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며 부정적 암시를 줌으로써 나를 지배하려 들 때의 상황을 가스라이팅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납치범에게 동질감과 정서적인 교류와 이해를 하게 되는 과정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심리적인 상황은 모두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동화되거나 적응해 가는 과정입니다. 반대로, 가해자가 피해자들에게 동화되어 가는 심리적 과정이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리마 증후군(Lima Syndrome)이라고 부릅니다.
▒ 사건 개요
지난 1996년 12월 17일, 남아메리카의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 있던 일본 대사관에 게릴라 테러리스트들이 침입을 합니다. 이들은 극좌성향의 무장단체인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MRTA) 소속이었는데, 일본 대사관 내에서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잡게 됩니다.
이 무장단체의 일본 대사관 점령 및 인질 사건은 약 5개월이 지난 1997년 4월 22일에 페루 정부군의 기습작전으로 종료가 되었습니다. 종료되던 때까지 무장단체원들은 400여명의 인질들과 함께 일본 대사관 내에서 평화롭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 일본 대사관에 침입했을 당시에는 대사관에 있던 700여명의 인질들을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일본 대사관을 점령한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일부 부녀자들과 노약자들을 차례로 석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사건 종료가 될 때까지 약 300여명의 인질들을 석방하였으며, 처음에는 인질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하였지만, 실제로는 한 명의 인질도 살해하지 않았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대사관 점거 5개월여 동안 테러범들은 인질들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안부 편지를 보내는 것을 허락하였으며, 의약품류의 반입도 허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의식을 진행하도록 하였으며 심지어는 인질들에게 테러범들이 자신들의 사정을 털어 놓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테러범들이 인질들에게 동화되어 가며 자신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페루 정부의 특공대가 기습작전을 펼치면서, 테러범들은 모두 사살 당했으며 그 과정에서 판사 1명도 살해 당하게 됩니다.
▒ 리마 증후군
원인
무장하여 대사관을 강제 점거한 테러리스트들이 왜 인질들의 요구들을 모두 들어주고 그들과 공감하게 된 것일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하듯이 인질들을 대함으로써 서로간에 공감을 가지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심리학자들 중의 일부는, 리마에서 벌어진 이 사건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어쩌면 강제점거하기를 원치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무장하여 대사관을 점거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테러리스트들의 가족이나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테러리스트로서 대사관을 점령하고 인질을 붙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경우, 강제적이고 폭력적으로 인질범들을 다루지 않고, 오히려 연민으로 다가가게 될 수가 있습니다. 위의 리마 사건에서도, 테러리스트들이 인질범들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털어 놓기도 했다는 내용들이 바로 이러한 해석에 설득력을 더해 줍니다.
또 다른 이들은, 테러리스트가 대사관을 점령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에, 오히려 인질들에게 호의를 베풀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페루 정부에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고, 탈출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는 사실에 자포자기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체념하고 오히려 인질들의 요구사항들을 거의 다 들어주었다고 설명합니다.
정의
그러므로 리마 증후군은 한 마디로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납치한 사람이 자신이 붙잡고 있는 인질들에게 동화됨으로써, 폭력적으로 인질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감하고 호의를 베푸는 심리적 이상현상
특징
이런 과정에서 납치한 사람들과 인질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정서적 공감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 납치범과 인질들 사이에 교감을 나누는 대화를 하게 된다.
- 납치범들이 인질들의 건강 상태나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게 된다.
- 납치범들이 인질들과 개인적인 사생활을 나누고 털어 놓게 된다.
- 납치범들이 인질들의 안전을 확실한 어조로 보장할 수 있다.
- 납치범들이 인질들에게 자유를 허락하거나 석방한다.
납치범들이 오히려 인질들을 더 염려하고 걱정하는 심리적인 상황이 리마 증후군의 특징입니다. 납치범들은 자신들이 인질들을 억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질들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이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납치범들이 인질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스라이팅, 스톡홀름 증후군과의 차이점
가스라이팅 현상은, 피해자를 가해자가 억압하고 폭력적인 언행을 통하여 다치게 만들거나 조종을 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종속되거나 그 폭력상황을 인정하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당하는 사람이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게 됩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자신을 납치한 납치범의 상황과 현실에 대하여 피해자가 깊은 공감을 하게 되고 정서적인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납치범을 자신의 보호자로 인식하게 되어 신뢰를 가지고 따르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이에 반해, 리마 증후군은 납치범이나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에게 공감이 되어, 피해자를 살피고 챙기며 염려하게 되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 나가면서
한발짝만 뒤로 물러나서 생각해 보면, 리마 증후군 속에 등장하는 납치범이나 피해자들 모두가 극한 상황 속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질들은 납치범에 대한 어떤 공감이나 긍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한 상황 속에서는 인질들과 납치범 모두가 지금의 현실에 대한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납치범들이 인질들에게 자유를 주고 많은 것을 허락할 때, 언제든지 납치범들을 제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질들은 납치범들에게 공감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단순히 이성적인 해석과 분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사람의 심리는 복잡다단하며 한 가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지성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공감과 유대 관계를 통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가스라이팅과 스톡홀름 증후군, 그리고 리마 증후군까지의 독특한 인간의 유대 관계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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