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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2장 15절-33장 7절, 망언과 왜곡된 말

오늘 본문인 욥기 32장 15절부터 33장 7절의 말씀은, 엘리후를 통하여 말하기 원칙을 교훈하는 내용입니다. 엘리후는 충분히 생각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말하며,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고 말하라고 조언합니다. 망언과 왜곡된 말을 피하고 신중하고 책임 있는 말을 합시다.


욥기 32장 15절-33장 7절, 망언과 왜곡된 말


욥기 32장 15절-33장 7절, 망언과 왜곡된 말



내용의 개요 1 : 엘리후의 발언


1. 본문

엘리후는 욥이 자신에게 죄가 없고, 하나님께서 이유 없이 그를 징벌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그는 욥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믿지만, 그가 죄를 짓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난받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욥을 징벌하신 이유가 욥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욥을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욥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나타내 보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고난을 주셨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자신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는 욥이 하나님께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고난을 끝내시고,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2. 엘리후의 주장

엘리후는 욥이 죄를 짓지 않았지만, 그가 고난받는 이유가 죄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욥을 회개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고난을 주셨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엘리후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근거에 기반합니다.

  • 욥은 자신에게 죄가 없고, 하나님께서 이유 없이 그를 징벌하신다고 주장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징벌하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고난을 주십니다.

엘리후의 주장은 욥의 주장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욥은 자신이 죄가 없기 때문에 고난받는다고 주장하지만, 엘리후는 욥이 죄가 없더라도 고난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엘리후의 주장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도 일치합니다. 예를 들어, 잠언 3:11-12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를 징계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회개시키고, 우리를 바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3. 결론

엘리후의 주장은 욥의 주장과는 다릅니다. 엘리후는 욥이 죄가 없더라도 고난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주장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도 일치합니다.



내용의 개요 2 : 엘리후의 말에서 엿보이는 말하기 원칙


엘리후는 욥기의 마지막 친구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욥의 세 친구들처럼 욥을 책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욥의 고통에 대해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며 위로를 건넵니다. 엘리후의 말에서 몇 가지 말하기 원칙을 엿볼 수 있습니다.


1. 충분히 생각한 후에 말하라.

엘리후는 자신의 말이 욥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충분히 생각한 후에 말을 합니다. 그는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욥 32:18)고 말하며, 자신의 말에 대한 확신을 표현합니다.

말은 생각의 산물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하더라도,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섣불리 내뱉는 말은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을 할 때, 먼저 충분히 생각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며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정직하고 진실하게 말하라.

엘리후는 자신의 말에 정직하고 진실함을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내 마음의 정직함이 곧 내 말이며 내 입술이 아는 바가 진실을 말하느니라"(욥 33:3)고 말하며, 자신의 말의 진실성을 강조합니다.

말은 신뢰의 바탕이 됩니다. 정직하고 진실한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고,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을 할 때, 진실함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3. 입만 아니라 귀도 열고 말하라.

엘리후는 욥의 말을 충분히 듣고, 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말을 합니다. 그는 "그대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욥 33:5)고 말하며, 욥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듣지 않고 말을 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닫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을 할 때, 먼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말의 중요성

이러한 말하기 원칙은 엘리후의 말에서만이 아니라,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잠언 15:23은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말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12:36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 우리는 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말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을 할 때,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해야 합니다.



설교문 요약 : 망언과 왜곡된 말


1.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2. 주제 개설

엘리후는 자신이 가진 지혜로 편견없이 욥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32:8, 17). 그러므로 그의 마음은 자신의 말로 가득 차 있다(18-20). 사람의 낯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자기에게 바른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욥의 대적자로, 하나님을 변호하는 자로 서 있다(33:1). 그는 스스로 정직하고 진실하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지혜로 말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한편, 자신도 사람인지라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셔서 두렵게 했던 것처럼 하지 않겠다.고 안심시킨다. 그러나 전혀 위로가 담겨 있지 않다.


3. 설교 방향

'망언과 왜곡된 말'로 설교할 수 있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망언과 왜곡된 말은 듣는 사람을 절망과 좌절에 빠지게 한다. 오늘 엘리후의 말이 그렇다. 엘리후는 하나님께 받은 지혜로써 말한다고 한다. 그의 마음은 정직하고 말은 진실하다. 그러나 그런 엘리후의 말을 듣는 욥은 낙담할 뿐이다. 왜 그런가? 이 자리는 욥을 재판하는 자리가 아니라 위로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엘리후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상황에 따라 분별하여 말해야 한다. 우리는 평화와 위로의 말을 하는 사람이다.


4. 주제 개설 

오늘의 말씀은 '망언과 왜곡된 말입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세상을 떠도는 '망언'을 자주 봅니다.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말로 인해 사람들은 위로보다 절망과 좌절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나오는 엘리후의 말이 그렇습니다. 상황에 맞지 않게 내뱉은 그의 말이 상대를 아주 괴롭게 만듭니다.


5. 본문에 대한 적용적 해석 

엘리후는 자신이 가진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욥을 가르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당당함을 넘어 교만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의 낯을 가리지 않고, 사람의 영광을 위해서 행동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좋은 말 같아 보이지만 욥을 위로하는 자리에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스로 정직하고 진실한 말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단지 욥의 오점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합니다. 욥을 위로하는 이 자리에서 날카로운 질책을 던지는 그의 말은 그야말로 망언이며 왜곡된 말입니다. 교만함에 빠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한 채, 그저 옳은 말만 하려 합니다. 그로 인해 욥은 더욱더 괴로울 뿐입니다.


6. 청중을 향한 해석적 적용 

오늘의 말씀은, '망언과 왜곡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때에 따라 적절하게 판단하고 말해야 합니다. 정직하고 진실한 말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엘리후처럼 위로의 자리에서 상대의 오점을 지적하려고 이런 말을 사용해선 안 됩니다. 상황에 맞게 말해야 합니다. 아무리 성경 지식이 뛰어나고 은사가 있으며, 세상 지식이 많더라도, 상황에 맞지 않게 말한다면 그저 망언이며 왜곡된 말일 뿐입니다. 그것이 상대방에게 회복되기 힘든 상처를 만들어 믿음이 흔들리고, 교회를 미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상황을 늘 고려하고 판단자로 서기에 스스로 부족한 인간임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 말로만 사랑을 외치겠습니까? 우리의 말은 망언과 왜곡된 말이 아니라 평화와 위로의 말이 되어야 합니다.


7. 결론과 도전 

세상 사람들이 던지는 망언에도 눈살을 찌푸린다면, 평화와 위로의 말을 해야 할 성도의 망언은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교만치 않고 늘 상황을 분별하여 말하는 성도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참고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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