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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3절-12절, 여덟 가지의 복 - 산상수훈 팔복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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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산상수훈 중 팔복에 관한 강해설교를 진행하였습니다. 세상의 가치와 기준과는 전혀 다른 영적이고 참된 팔복의 내용들을 하나씩 큐티하고 강해설교를 하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각각의 복들과 그에 따른 강해설교 내용들을 모아서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12절, 여덟 가지의 복 산상수훈 중 팔복의 개요 1. 산상수훈 흔히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7장 27절까지의 말씀을 우리는 "산상수훈"이라고 부릅니다. 산상수훈은, 산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신 천국의 본질과 성도의 삶의 원리에 대한 말씀을 뜻합니다. 그 중에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여덟 가지의 복인 "팔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유사한 내용이 소위, 평지설교라고 부르는 누가복음 6장 20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에도 나타납니다. 2. 팔복 산상수훈의 말씀 중 팔복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들 혹은 천국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지켜야 하는 삶의 원리와 특징이 담긴 팔복은, 세상의 원칙과 이론과는 대조적이고 영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원리를 설명하는 말씀이 팔복입니다. 팔복의 여덟 가지 내용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은 팔복 중 첫 번째 복을 "심령이 가난한 자"를 대상으로 선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란,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을 뜻합니다. 따라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 산상수훈 팔복 강해설교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은 팔복 중 두 번째 복을 "애통하는 자"를 대상으로 선포하셨습니다. 누군가를 잃었거나 괴로운 상황을 "애통"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 산상수훈 팔복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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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호수의 언덕에서 선포하신 팔복 중 여섯 번째는 "마음이 청결한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보며 경험하기 위하여,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청결한 마음이 어떤 상태의 마음인지를 큐티하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방법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팔복 강해설교로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개역개정성경) 마음을 깨끗이 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쉬운성경) 들어가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1. "청결하다"의 정의 본문의 핵심이 되는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헬라어 성경에는 "청결하다"라는 의미로 "καθαρός"(카다로스)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유대교에서 정결 예식을 행할 때 사용하는 단어로, 종교적 의식의 정결과 도덕적 상태에서의 정결까지 의미합니다. 2. 자유롭고 구별된 마음 따라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죄로부터 자유로운 마음,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마음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정직하고 사랑스럽고 친절한 마음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순수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고, 우리 삶에서 그분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청결한 마음을 가지려면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청결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이 죄로부터 자유롭고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1. 죄를 회개하는 마음 첫째, 우리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그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죄가 있을 때, 하...

마태복음 5장 7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산상수훈 팔복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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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복을 받은 사람들의 특성을 설명하는 팔복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다섯 번째의 복인 "긍휼히 여기는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큐티하고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 지를 강해설교로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7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7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개역개정성경) 자비로운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입을 것이다. (쉬운성경) 들어가며 산상수훈 중 팔복의 다섯 번째 말씀은 "긍휼한 사람" 혹은 "자비로운 사람"과 관련이 있습니다. 내 것을 먼저 가져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 잘 사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긍휼과 자비가 풍성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본문을 통해, 아무리 각박한 시대라 할지라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긍휼과 자비는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1. "긍휼" 혹은 "자비"의 정의 여러분! "긍휼하다"(ἐλεήμων, 엘레에몬) 혹은 "자비롭다"는 말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비는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동정심과 용서를 베푸는 것을 뜻합니다. 또, 자비는 공정하고 공평한 법 집행인 "정의"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자비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 않도록 면제해 주고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대가 없이 주는 것을 말합니다. 2. 긍휼의 중요성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긍휼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긍휼함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과 아울러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라고 명령하십...

마태복음 5장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 산상수훈 팔복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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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갈릴리 주변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인 팔복들 중에 네 번째는,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리고 목이 마른 사람이 복이 있다고 선포하셨는데, 본문의 내용을 큐티하고 그 내용을 강해설교로 정리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개역개정성경) 의를 위해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쉬운성경) 들어가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팔복 중 네 번째 복을 선포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모인 사람들에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1.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의 의미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씀은, 옳고 공의로운 것에 대한 깊은 열망을 갖는다 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이 공평하고 존중 받는 세상을 갈망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쉽게 생각하기 쉬운 갈증이나 내 욕심을 위한 열망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의 삶의 방식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불의를 보고 변화를 일으키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다른 사람들이 고통 받는 동안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천국 백성들은 변화와 개혁을 위하여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위해 일할 동기를 찾고 나누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방법들을 통하여 이 땅에 천국이 임하도록 애쓰는 사람이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약속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πεινάω, 페이나오) 목마른(διψάω, 딥사오) 사람들에게는 만족함이 복으로 주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

