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는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감사의 영성을 더 깊게 해 줄 한센병 환자와 관련된 누가복음 17장을 배경으로 한 추수감사주일 설교 요약입니다.
감사의 영성
한센병 환자가 예수를 만난 방법
-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셨다. (눅 17:11-12)
고대 유대사회에서 한센병 환자들의 삶의 모습은 레위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입은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야 한다. 또한 그는 자기 코 밑 수염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하고 외쳐야 한다. 병에 걸려 있는 한, 부정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되므로, 그는 부정하다. 그는 진 바깥에서 혼자 따로 살아야 한다. (레 13:45-46)
한센병 환자는 첫째, 옷을 찢고 머리를 풀었습니다. 죽은 자를 애도할 때 슬픔과 애통을 표현하는 히브리적 방법입니다. 자신을 죽은 자로 간주하는 상징입니다. 둘째, 윗입술을 가렸습니다. 자신의 입술을 치는 행위로 자신을 비하 하는 것입니다. 셋째,‘ 부정하다', '부정하다’를 외쳤습니다. 자신은 종교적으로 부정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넷째, 진영 밖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마을에는 거룩한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에 부정한 한센병 환자는 마을에 거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한센병 환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한센병 환자들은 예수를 향하여 크게 외쳤습니다(눅17:13).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헬라어로 ‘'Ἰησοῦ ἐπιστάτα, ἐλέησον ἡμᾶς"입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것이 한센병 환자들이 예수님을 만난 통로였습니다. 그래서 4세기 초대 교회는 예배를 시작하면서 “Κύριε ἐλέησον"(퀴리에 엘레에손),“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러한 마음이 주님을 만나는 시작점이 됩니다.
가는 길에 치유되다
- 예수께서는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눅 17:14).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고백하는 한센병 환자 열 명에게 제사장들을 찾아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는 이유가 레위기 14장 1-7절에 있습니다. 한센병 환자라는 판정과 치유 판정을 제사장들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사장에게 가다가 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를 만난 열 명의 한센병 환자들은 치유를 받았습니다. 열 명이 한센병 환자라는 것, 예수를 만난 것, 치유 받은 것, 여기까지는 같습니다. 이제 열 명에게 다른 점이 나타납니다.
열 명 중에 단 한 명
-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되돌아와서… (눅 17:15)
열 명 중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 이방인 하나가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건인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한 것도 아닙니다. 우연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신 하나님의 사건임을 알았습니다.
-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눅17:16)
그래서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영성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눅 17:17)
예수께서 질문하였습니다. 나머지 열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왜 감사를 드리지 않느냐’라는 질문보다도 ‘하나님이 개입하신 하나님의 사건인데, 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리에 없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여기에서 예수의 관심은 감사보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 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눅17:18)라고 물으셨습니다. ‘감사를 드리러 온 자가 없느냐’라고 묻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의 관심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열 명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은혜에 응답을 한 것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눅 17:19)
믿음과 감사의 영성
예수께서 말씀하신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열명이 몸의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명만 구원을 받았습니다.‘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는 예수를 만나는 통로, 치유의 통로였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통로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진정한 감사의 영성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내가 영광을 받으려는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교회 성장주의를 통하여 교회가 영광을 받으려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진정한 감사의 영성이 없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자신을 교회의 주인으로 여기면서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진정한 감사의 영성이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과 감사의 영성이 사라지고 있는 추수감사절, 슬픈 감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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