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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장 1절-10절, 무덤의 문은 열리고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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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장 1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사람들을 만나 주신 장면입니다. 무덤의 돌문이 기적적으로 열리고, 천사가 주의 부활을 증거하며, 여인들과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음을 강해설교로 정리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절-10절, 무덤의 문은 열리고 놀라운 사건, 주의 부활 오늘 본문은 인류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한 놀라운 사건에 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수많은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불경건한 자들을 비롯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이 말씀을 사실로 받아 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사실이 인류와 세계 역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운 분이시며, 그분의 역사 또한 놀랍습니다.  무덤문이 열림 무덤 문은 짐승이 시체를 해치 못하도록 무덤 입구를 막아 둔 큰 돌이었습니다. 이 큰 돌문이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봉인 되었고, 파수꾼들이 지키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과 관련된 사람들은 아무도 손을 댈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돌문은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특별한 방법으로 열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누구에 의해서도 제한을 받지 않으며, 미미한 영향조차도 받지 않음을 기억하십시오.  천사가 소식을 전함 천사가 무덤을 찾아온 여자들에게 전한 소식은 예수께서 말씀대로 살아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주의 제자들을 통하여 인간이 주님을 믿기에 얼마나 더디고 힘든가를 보게 됩니다. 부활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거듭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을 만나러 무덤으로 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보지 못하여도 믿는 자가 되도록 힘씁시다.   부활의 주님을 만남 주를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같이 믿...

마태복음 27장 57-66절, 예수님의 무덤과 관련된 사람들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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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 57절부터 66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의 일들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믿음을 고백하며 예수님의 시신을 새 무덤에 장사 지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파수꾼을 세워서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게 하였음을 강해설교로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7-66절, 예수님의 무덤과 관련된 사람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 세 종류의 사람들이 본문에 등장합니다. 돈에 이끌려 예수님의 무덤을 무의미하게 지킨 사람들과, 용기 있는 신앙의 고백을 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 그리고 끝까지 고집을 꺽지 않았던 유대 지도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 각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였습니까? 무덤을 지킨 파수꾼들 파수꾼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고 있는 시간에도 주위를 경계하여 공동체를 지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건물이나 재산을 보호하고 인명을 보호하는 것이 파수꾼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위급한 사태가 발생하면 즉시로 비상 조치를 취하여 안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또, 언제 생길지 모르는 불상사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하여 파수꾼을 세웁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는 매우 특이한 파수꾼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지키는 무덤의 파수꾼이며, 그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선지자 사무엘의 고향인 라마다임 소빔 사람이었습니다(삼상1:1). 게다가 그는 산헤드린의 존경 받는 회원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이면서도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용기를 얻어 빌라도에게 시체를 달라고 요청하였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자기가 판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 지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밝힐 용기가 필요합니다. 주의 뜻을 좇으려면, 세상적인 것들의 희생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아픔이 없이는 그분을 따라갈 수가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유대 지도자들  유대 ...

마태복음 27장 45절-56절,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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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처절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5절부터 56절까지의 말씀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스러워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고 강해설교로 정리하고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5절-56절,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 십자가의 고통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셨습니다. 이 사건은 매우 고통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분은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혀 계셨고, 그 동안 육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 마태복음 27장 45-56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의 한 부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첫째, 죄에 대한 대가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은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지만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로 인해 죽어야만 했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분이 처절한 고통 가운데 죽으셨고, 우리는 살았습니다. 둘째, 십자가의 소망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맞이하신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은 우리에게 큰 소망을 줍니다. 예수님은 죽으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의 죽으심을 통하여,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 영원한 사랑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은 우리에게 영원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까지 버려가며 우리를 위해 고통을 당하시며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고통 속에 버림을 받으셨으며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 뒤를 따르는 제자로 살아갑시다 그러므로 성도 ...