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 산상수훈 팔복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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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하여 주신 팔복의 말씀 중 세 번째는 "온유한 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모두가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고, 자신을 위해 재빠르게 이익을 취해야만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를 온유한 자는 살아가기도 힘들고 성공하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팔복의 세 번째에 대해 큐티하고 강해설교로 정리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개역개정성경)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다. (쉬운성경)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1. 들어가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팔복, 즉 천국의 복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의 세 번째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입니다. 2. 하나님께 복종하는 성품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온유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온유하다"(πραΰ́ς, 프라위스)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팔복의 맥락에서는 '겸손하며 인내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권리나 욕망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을 확신하는 성품 온유는 약함이 아닙니다. 온유는 현관 매트가 되거나 사람들이 당신을 밟고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의 폭풍우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한 내면의 성품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확신하는 것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을 온유한 자 1. 천국을 유업으로 받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에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반드시 물질적 부나 권력을 갖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진정한 기쁨과 만족의 원천인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된다는 ...

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는 - 산상수훈 팔복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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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 주변의 언덕에서 선포하신 산상수훈 중의 하나인 팔복은, 역설적인 복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팔복의 두 번째 선언의 주인공인 "애통하는 자"는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실패한 자와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신 이유를 큐티하고 강해설교로 정리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는 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개역개정성경)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쉬운성경)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1. 들어가며 마태복음 5장 4절에서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종종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의미로 오해되기도 합니다. 애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팔복은 실제로는 더 깊은 종류의 애도와 슬픔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애통"은 죄로 인해 상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애통함을 의미합니다. 죄의 무게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정도를 진정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회개와 변화로 이끄시는 은혜의 깊은 슬픔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축복하시는 애통입니다. 오늘 강해설교에서는 이 애통함의 의미와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애통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시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입니다. 2. 애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마태복음 5장 4절에 나오는 "애도하다"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πενθέω"(펜테오)로, "슬픔, 애통 또는 괴로움을 느끼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의 다른 구절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애도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 단어와 동일합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 산상수훈 팔복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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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을 축복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부와 지위가 축복의 징표로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 축복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물질적인 가난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의 가난, 즉 겸손과 하나님에 대한 의존의 상태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에 기록된 산상수훈 팔복의 첫 번째 복에 대해 큐티하고 강해설교로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 산상수훈 팔복 강해설교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개역개정성경)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쉬운성경) 들어가며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자급자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만하거나 거만하지 않고 겸손하고 통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항상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같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의 충만함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참된 평화와 기쁨을 찾을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자신을 불쌍히 여기거나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팔복의 첫 번째 내용에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한계와 하나님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 입니다. 이 복의 말씀은 자신의 죄와 용서의 필요성이 절실하며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겸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갈망하며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결코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실수하고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깨닫는 즉시 ...

마태복음 28장 11절-20절,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리라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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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장 11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분부는 모든 민족이 예수님을 믿으며 구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주의 약속을 기억하고 강해설교로 정리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1절-20절,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리라 임마누엘의 약속을 주신 예수님 미래와 관련된 가장 확실하고 견고한 약속을 가진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따르는 많은 어려움과 곤경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게 됩니다. 바울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항상 있어야 할 것은 믿음, 사랑과 함께 '소망'이라고 한 것은 우리에게 주님의 위대한 약속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자주 절망하고 좌절하게 되지만, 이 약속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최악의 여건 속에서도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본문은 주께서 주신 위대한 약속과 주의 명령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권세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 고백의 의미는, 예수님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을 포함하여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의 주가 되심을 의미합니다(빌2:9-11).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만물의 모든 무릎으로 예수 그리스도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또, 오직 예수님만을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신 분이 누구인가를 바로 알고, 우리의 본분을 다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분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 그분은 우리에게 "가라"고 분부 하셨습니다. 주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로 가서 제자를 삼아 성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고 준비된 일꾼들을 내어 보내도록 해야만 ...

