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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주석] 시편 5편 1절-6절, 인도와 보호를 구하는 기도 - 주석과 해설 정리

시편 5편 1절부터 6절까지의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간구하는 기도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다윗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이 도움이 되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5편 1절부터 6절까지의 주석과 해설을 참조하여 묵상합니다.


[시편 주석] 시편 5편 1절-6절, 인도와 보호를 구하는 기도



시편 5편 1절-6절, 인도와 보호를 구하는 기도 - 주석과 해설 정리

인도와 보호를 구하는 기도 (시편 5:1-6)


이 시편의 표제는 다른 곳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Nehiloth이라는 단어가 덧붙여진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우리 성경에는 나타나있지 않다:역주). Neginoth가 현악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단어는 이 시편을 노래할 때 사용된 관악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이것은 단지 추정일 뿐이다). 이 구절에서 다윗이 보는 하나님은 다음과 같다.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이래로 항상 그렇게 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칭하고 있는가를 주시하라. "여호와여"(1,3절), 우리가 경배해야 할 스스로 있는 자 그리고 자족하시는 자여, 또한 "내가 나의 하나님으로 주장했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며, 나의 왕으로서 나를 보호하시는 나의왕, 나의 하나님이여(2절)."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왕 중의 왕이시고 신 중의 신이시라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치는 않다. 기도를 가장 힘있게 격려하는 원리가 되며 기도의 가장 강력한 또는 효과적인 제기가 되는 것은 우리가 특별한 은혜를 입고 있으며, 특별한 기대를 하고 있는 그를 "우리의" 왕, "우리의" 하나님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제 다음을 살펴보자.


1. 여기에서 다윗이 간구하고 있는 것.

이것은 하나님께 우리자신을 아뢰는 일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격려해 줄 것이다. 우리가 성심으로 그리고 믿음 속에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대를 가질 수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정을 인지하실 것이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진술과 요청을 인지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도 여기에서 이렇게 기도했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실지라도 그는 그의 백성들의 기도에 귀를 열어 놓고 계시며 그것은 그가 들을 수 없으실 정도로 힘겨운 것이 아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지도 모르며 또 들을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대적들은 매우 거만해서 들으려 하지 않고, 우리의 친구들은 매우 멀리 있어서 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록 높은 곳 하늘에 계실지라도 들으실 수 있으며 또 들으려고 하신다.

(2) 그는 그것을 지혜롭게 그리고 동정적으로 받아들이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경시하거나 소홀한 대답으로 처리해 버리시지 않을 것이다. 다윗도 이렇게 간구하고 있다.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다윗의 기도는 말뿐만이 아닌 그의 깊은 묵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묵상이 기도를 위한 가장 훌륭한 준비인 것과 같이 기도는 목상의 가장 훌륭한 결과이다. 묵상과 기도는 병행되어야 한다(19:14). 우리가 우리의 기도를 이처럼 깊이 생각하여야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생각해 주시고 우리 마음에서 온 것을 그의 마음에 받아 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3) 그는 합당한 때에 은혜로우신 화평의 대답을 주실 것이다. 다윗도 이와 같이 간구하고 있다(2절).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그의 기도는 "부르짖음"이었다. 그것은 그의 "부르짖는 목소리"였다. 이것은 격렬한 감정과 끈질긴 요구를 시사하는 표현이다. 이처럼 실질적이고 강렬한 의인의 기도는 매우 유용하며 놀라운 일들을 행하게 된다.


2. 다윗이 여기에서 기대하고 있는 것.

그것은 그가 그의 역할을 실천하고 지켜 나감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로운 용납을 얻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아뢰는 데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올바로 바칠 수 있도록 가르키고 지도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잘못 구하면, 구하더라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여기에서 다음 네 가지를 약속하고 있는데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1) 그는 기도할 것이다. 기도해 유념하고 그것을 일로 삼을 것이다."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다른 사람들은 기도 없이 살아 가나 나는 기도하리이다." 왕좌에 앉은 왕들도(다윗처럼) 하나님의 보좌에 간청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방 신들에게 간구하며 그들로부터 위로를 기대하지만, 나는 주께, 오직 주께만 기도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기도를 들으실 준비가 되셨음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시므로 우리는 기도 속에서 살고 죽으려는 우리의 결심을 견고케 해야 하는 것이다.

(2) 그는 "아침에" 기도할 것이다. 그의 기도하는 소리는 그때 들릴 것이며, 그때 그의 기도가 상달될 것이다. 그것은 그의 편지가 하늘로 가는 시간이 될 것이며 그외의 시간에도 상달될 것이나("아침 저녁 그리고 낮에 나는 기도하겠나이다. 아니,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주께 기도하겠나이다."), 아침에는 분명히 상달될 것이다. 아침 기도는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가 가장 상쾌하고 활기 있으며 평온한 상태에 있을 때, 밤 동안 잠을 푹 자고 원기를 소생했을 때, 그리고 아직 그날의 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지 않을 때가 기도 드리기에 가장 합당한 시간이다. 우리가 당할 낮은 위험과 유혹, 그리고 그것에 대한 우려를 고려해 볼 때, 믿음과 기도로써 신선한 은혜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그때에 기도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3) 그는 한눈을 팔지 않고 의무에 전념할 것이다. 사수가 화살로 과녁을 겨냥하듯, "내가 주께 기도하리이다." 이러한 확고함과 꾸준함을 갖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아뢰야 한다. 또는 우리가 어떤 곳에 있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과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대한 중재자이신 주 예수편에 항상 보내도록 하자. 그러면 그것이 잘못 전달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하나님께 보내져야 한다. 그의 영예와 영광이 우리 모든 기도의 지고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첫 번째 간구는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영예롭게, "하옵시며"가 되도록 하자. 그러면 우리도 내가 영화롭게 하였고 또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는 그리스도 자신에게 주어진 그와 같은 영광스러운 응답을 확실히 받게 될 것이다.