마태복음 27장 33절-44절, 저가 남은 구원하고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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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 33절부터 44절까지의 말씀은, 모든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지만, 자신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그 사랑 덕분에 우리가 구원 받았음을 기억하고 강해설교로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33절-44절, 저가 남은 구원하고 이기적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여 자기만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이웃과 사회의 유익을 위해서 봉사하는 자세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기적인 욕심에 매달려서 전전긍긍하는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올바르고 합당한 삶의 자세를 지켜 나가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고 첫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  주님의 십자가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이요(요13:31), 죄에 대해 단번에 죽으심이며, 그분을 믿는 우리의 죄가 십자가에 못박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거부하셨다고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죄의 멍에를 벗어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것이었고,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형제와 이웃을 위해 자기를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예수의 머리 위에 있는 죄 패.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의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 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진정한 유대인의 왕이시오, 온 세계의 왕이시며, 만민의 구원자이십니다. 땅에 있는 존재들은 물론이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야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도록 힘써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셋째, 조롱하고 비웃는 사람들.  골고다 언덕 위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마태복음 27장 24절-26절, 총독 빌라도가 실패한 이유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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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 24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의 사형과 관련하여 가룟 유다보다 더 자주 언급되는 빌라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총독 빌라도에게는 총독으로서의 권한이 있었지만, 그는 결국 실패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의 실패의 이유에 대해 강해설교로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24절-26절, 총독 빌라도가 실패한 이유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외부 조건이나 풍부한 경험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빌라도가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총독 빌라도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성공하고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빌라도의 실패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과 이를 인생의 성공을 위해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사람에 대한 두려움. 빌라도가 실패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사람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타협하고 정의를 굽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로서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의를 따르고 세상의 시험이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기준으로 평가되며, 하나님은 그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위선이나 형식주의도 하나님께서는 용납하지 않으심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사람을 두려워 하지 맙시다. 둘째, 정치적 계산을 따르는 것. 빌라도는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판단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치적 계산을 따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악을 돕거나 불의에 협력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미워하시며 불의를 용납하는 자를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적인 전술과 전략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적인 계산을 버리고, 신앙과 신념을 따라야 합니다. 셋째,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함. 빌라도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중요한 총독의 직책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계산과 사람들에 대...

마태복음 27장 11절-26절, 총독 빌라도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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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재판한 빌라도는 로마 총독으로서, 높은 신분과 책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 앞에서 비겁했으며, 공의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안위만을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에 대해 묵상하고 강해설교로 정리하고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11절-26절, 총독 빌라도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을 재판하여 사형에 내리는 역사적인 오명을 남긴 인물입니다. 그가 이러한 언행을 하게 된 것은, 그가 많은 인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나약한 성격 때문에 불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세속적인 이해관계와 기회주의 때문에 자기 자리의 안전을 위해 책임을 회피하였습니다.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께 내린 판결에 대해 자기가 본 대로 판단할 용기가 없었으며, 그로 인해 예수님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빌라도 총독의 인격적 결함은 예수님의 죄값 속량을 위한 고통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실체와 본질을 알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그가 왕인지 아닌지에 대해 물었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본질적인 존재와 신성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빌라도의 판결은 불공평하고 불의한 것이었지만, 이것마저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고 세상의 죄를 속량함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빌라도의 판결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함 받고,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자기 선택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유대인의 요구에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로 결정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1-10절, 가룟 유다의 비극적인 마지막, 스승을 팔고 자살하다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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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가룟 유다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고 돈을 챙긴 죄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받지 못한 제자였습니다. 이 강해설교를 통하여, 결국 이용만 당하며 비극적인 자살을 하게 된 그의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가룟 유다의 비극적인 마지막, 스승을 팔고 자살하다 첫째, 스스로 뉘우친 유다 예수님이 심문 받은 후,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뒤늦게 후회하였으며 자신의 후회를 회개로까지 이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자신의 죄악은 이루어진 것이기에, 이제서야 후회해봐야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뉘우침은 결국 시간과 상황을 되돌릴 수 없는 후회로 남게 되고 말았습니다. 둘째, 이용 당한 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모든 것을 되돌리자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탐욕과 분노로 가득 찬 종교 지도자들은 그를 이용하기 위해 그의 제안을 무시하며 거절하였습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자신이 이용만 당한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고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자살하는 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스승을 팔고 받은 동전들을 성소에 던졌습니다. 왜냐하면, 종교 지도자들이 받아 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죄는 이미 이루어졌고, 자신을 괴롭히는 비참한 삶을 살다가 자살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죄악은 인간의 역사에 남았고, 자신의 삶도 자살로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가룟 유다의 이야기를 통해 죄악의 결과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비참한 삶을 살다가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그의 비극은,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삶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스승을 팔고 돈을 챙긴 죄로 인해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고 만 가룟 유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마태복음 26장 67절-75절, 베드로의 부인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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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베드로 역시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6장 67절부터 75절의 말씀에서는, 연약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베드로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대한 강해설교를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6장 67절-75절, 베드로의 부인 스승을 부인한 베드로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마태복음 26장 67절부터 75절에서 "베드로의 부인"에 대해 묵상할 것입니다. 이 성경 구절은 예수님이 첫 번째 재판에서 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계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사건입니다. 베드로는 야고보와 요한과 더불어,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나서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위기의 베드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를 특별히 아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서 예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는 그 현장에 있던 베드로에게 세 명의 사람들이 "예수와 함께 있었다"라고 고발합니다. 위기감을 느낀 베드로는 즉시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기에 이릅니다. 본문을 통한 교훈 그토록 호언장담을 했던 베드로가 힘없이 무너지고 부인한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첫째, 모두가 죄에게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였고 예수님의 최측근입니다. 모두가 주를 부인하여도 자신은 결코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언제든지 범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아무리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항상 죄를 경계합시다...