마태복음 28장 1절-10절, 무덤의 문은 열리고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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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장 1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사람들을 만나 주신 장면입니다. 무덤의 돌문이 기적적으로 열리고, 천사가 주의 부활을 증거하며, 여인들과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음을 강해설교로 정리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절-10절, 무덤의 문은 열리고 놀라운 사건, 주의 부활 오늘 본문은 인류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한 놀라운 사건에 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수많은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불경건한 자들을 비롯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이 말씀을 사실로 받아 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사실이 인류와 세계 역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운 분이시며, 그분의 역사 또한 놀랍습니다.  무덤문이 열림 무덤 문은 짐승이 시체를 해치 못하도록 무덤 입구를 막아 둔 큰 돌이었습니다. 이 큰 돌문이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봉인 되었고, 파수꾼들이 지키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과 관련된 사람들은 아무도 손을 댈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돌문은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특별한 방법으로 열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누구에 의해서도 제한을 받지 않으며, 미미한 영향조차도 받지 않음을 기억하십시오.  천사가 소식을 전함 천사가 무덤을 찾아온 여자들에게 전한 소식은 예수께서 말씀대로 살아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주의 제자들을 통하여 인간이 주님을 믿기에 얼마나 더디고 힘든가를 보게 됩니다. 부활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거듭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을 만나러 무덤으로 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보지 못하여도 믿는 자가 되도록 힘씁시다.   부활의 주님을 만남 주를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같이 믿...

마태복음 27장 57-66절, 예수님의 무덤과 관련된 사람들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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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 57절부터 66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의 일들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믿음을 고백하며 예수님의 시신을 새 무덤에 장사 지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파수꾼을 세워서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게 하였음을 강해설교로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7-66절, 예수님의 무덤과 관련된 사람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 세 종류의 사람들이 본문에 등장합니다. 돈에 이끌려 예수님의 무덤을 무의미하게 지킨 사람들과, 용기 있는 신앙의 고백을 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 그리고 끝까지 고집을 꺽지 않았던 유대 지도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 각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였습니까? 무덤을 지킨 파수꾼들 파수꾼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고 있는 시간에도 주위를 경계하여 공동체를 지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건물이나 재산을 보호하고 인명을 보호하는 것이 파수꾼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위급한 사태가 발생하면 즉시로 비상 조치를 취하여 안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또, 언제 생길지 모르는 불상사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하여 파수꾼을 세웁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는 매우 특이한 파수꾼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지키는 무덤의 파수꾼이며, 그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선지자 사무엘의 고향인 라마다임 소빔 사람이었습니다(삼상1:1). 게다가 그는 산헤드린의 존경 받는 회원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이면서도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용기를 얻어 빌라도에게 시체를 달라고 요청하였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자기가 판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 지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밝힐 용기가 필요합니다. 주의 뜻을 좇으려면, 세상적인 것들의 희생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아픔이 없이는 그분을 따라갈 수가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유대 지도자들  유대 ...

마태복음 27장 45절-56절,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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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처절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5절부터 56절까지의 말씀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스러워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고 강해설교로 정리하고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5절-56절,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 십자가의 고통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셨습니다. 이 사건은 매우 고통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분은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혀 계셨고, 그 동안 육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 마태복음 27장 45-56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의 한 부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첫째, 죄에 대한 대가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은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지만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로 인해 죽어야만 했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분이 처절한 고통 가운데 죽으셨고, 우리는 살았습니다. 둘째, 십자가의 소망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맞이하신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은 우리에게 큰 소망을 줍니다. 예수님은 죽으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의 죽으심을 통하여,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 영원한 사랑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은 우리에게 영원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까지 버려가며 우리를 위해 고통을 당하시며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고통 속에 버림을 받으셨으며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 뒤를 따르는 제자로 살아갑시다 그러므로 성도 ...

마태복음 27장 33절-44절, 저가 남은 구원하고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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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 33절부터 44절까지의 말씀은, 모든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지만, 자신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그 사랑 덕분에 우리가 구원 받았음을 기억하고 강해설교로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33절-44절, 저가 남은 구원하고 이기적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여 자기만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이웃과 사회의 유익을 위해서 봉사하는 자세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기적인 욕심에 매달려서 전전긍긍하는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올바르고 합당한 삶의 자세를 지켜 나가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고 첫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  주님의 십자가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이요(요13:31), 죄에 대해 단번에 죽으심이며, 그분을 믿는 우리의 죄가 십자가에 못박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거부하셨다고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죄의 멍에를 벗어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것이었고,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형제와 이웃을 위해 자기를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예수의 머리 위에 있는 죄 패.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의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 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진정한 유대인의 왕이시오, 온 세계의 왕이시며, 만민의 구원자이십니다. 땅에 있는 존재들은 물론이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야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도록 힘써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셋째, 조롱하고 비웃는 사람들.  골고다 언덕 위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마태복음 27장 24절-26절, 총독 빌라도가 실패한 이유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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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 24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의 사형과 관련하여 가룟 유다보다 더 자주 언급되는 빌라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총독 빌라도에게는 총독으로서의 권한이 있었지만, 그는 결국 실패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의 실패의 이유에 대해 강해설교로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24절-26절, 총독 빌라도가 실패한 이유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외부 조건이나 풍부한 경험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빌라도가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총독 빌라도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성공하고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빌라도의 실패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과 이를 인생의 성공을 위해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사람에 대한 두려움. 빌라도가 실패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사람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타협하고 정의를 굽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로서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의를 따르고 세상의 시험이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기준으로 평가되며, 하나님은 그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위선이나 형식주의도 하나님께서는 용납하지 않으심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사람을 두려워 하지 맙시다. 둘째, 정치적 계산을 따르는 것. 빌라도는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판단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치적 계산을 따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악을 돕거나 불의에 협력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미워하시며 불의를 용납하는 자를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적인 전술과 전략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적인 계산을 버리고, 신앙과 신념을 따라야 합니다. 셋째,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함. 빌라도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중요한 총독의 직책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계산과 사람들에 대...