(4) 그는 화평의 응답을 참을성 있게 기다릴 것이다. "내가 바라리이다. 내 기도를 살피고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이다(85:8; 합 2:1). 그리하여 내가 구하는 것을 그가 허락해 주시면 감사히 여길 것이고 거절하시면 참으리이다. 만일 그가 연기하시면 나는 계속해서 기도하고 기다릴 것이며 결코 낙심하지 않겠나이다." 우리는 화살을 쏜 자가 얼마나 그 화살이 과녁 가까이에 꽂혔는가를 알아 보는 것과 같이, 살펴보고 주시해야 한다. 우리는 그 응답을 주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기도의 위로를 크게 상실한다. 베드로와 요한을 끈기있게 주목 한 앉은 뱅이처럼(행 3:4) 그렇게 기도하고 기다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말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것을 고려해 주시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여서 "주여 나를 위해 이것이나 다른 것을 행하옵소서"라고 말하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사 나의 형편을 살피신 후, 주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대로 행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다윗처럼 우리 자신을 그에게 의뢰할 수 있을 것이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4-6절).


1. 우리 마음의 죄를 제거하라.

다윗은 이것으로 그 자신과 다른 모든 기도하는 백성들에게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것과 같이 또한 결백하고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경고하고 있다. 즉 비록 그가 기도를 들어 주실 준비가 되셨더라도 우리가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실 것이다(66:18).


2. 사악한 자들을 대적하라.

이 사실은 또한 그로 하여금 그의 대적들에 대항하여 기도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그들은 사악한 자들이었으므로 당연히 하나님의 대적들이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자들이었다.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그가"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의미를 갖고 있다. "주는 죄악이 주의 무한한 결백과 올바름 그리고 거룩한 뜻에 직접적으로 위배되는 것으로 여겨 그것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형통할지라도,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사악함을 기뻐하신다고 추론해서는 안 된다. 형제들을 미워하여 그들을 버리고서도 "주님께 영광돌릴지어다"라고 말하는 자들처럼, 그를 영화롭게 하는 척하는 자들을 그는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악함이 비록 신앙이라는 가면을 쓸지라도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죄악을 기뻐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시험당할 때는 "내가 하나님께 시험당한다"고 말하지 않도록 하자.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의 장본인이 아니실 뿐만아니라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즉 악은 결코 장려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번성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몬드(Hamnond) 박사는 이것을 우상 숭배를 고집하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거하지 못하도록 한 모세의 율법을 언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

(2) 그의 의로운 다스리심, 어리석은 자들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그로부터 칭찬을 받지 못할 것이고 그와 함께 하도록 용납되지 못할 것이며, 저 위대한 심판의 날에 방면되지도 못할 것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매우 어리석다. 죄는 어리석은 것이며 죄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다. 죄는 어리석은 것이며 하나님이 만드신 어리석음이 아니다(그들은 불쌍히 여겨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만드신 그 어느 것도 미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 자신이 만들어 낸 어리석음이며 그는 그것을 미워하신다. 사악한 백성들은 하나님을 미워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를 미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끝없는 비참과 파멸을 가져다 줄 것이다. 주는 자신이 미워하시는 자들을 멸하신다. 특히 다음 두 가지 종류의 죄인들은 파멸당해야 하는 자로 여기에 지적되어 있다.

[1] 거짓말이나 속임수를 말하는, 그리고 기만적인 우매자들, 이러한 죄인들은"모든 거짓말 하는 자"(계 21:8), 그리고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계 22:15)라고 특별히 강조되어 있다. 이것보다 하나님께 더욱 배반적인 것은 없다. 따라서 이보다 더 진리의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2] 잔인한 자들. "여호와께서는 피흘리기를 즐기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왜냐하면 비인간적인 것은 자비를 즐기시는 자비의 하나님께 결코 덜 배반적이거나 덜 증오스러운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짓말하는 자와 살인하는 자는 어떤 면에서 마귀를 닮은 마귀의 자손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싫어하시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이 두가지 면은 곧 다윗의 대가졌들의 성품이다. 이러한 자들은 지금도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대적들이며 모든 덕과 영예를 완전히 상실한 자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악하면 악할수록 때가 오전 멸망하리라는 것을 더욱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도에 더욱 힘쓰라


이 구절을 노래하고 간두드림에 있어서, 우리는 기도의 의무에 전념하고 스스로 분투해야 하며 또한 기도를 더욱 힘써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구하는 것이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죄에 대한 혐오를 지녀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나타나는 날에 악인들은 파멸하리라는 사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예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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