마태복음 26장 57절-68절, 불법적인 재판을 받으신 예수님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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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에서 붙잡히신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법정으로 끌려 가셨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6장 57절부터 68절까지에 기록된 이 재판은 불법적인 재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곳에서 죄인 취급을 받으셨으나, 그는 완전한 의인이자 메시아이십니다. 마태복음 26장 57절-68절, 불법적인 재판을 받으신 예수님 재판의 자리로 끌려가신 예수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치 죄인을 잡듯이 예수님을 체포한 사람들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죄인 취급을 당하며 불법적인 재판의 자리로 끌려 가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세상의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불법적인 자리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모든 불법도 감내하셨습니다. 거짓 고소를 당하신 예수님 불법 재판의 자리에서,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은 예수님을 처형하기 위하여 각종 거짓 증거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거짓 증거로도 예수님의 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의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법적인 재판에서 불법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예수님을 고소하였지만,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담당하시고 참으셨습니다.   대답하지 않으신 예수님 산헤드린 공의회는 최선을 다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들은 거짓 증거를 찾아 예수님을 심문을 하였지만, 예수님은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죄하셨기 때문에 변명하거나 해명할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신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으심으로써 자신의 무죄와 사명을 모두에게 드러내셨습니다. 모욕 당하신 예수님 모두가 예수님을 심문했지만, 예수님에게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며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예수님께 호통을 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죄인처럼 끌고가서 재판하고서 예수님에게 죄를 찾지 못했지만 억지로 죄를 만들어 사형 판결을 내리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마태복음 26장 50절-56절, 친구여 무엇을 하려고 왔는가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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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50절부터 56절까지의 말씀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을 가룟 유다가 잡으려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묵묵히 제자에게 배반 당하시며 붙잡히셨습니다. 그러나 호언장담하던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떠나 도망가 버렸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0절-56절, 친구여 무엇을 하려고 왔는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는 그렇게도 호기롭게 큰소리를 치던 제자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모두 도망가 버렸습니다. 우리 주님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제자들 중에는 주께서 무기력하게 붙잡히시는 모습을 보고서 실망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능력하셔서 붙잡히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께서 가룟 유다에게 "친구여 무엇을 하려고 왔는가"라고 물으신 것은, 예수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었기 때문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친구여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배반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가룟 유다가, 회개하지 않고 자신을 잡기 위해 온 것을 보시고 그를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6: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또,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에게 십자가의 길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겸손히 따라가는 사람은,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묵묵히 따라갈 뿐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을 잡으러 온 가룟 유다와 군중들을 물리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을 멸망시킬 능력도 있으시며, 만물을 완전히 뒤집으실 권능도 있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