마태복음 27장 11절-26절, 총독 빌라도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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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재판한 빌라도는 로마 총독으로서, 높은 신분과 책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 앞에서 비겁했으며, 공의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안위만을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에 대해 묵상하고 강해설교로 정리하고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11절-26절, 총독 빌라도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을 재판하여 사형에 내리는 역사적인 오명을 남긴 인물입니다. 그가 이러한 언행을 하게 된 것은, 그가 많은 인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나약한 성격 때문에 불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세속적인 이해관계와 기회주의 때문에 자기 자리의 안전을 위해 책임을 회피하였습니다.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께 내린 판결에 대해 자기가 본 대로 판단할 용기가 없었으며, 그로 인해 예수님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빌라도 총독의 인격적 결함은 예수님의 죄값 속량을 위한 고통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실체와 본질을 알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그가 왕인지 아닌지에 대해 물었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본질적인 존재와 신성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빌라도의 판결은 불공평하고 불의한 것이었지만, 이것마저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고 세상의 죄를 속량함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빌라도의 판결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함 받고,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자기 선택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유대인의 요구에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로 결정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1-10절, 가룟 유다의 비극적인 마지막, 스승을 팔고 자살하다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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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가룟 유다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고 돈을 챙긴 죄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받지 못한 제자였습니다. 이 강해설교를 통하여, 결국 이용만 당하며 비극적인 자살을 하게 된 그의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가룟 유다의 비극적인 마지막, 스승을 팔고 자살하다 첫째, 스스로 뉘우친 유다 예수님이 심문 받은 후,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뒤늦게 후회하였으며 자신의 후회를 회개로까지 이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자신의 죄악은 이루어진 것이기에, 이제서야 후회해봐야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뉘우침은 결국 시간과 상황을 되돌릴 수 없는 후회로 남게 되고 말았습니다. 둘째, 이용 당한 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모든 것을 되돌리자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탐욕과 분노로 가득 찬 종교 지도자들은 그를 이용하기 위해 그의 제안을 무시하며 거절하였습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자신이 이용만 당한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고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자살하는 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스승을 팔고 받은 동전들을 성소에 던졌습니다. 왜냐하면, 종교 지도자들이 받아 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죄는 이미 이루어졌고, 자신을 괴롭히는 비참한 삶을 살다가 자살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죄악은 인간의 역사에 남았고, 자신의 삶도 자살로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가룟 유다의 이야기를 통해 죄악의 결과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비참한 삶을 살다가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그의 비극은,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삶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스승을 팔고 돈을 챙긴 죄로 인해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고 만 가룟 유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마태복음 26장 67절-75절, 베드로의 부인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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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베드로 역시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6장 67절부터 75절의 말씀에서는, 연약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베드로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대한 강해설교를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6장 67절-75절, 베드로의 부인 스승을 부인한 베드로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마태복음 26장 67절부터 75절에서 "베드로의 부인"에 대해 묵상할 것입니다. 이 성경 구절은 예수님이 첫 번째 재판에서 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계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사건입니다. 베드로는 야고보와 요한과 더불어,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나서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위기의 베드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를 특별히 아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서 예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는 그 현장에 있던 베드로에게 세 명의 사람들이 "예수와 함께 있었다"라고 고발합니다. 위기감을 느낀 베드로는 즉시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기에 이릅니다. 본문을 통한 교훈 그토록 호언장담을 했던 베드로가 힘없이 무너지고 부인한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첫째, 모두가 죄에게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였고 예수님의 최측근입니다. 모두가 주를 부인하여도 자신은 결코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언제든지 범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아무리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항상 죄를 경계합시다...

