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장 1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믿음의 세 가지 종류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믿음의 크기가 다르며 종류도 다릅니다. 하지만 반드시 믿음을 지키고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는 것은 공통적인 것임을 강해 설교로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절-19절, 우리 믿음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세례 요한은 사해 동쪽 마카이로스 성의 감옥에서 예수님께 자신의 제자를 보내 '오실 메시야'에 관하여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제자에게 대답을 주시고 보내신 후 세례 요한에 대하여 칭찬하셨습니다. 반면에 믿음없는 세대를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믿음은 다음 중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첫째, 흔들리는 믿음입니까?
파스칼은 "사람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하였지만, 예수님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라고 물으셨습니다.
- 마태복음 11:7,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요한에 대하여, 믿음도 목적도 방향도 없는 흔들리는 갈대 같은 사람이냐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군중에 대하여, 광야로 몰려다님이 흔들리는 갈대 같은 사람이냐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의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이리 저리 떠밀려 다니는 사람들은 갈대와 같습니다. 두 면에서 보면서 우리는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세상이 좋으니, 돈이 좋으니, 명예가 좋으니 하는 기웃 기웃하는 믿음이 아닌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싫은 소리를 했다고 교회를 떠나고 상처 받았다고 떠나며 기분 나쁘다고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모습은, 때마다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믿음에 불과합니다.
둘째, 구경꾼 믿음입니까?
약대털 옷을 입고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마 3:4)을 먹는 들사람 요한이 요단강에 나타난 세례 요한이 모인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자 많은 사람들이 유대 광야와 요단강으로 몰려갔습니다.
- 마태복음 11: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바로 그들을 향해 주님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구경꾼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를 통하여 진정한 회개보다는, 서커스를 구경하는 듯한 마음으로 나아온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구경꾼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경험하고 내 삶을 돌아보기보다는, 흥겨운 음악이나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사업이나 연예를 목적으로 교회에 출석하기도 합니다. 나의 믿음은 설교나 평가하고 교회 구경이나 다른 목적으로 출석하는 구경꾼 믿음은 아닌가 살펴 봅시다.
셋째, 침노하는 믿음입니까?
마지막으로, 주님은 흔들리는 믿음이나 구경꾼 믿음과는 다른 종류의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함께 1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 마태복음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침노'(βιάζω, 비아조)란 "힘써서 싸운다", "밀고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는 신령한 싸움, 영적 싸움(엡 6:11-13), 선한 싸움으로 승리를 해야만 합니다. 또 '침노'란 '힘쓴다', '노력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히 4:11에서 "저 안식에 들어 가기를 힘쓸지니"라고 하신 말씀도 기억해야 할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은 침노하는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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