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ker

6/recent/ticker-posts

열왕기하 18장 1절-8절, 히스기야가 실시한 종교개혁 - 묵상과설교

 

느후스단 파괴



기울어져 가는 유다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하여, 히스기야는 왕이 된 이후 과감하게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잘못된 자세를 바로잡고 각종 우상 숭배의 대상이었던 우상들과 산당들을 제거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디를 가든지 형통할 수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18장 1절-8절, 히스기야가 실시한 종교개혁


새찬송가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개혁과 생명력


갈릴리 바다와 사해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흔히 말하길, 갈릴리 바다는 민물이고 사해는 지나치게 짠물이며 그래서 갈릴리에는 생물이 살고 사해는 생물이 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에 따른 해석으로는, 갈릴리는 물을 흘려 보내기 때문에 민물이 되며 사해는 받기만 할 뿐 흘려 보내지 않기 때문은 죽음의 바다라고 말합니다.

상당 부분 맞는 말입니다. 헤르몬 산의 만년설이 녹아 내린 물들이 상부 요단강을 거쳐 갈릴리 호수를 채우고, 갈릴리 호수로부터 하부 요단강이 흘러 내려가서 사해의 물을 채웁니다. 그러나 사해는 더 이상 물을 흘려 보내지 못합니다. 주변이 온통 광야지역인데다가 강수량도 극히 적어서 아래로 흘려 보낼 물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사해가 물을 흘려 보내지 못함으로써 사해의 물이 증발되고, 물 속에 남아 있던 미량의 염분과 주변 지형의 암염들이 녹아 내려 염도가 높아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자의든 타의든 물을 흘려 보내지 않음으로 인해 사해는 생물이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매 순간 개혁되어야 합니다. 개혁이란, 과거의 것을 새롭게 뜯어 고친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우리의 것 지금까지 해 온 것만을 고집할 때, 사해와 같이 변화 없는 바다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결국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그리고 모든 교회 공동체는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고 또 흘려 보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할 때 생명력이 있고 살아서 역사하는 성도,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선택, 종교개혁


히스기야는 현재 자신의 시대의 문제점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는 유다 백성들의 모습은, 진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때로는 바알이나 아세라 신당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동족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고 했는데, 일부 귀족들과 부자들은 이자 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또, 모든 땅은 하나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의 땅을 몰수하여 자기 것인양 사고 파는 부동산 투기를 하였습니다.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도 사라져 갔습니다. 더이상 하나님에 대해 유대인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하나님 말씀을 잊어 버렸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왕이 된 히스기야는 "종교 개혁"을 결단합니다. 유다 나라의 모든 문제, 부정과 부패와 부도덕함과 부패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은데서 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조상 다윗을 본 받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서기 위한 각오와 결단으로 개혁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한 종교 개혁을 시작한 히스기야의 결단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바른 신앙을 가지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가나안의 신들과 하나님을 같이 섬겼던 이스라엘과 남유다는 하나님께 제사드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산 꼭대기에 산당을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산당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산당의 원래 목적과는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기보다 우상을 숭배하는 장소로 변하게 되고, 산당에서 머물며 일하는 사람들과 성적인 타락까지 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종교 개혁에 나서게 됩니다.

  • 열왕기하 18:4상,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 백성들이 애용하던 산당과 그 속에서 유다 백성들이 제사하던 주상들과 아세라 목상을 찍어 불태워 버렸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성적인 쾌락을 즐기던 곳이 사라졌으니, 얼마나 큰 반발들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히스기야는 세속적인 영향을 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겠다는 결단을 가지고 산당과 우상을 제거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 받는 인기와 존경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과감하게 종교개혁을 실시하였습니다.

교회 안에 세속적인 이념이나 가치, 세속적인 즐거움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교회의 능력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교회는 더이상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세상과 똑같게 변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바른 신앙을 살아가기로 결단하고 말씀대로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성도의 모습입니다.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끼쳐 세상을 주의 말씀으로 정결하게 만드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둘째, 과거의 적폐를 깨뜨리고 현재의 바른 신앙으로 돌아가는 결단을 하였습니다.

출애굽 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평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셔서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장대에 놋뱀을 만들어 달고 그것을 보는 사람마다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얼른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 높이 세웠으며, 말씀대로 놋뱀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회복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 놋뱀은 히스기야 시대까지 약 700여년이나 우상과 같이 유다 백성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마치 성황당이나 돌탑과 같이, 느후스단 즉 구리 뱀에 제사를 지내면서 회복을 빌었습니다.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구리 뱀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우상 숭배임을 깨닫고, 조상들의 역사이지만 과감하게 깨뜨려 버렸습니다.

  • 열왕기하 18:4하,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נְחֻשְׁתָּן)이라 일컬었더라

참 신앙은 과거의 신앙의 유산을 귀하게 여기지만 그것을 절대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유산이 현재의 말씀에 비교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상의 유산은 유산이며, 오늘 우리가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과거의 신앙의 유산이 절대적이어서는 안되며,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유다 백성들과 제사장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느후스단을 깨뜨려 더이상 우상 숭배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과거에만 얽매여 살다보면, 앞으로 주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과거에 내가 대단했었지라고 말하는 것은, 그 순간 자신에게 만족을 줄 수는 있겠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물이 될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의 말씀입니다. 한결같이 능력을 베푸시는 주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셋째, 풍요만을 쫓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결단을 하였습니다.

세속적인 풍요와 쾌락과 행복을 상징하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제거하고 산당을 없앴으며, 과거의 유산을 숭배함으로 인하여 느후스단까지 제거하는 종교 개혁을 히스기아야 단행하였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왕이라고 해서 함부로 행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이같은 과감한 종교 개혁을 하나님을 의지하며 실시하였습니다.

  • 열왕기하 18: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히스기야는 당연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의 확신에 대한 단어가 "의지하다"(בטח, 바타흐)입니다. 현대 히브리어에서도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을 말할 때, 일반적으로 'בֶּטַח'(베타흐)라고 말합니다. 우리 말로 옮긴다면, "당근이지"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이 성도의 당연한 삶임을 알았기에 과감하게 종교개혁을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도 세속적인 가치를 떠나 하나님만을 사랑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세상적인 욕심과 만족은 잠깐 부는 바람과도 같습니다. 금방 사라지고 말 아침 안개와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곧 사라질 세상적인 만족과 기쁨을 추구하며 살았다면, 지금이라도 즉시 회개하고 개혁해야만 합니다. 개혁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잘못가던 길을 돌이켜 바른 길을 걷는 것이 개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언제든지 종교개혁가가 되어야만 합니다.



믿음의 종교개혁가, 히스기야


성도 여러분!

히스기야가 세속적인 쾌락과 우상 숭배와 과거의 잘못된 신앙에서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섬기는 종교개혁을 단행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가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되고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무엇입니까?

열왕기하 18:7-8,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이 말씀과도 같은 축복이 또 있겠습니까? 무엇을 하든지 잘 되고 손을 대는 일들마다 형통하였더라는 복보다 더 큰 복이 있을까요?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르고자 결단한 그에게 하나님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게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과감하게 세상적인 즐거움을 끊고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종교개혁의 길로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말씀을 사모하고 오직 은혜를 구하며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이 시대의 종교개혁자들에게 형통의 복을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참고할 글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