마태복음 26장 57절-68절, 불법적인 재판을 받으신 예수님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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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에서 붙잡히신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법정으로 끌려 가셨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6장 57절부터 68절까지에 기록된 이 재판은 불법적인 재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곳에서 죄인 취급을 받으셨으나, 그는 완전한 의인이자 메시아이십니다. 마태복음 26장 57절-68절, 불법적인 재판을 받으신 예수님 재판의 자리로 끌려가신 예수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치 죄인을 잡듯이 예수님을 체포한 사람들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죄인 취급을 당하며 불법적인 재판의 자리로 끌려 가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세상의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불법적인 자리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모든 불법도 감내하셨습니다. 거짓 고소를 당하신 예수님 불법 재판의 자리에서,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은 예수님을 처형하기 위하여 각종 거짓 증거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거짓 증거로도 예수님의 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의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법적인 재판에서 불법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예수님을 고소하였지만,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담당하시고 참으셨습니다.   대답하지 않으신 예수님 산헤드린 공의회는 최선을 다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들은 거짓 증거를 찾아 예수님을 심문을 하였지만, 예수님은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죄하셨기 때문에 변명하거나 해명할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신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으심으로써 자신의 무죄와 사명을 모두에게 드러내셨습니다. 모욕 당하신 예수님 모두가 예수님을 심문했지만, 예수님에게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며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예수님께 호통을 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죄인처럼 끌고가서 재판하고서 예수님에게 죄를 찾지 못했지만 억지로 죄를 만들어 사형 판결을 내리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마태복음 26장 50절-56절, 친구여 무엇을 하려고 왔는가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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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50절부터 56절까지의 말씀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을 가룟 유다가 잡으려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묵묵히 제자에게 배반 당하시며 붙잡히셨습니다. 그러나 호언장담하던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떠나 도망가 버렸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0절-56절, 친구여 무엇을 하려고 왔는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는 그렇게도 호기롭게 큰소리를 치던 제자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모두 도망가 버렸습니다. 우리 주님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제자들 중에는 주께서 무기력하게 붙잡히시는 모습을 보고서 실망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능력하셔서 붙잡히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께서 가룟 유다에게 "친구여 무엇을 하려고 왔는가"라고 물으신 것은, 예수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었기 때문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친구여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배반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가룟 유다가, 회개하지 않고 자신을 잡기 위해 온 것을 보시고 그를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6: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또,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에게 십자가의 길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겸손히 따라가는 사람은,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묵묵히 따라갈 뿐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을 잡으러 온 가룟 유다와 군중들을 물리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을 멸망시킬 능력도 있으시며, 만물을 완전히 뒤집으실 권능도 있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

마태복음 26장 36절-46절, 기도의 능력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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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는 우리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6장 36~46절에서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마태복음 26장 36절-46절, 기도의 능력 고난을 당할 때 기도하세요 예수님은 죽을 만큼 괴로운 순간과 큰 고난을 당하셨을 때 기도하시며 하나님을 의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을 때 혼자 고민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만 합니다. 고민과 슬픔 중에도 기도로 하나님께 나의 모든 고난의 제목들을 가져가야 합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늘에서 주시는 평화와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기도하기 최후의 만찬 후, 예수님은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순종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적인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생각과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함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우리 자신의 계획과 목적보다 크다는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처럼 순종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순간에 예수님처럼 순종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서 일하시고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유혹을 이기기 위한 기도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마 26:41)고 권면하셨습니다. 유혹은 이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가 매일 매 순간마다 경험하게 되는 영적 싸움입니다.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마귀의 계략을 물리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때가 가까웠으니 기도하라 성경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6장 31절-35절,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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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신을 예언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임을 말씀하셨고,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1절부터 35절까지의 말씀은, 우리의 연약함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6장 31절-35절,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자신의 결단을 예수님께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의 마음을 읽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모두 다 나를 부인하리라"고 슬픔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 나를 버리리라. 2천년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간 것과 같이, 오늘 이 시대에도 예수님을 버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서 죄와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 성도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둘째,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리라.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바와 같이,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강력하게 자신의 주장을 예수님께 하였고, 또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는 그럴 자신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나도 부족한 존재입니다. 항상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허무한 결단 베드로는 끝까지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첫째,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가 한 이 고백은 정말 중요한 고백입니다. 비록 베드로는 실패했지만, 우리는 그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어느 때든지 어느 장소이든지 주를 버리지 않기 위하여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분에 따라 주를 따르거나 주를 버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며, 언제든지 한결같은 자세로 예수님을 따라야만 합니다. 둘째, 주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