공하고 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겁내 주기를 바라던 자들은, 자기들은 근심가운데 있을 때 아무에게서도 사랑답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지. 아무도 그들에게 손바닥 만한 도움도 주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돕기 위한 기도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돕지 않는다면 누가 도울 것이겠는가?
하나님께서 대적을 완전히 파멸시키신다
안티오커스 이후의 왕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예언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에 대해서 가장 심술궂고 해를 끼치는 대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왕은 지옥의 아들의 한 모형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입김으로 그 왕도 소멸시키실 것이며, 하나님의 임재의 광채로 그를 파멸시키실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를 돕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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