마태복음 26장 36절-46절, 기도의 능력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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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는 우리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6장 36~46절에서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마태복음 26장 36절-46절, 기도의 능력 고난을 당할 때 기도하세요 예수님은 죽을 만큼 괴로운 순간과 큰 고난을 당하셨을 때 기도하시며 하나님을 의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을 때 혼자 고민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만 합니다. 고민과 슬픔 중에도 기도로 하나님께 나의 모든 고난의 제목들을 가져가야 합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늘에서 주시는 평화와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기도하기 최후의 만찬 후, 예수님은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순종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적인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생각과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함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우리 자신의 계획과 목적보다 크다는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처럼 순종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순간에 예수님처럼 순종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서 일하시고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유혹을 이기기 위한 기도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마 26:41)고 권면하셨습니다. 유혹은 이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가 매일 매 순간마다 경험하게 되는 영적 싸움입니다.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마귀의 계략을 물리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때가 가까웠으니 기도하라 성경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6장 31절-35절,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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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신을 예언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임을 말씀하셨고,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1절부터 35절까지의 말씀은, 우리의 연약함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6장 31절-35절,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자신의 결단을 예수님께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의 마음을 읽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모두 다 나를 부인하리라"고 슬픔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 나를 버리리라. 2천년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간 것과 같이, 오늘 이 시대에도 예수님을 버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서 죄와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 성도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둘째,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리라.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바와 같이,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강력하게 자신의 주장을 예수님께 하였고, 또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는 그럴 자신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나도 부족한 존재입니다. 항상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허무한 결단 베드로는 끝까지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첫째,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가 한 이 고백은 정말 중요한 고백입니다. 비록 베드로는 실패했지만, 우리는 그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어느 때든지 어느 장소이든지 주를 버리지 않기 위하여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분에 따라 주를 따르거나 주를 버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며, 언제든지 한결같은 자세로 예수님을 따라야만 합니다. 둘째, 주와 함께...

마태복음 26장 20절-25절, 가룟 유다의 배반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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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를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됩니다. 첫째는 배신에 대한 두려움이며, 또다른 하나는 시작을 잘했어도 끝이 얼마든지 나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가룟 유다가 걸어간 불행한 길을 따르는 일이 없도록 항상 나 자신을 살피며 조심해야만 합니다.  첫째, 주와 한 식탁에 앉은 자.  가룟 유다는 주를 반대하는 무리들 중에 섞여 있던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그림자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으며,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한 식탁에 앉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했으며, 주의 말씀을 함께 들었고,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주의 제자라라고 인정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의 말씀을 깨닫고, 수많은 은혜를 체험하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언제든지 주를 배신 수 있는 연약한 사람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교만은 언제든지 주를 배신할 수 있는 모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거짓으로 자기를 꾸민 자. 배반하는 사람들의 여러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그 사람이 배반하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전혀 배반자처럼 보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자기를 꾸민다는 점입니다. 가룟 유다가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아니지요?"라고 예수님께 물었으며, 예수님께 입을 맞추며 "랍비여"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적지 않는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가장 열심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가장 경건한 것처럼 자신을 꾸미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을 평가할 때에 주의 깊게 살피는 신중함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행한 대로 받는 자.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은 자기가 심은대로 거두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법칙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가 없습니다. ...

