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4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은, 느부갓네살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놀라운 모습들을 보면서 놀라움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과 그가 선포한 칙령의 서론적인 부분입니다. 매일성경큐티와 새벽설교를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다니엘 4장 1절-3절, 느부갓네살의 하나님 찬양
느부갓네살의 조서
여기에는 왕이 반포하는 조서나 포고문 또는 회람용 서신의 일반적 형식이 약간 비췬다(1절). 느부갓네살이 사용한 문체는 허세나 화려한 게 전혀 없고 평이하며 간결하며 꾸밈이 없이 "느부갓네살 왕" 이라고만 되어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는 어마어마한 표현으로 자기 칭호를 과장하련만 여기서는 그 모든 허세를 버리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늙었고 혼미한 정신 상태에서 회복한지가 얼마되지 않은 때문이다. 그의 정신 이상은 그를 비천하게 만들고 굴욕을 당하게 만들었었는데 그는 이제 하나님의 크신 주권을 심사숙고하여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포고는 자기 백성을 대상으로 할 뿐만 아니라 천하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이 문서에 접하게 될 모든 자를 향해서도 선포된 것이다. 여기에는 그 자신의 수치스런 기록이 내포되어 있지만 그는 모든 자들이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바램을 가지고 말한다. 아마 왕 자신이 반포하지 않았더라면 어느 누구도 감히 이를 공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원본 그대로 출간했을 것이다. 그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 말을 주목하라고 엄명을 내린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이 기록에 관계가 있으며 이 말씀은 모든 자에게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글의 대상자들에게 일반적 형식으로 "너희에게 많은 평강이 있을지 어다" 라고 인사를 건넨다. 명령을 내리면서도 안부를 빌며 그 나라의 아비답게 자기 백성을 축복하는 것은 왕에게 어울리는 행위이다.
느부갓네살 조서의 내용
여기에는 조서의 내용이 나온다. 그가 이 조서를 쓰는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섭리를 알리다.
그와 관련된 하나님의 섭리를 남들에게 알리기 위하여(2절). "나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그는 참 하나님을 그렇게 부른다)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알게 하기를 즐겨하노라."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 정신 이상에서 회복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지당하게 그를 낮추셨으며 얼마나 은혜롭게 그를 결국 회복시키셨는지를 원방에 알리고 미래를 위해 기록하는 것이 자기의 의무이며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자기의 빚이라고 생각했다. 만국은 물론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난 일을 귀가 울리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자기한테서 직접 전한 말을 분명히 들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들에게 이 일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리고 그의 마음이 이 일로 어떤 감명을 받았는지도 알려서 그들로 하여금 이 일을 소문꺼리가 아닌 신앙의 재료로 말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난 사건은 감탄할 만한 이적일 뿐만 아니라 교훈받을 만한 표적이기도 했고 "여호와께서는 다른 모든 신들보다 크시다" 는 것을 세상에 나타내 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처사 즉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책망이든 은총이든 남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본문의 경우처럼 그 일이 비록 우리 자신에게 수치가 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바지가 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결코 그 일을 숨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영혼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말하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쾌히 하려고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들의 칭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기들을 반대하여 하신 일이나 자기들이 하나님의 반대를 받을 만한 자들이라는 것은 말하기 싫어한다. 우리는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함으로써 뿐만 아니라 우리 죄를 고백하고 우리 불의에 대한 형벌을 받아들이고 여기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대왕처럼 이 두 가지로 수치를 자청함으로써도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
2. 느부갓네살이 받은 감동.
그 자신이 이 섭리로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각성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3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행위에 대해 언제나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말해야 하며 우리가 남들도 주목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하나님의 크신 일에 우리 자신부터 감동되었음을 나타내 주어야만 한다.
(1) 그는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그는 놀란 자답게 말한다.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느부갓네살은 이제 늙었고 40년 이상을 지배해왔다. 그는 어느 누구못지 않게 세상일을 많이 경험했고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일도 당해봤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렇게 감동된 적은 없었고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만큼 놀랄 만한 사건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는 얼마나 위대하고 강력한 것인가! 하나님의 행하신 사건과 그 사건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적 지혜의 산물을 많이 보면 볼수록 그것들은 우리의 눈에 더욱 기이하게 나타날 것이다(시 118:23; 66:2)
(2)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지배를 추론한다. 이것은 그가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라고 승인하게 된 것이다. 그 왕국은 자신의 왕국과 같지 않다. 느부갓네살은 이제 세계를 지배하는 그리고 인간의 자손들에 대한 우주적이고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영존하는 이 왕국의 영광이다. 다른 사람들의 통치는 한 세대에 한정되고, 다른 왕가도 수 세대에 한정되지만 하나님의 지배는 영원하다. 느부갓네살은 여기서 다니엘이 예언한 왕국을 가리키는데 그 왕국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세우실 나라요 망하지도 아니할 나라이다(2:44). 그 나라는 메시야의 왕국을 의미하지만 느부갓네살은 섭리의 왕국으로 이해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올바르게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예언서를 실제적으로 유익하게 사용하고 적용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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