마태복음 26장 6절-13절, 진정한 헌신의 향기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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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해 옥합을 깨뜨린 사건은, 오늘날도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주장하는 주석가들이 있습니다. 각자의 보는 시각이나 관점에 따라서 이것은 일종의 허비로 평가될 수도 있고, 또 고귀한 헌신으로 평가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마리아가 했던 그 행위 자체보다도 그녀가 그러한 행동을 했던 동기와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6장 6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은, 그녀가 가졌던 신앙의 향기를 통해 우리에게 두 가지의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 주를 사랑하는 자들의 향기.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해 옥합을 깨뜨리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그녀가 예수님을 향해 가졌던 큰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 자기 생명까지도 기꺼이 포기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리아의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평가하기에 앞서, 그녀가 가졌던 주님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본받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랑은 손익의 계산을 하지 않으며, 온전한 헌신을 가능할 수 있게 합니다. 둘째, 주께 헌신하는 자들의 향기. 우리는 마리아의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을 위한 헌신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시간과 물질과 노력 등 주를 위해서 사용되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아까워하지 않는 마음이 주를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인색한 마음이나 마지못해서 억지로 드리는 사람들의 봉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진정한 헌신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위한 헌신들 가운데서 가치 있고 귀한 헌신은 자기를 나타내는 헌신이 아니라 말없이 숨어서 드리는 헌신입니다. 자기를 나타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영광을 취하는 오류에 빠지게 되기가 쉽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일일지라도 최선을 다하여 기쁨으로 섬길 때 예수님께서 인정해 주신다는 점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46절, 양과 염소의 구분 - 마태복음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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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이신 예수님은, 성전을 나오셔서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와 주님의 재림의 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 심판의 때에 양과 염소를 분류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46절, 양과 염소의 구분 사람이 어떻게 살았든지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한다면, 의롭고 경건하게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권모와 술수는 최고의 가치, 최고의 지혜로 인정되고 말 것입니다. 생명을 부여 받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든지 상관없이 인생에 대해 평가하고 심판하실 분이 있음을 명심하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한 심판이며, 그분 앞에서는 자기를 위해 변호해 줄 사람도 없음을 안다면 인생의 순간 순간을 결코 소홀히 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심판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첫째, 최후의 심판.  주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행하시는 심판은 최후의 심판입니다(요5:22). 또한 그분의 심판에는 세상의 법정에서와 같이 오판이라는게 없습니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처럼 주님의 심판은 정확무오합니다. 아무도 그분 앞에서는 눈가림을 하지 못합니다. 그분은 뇌물을 받지도 아니하시며, 탄원이나 간구도 그 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날이 이르기 전에 준비를 잘 해야 하며, 그것이 훌륭한 인생을 사는 비결입니다.  둘째, 축복 받은 사람들.  주님은 먼저 축복 받은 사람들의 수고에 대해 칭찬하셨습니다. 그들이 행한 모든 선과 의는 다 주님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라는 칭찬과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힘써서 선과 의를 행하며 살아갑시다. 우리에게 주신 소유로 약한 자들을 돕도록 힘써 나갑시다. 이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복된 삶이 됩니다.  셋째, 저주 받은 사람들.  지금...

마태복음 26장 1절-5절, 모반하는 무리들 - 마태복음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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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대중들의 인기와 지지를 받는 예수님을 시기하기에 이릅니다. 게다가 자신들을 계속해서 꾸짖는 예수님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6장 1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흉계를 통해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마태복음 26장 1절-5절, 모반하는 무리들 예전부터 국가에 대한 모반은 가장 무서운 죄로 여겼으며, 엄중한 형벌이 따랐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삼족이 멸문지화를 면할 수 없을 만큼이나 끔찍한 죄로 여겨졌던 것이 바로 국가를 전복 하려는 모반 혹은 반역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6장 1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에서, 국가 반역죄보다 더 두려운 "하나님께 모반하는 무리"들을 보게 됩니다. 국가에 대한 반역도 중죄를 받게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러한 죄에 가담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반역 모의에 가담하다 하나님께 반역하는 일에 참여한 사람들은 당시 유대의 종교적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를 대표할만한 경건주의자들이며 존경을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경건한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도리어 하나님을 반역 하는 일에 가담하고 말았습니다. 성도나 특별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항상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행한 반역죄에 가담하지 않게 됩니다(엡 5:17). 주의 뜻을 모르면 어리석게 행할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고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되 흉계를 써서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들 자신도 예수님께는 아무런 죄나 허물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무죄한 사람에게 죄를 덮어 씌우려는 행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결코 해서는 ...

마태복음 25장 24절-30절, 선택에 실패한 사람 - 마태복음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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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 24절-30절은, 달란트의 비유 가운데 선택에 실패한 종, 한 달란트 받은 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종은 다른 두 종과 달리 선택에 실패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종을 통한 교훈을 묵상하고 강해설교로 정리하여 나눕니다.  마태복음 25장 24절-30절, 선택에 실패한 사람 인생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살아가기 원하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실패한 사람들에게도 조언을 구해야 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는 것과 같이, 실패한 사람들도 우리에게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귀중한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해 결국 실패한 삶을 살게 된 한 사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실패는 세상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실 때의 실패를 말하며, 결국 영원한 패배를 의미합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하다가 실패하였습니까?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 두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총이나 능력이 주셨다면, 우리는 그것은 결코 묻어두거나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이나 능력은 어떤 목적을 위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과 능력 혹은 달란트는 여러 면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은혜나 사명을 맡은 사람은 부끄럽지 않도록 그 사명에 대한 헌신을 굳건히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이 세상의 일에는 온 힘을 다하지만 주님의 명령과 은총에 대한 열정이나 관심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신앙의 영역에서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세상적인 실수는 용서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위한 일들에 대한 무관심이나 게으름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합니다. 주인 앞에서 변명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인이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과 한 달란트 받은 종을 구별하고 차이점을 두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 앞에...

마태복음 25장 14절-23절, 착하고 충성된 종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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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처녀의 비유에 이어서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특히, 달란트 비유의 말씀 중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은 주인의 달란트를 맡아서 충실하였으며 그 결과 칭찬과 상급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강해설교를 정리하고 요약하여 나눕니다.  마태복음 25장 14절-23절, 착하고 충성된 종 같은 시간과 같은 노력을 들여서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잘해서 칭찬을 받는 것이 아름답고 유익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인생에서 단 한 부분이라도 허비하지 않으며 살아가려면,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5장 14절-23절을 바로 알고 우리의 본분에 충실하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본문에 관한 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비록 힘쓰고 애써 인생을 경영할지라도 잘 살게 되지 못하며, 인생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목적지에 성실하게 도착하기 위하여 중요한 모델이 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인이 준 달란트를 맡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각자의 사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물론 그 분량에는 차이가 있지만 중요성에 있어서는 모두가 동일합니다. 마치 오늘 본문의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 혹은 한 달란트를 받은 것은 동일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슨 은사를 가졌든지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이 가진 것보다 우월한 것도 열등한 것도 아님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내가 받은 재능과 사명은 오직 감사의 제목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명을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교만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만 합니다. 자기 직무에 충실하였습니다. 자기 직무에 충실한 사람이 착하고 충성된 종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맡았고 아는 것이 많다고 할지라도 자기 직무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결코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대로 그분의 뜻을 쫓아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달란트의 주인은 주님이...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주의 재림에 관한 시간의 비밀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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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 이어서 주의 재림에 관해 교훈을 주셨습니다. 이 교훈의 핵심은 "그 때가 언제인가"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입니다. 이 두 가지의 핵심은 열 처녀의 비유에 나타나 있으며, 강해 설교로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주의 재림에 관한 시간의 비밀 비밀이란, 사실을 전제로 하여 아직 나타나거나 알려지지 않는 것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인간이 풀 수 없고 밝혀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별히, 종말의 시간과 주님의 재림에 관한 비밀은 아들이신 주님 자신도 모르는 비밀입니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5장 1절-13절의 말씀은 열 처녀의 비유로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들 열 처녀가 등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여기서 "열"이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배경의 초점은 결혼 잔치를 치루기 위해서 신랑이 오기로 되어 있는 신부의 집 주변입니다. 이들은 마치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성도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유사해 보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주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바울이 증거했듯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그 곳이 우리가 들어가서 거하게 될 영원한 집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 위에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들을 그 나라를 위한 준비로 써야지 개인적인 출세나 성공을 위해서 쓰는 것은 미련한 행동에 불과합니다.  준비한 처녀들과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 신랑을 기다리는 열 명의 처녀들 중에는 미리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이 있었고, 기름을 전혀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참여한 처녀들은 기름을 미리 준비...

마태복음 24장 36-51절,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 마태복음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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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4장의 36-51절에서 예수님은 재림의 사건과 재림의 날의 영광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주님의 재림의 날에 대해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재림의 날에 대한 본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강해설교를 요약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6-51절,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예언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시리라"는 말씀은 매우 중요한 예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예측하거나 예상할 수 없는 그 때에 주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 우리가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마지막 때와 주의 재림의 날을 깨어서 준비해야만 합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첫째, 지금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 예수님이 오실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예수님이 오시더라도 주를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지금 살아가는 일상에서 성실하게 살아감으로써 예수님께서 재림하셨을 때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그 때를 준비해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시리라"라는 예언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항상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든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지금 살아가는 삶을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예수님이 오실 준비를 할 수 있으며, 주의 말씀을 따르며,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셋째, 주의 예언은 곧 소망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