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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설교] 누가복음 10장 17절-37절, 강도 만난 자와 사마리아인 - 기독공보 가정예배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한 사람은, 유대인들이 부정한 자로 여기던 사마리아인에게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7절부터 37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강도 만난 자와 사마리아인에 대한 기독공보 제공의 가정예배 설교문을 나눕니다.


묵상과 설교 기독공보 가정예배, 강도 만난 자와 사마리아인



누가복음 10장 17절-37절, 강도 만난 자와 사마리아인



누가복음 10장 17절-3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아멘!



찬송가


새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강도 만난 자와 사마리아인


생명책에 기록된 기쁨

예수님께서 칠십 인을 따로 세워서 둘씩 짝을 지어 전도 여행을 보내셨다. 그리고 그들이 기뻐하며 돌아와서 주님께 보고하기를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들의 수고를 격려하신 후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기쁨의 이유를 이 땅에서 찾는다. 천국을 소유한 성도라면 이런 이 땅에서 주어지는 기쁨보다는 구원의 이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내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기쁨을 가져야 한다.


영생을 얻기 위하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중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것은 영생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영생에 대해서 물었다. 궁금함보다는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 율법교사의 대답-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유도하신 다음, 율법교사에게 진짜 내 이웃이 누구인지에 대해 강도 만난 사람을 설정하여, 그 강도 만난 사람을 대하는 이들 중 누가 진짜 이웃인지 말씀하셨다. 이웃이라 함은 공간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신분상에서 얼마든지 이웃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을 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결국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데, 율법교사는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율법교사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강도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다. 이때 한 제사장과 한 레위인은 보고 그냥 지나갔지만 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겨 잘 돌보아 주었다. 그렇다면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는가?"라고 예수님께서 율법교사에게 물으셨을 때, 율법교사는 당연히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이웃의 개념을 바로 정립시켜 주시는데, '내가 나를 고르는 것에 따라 이웃이 골라진다'는 의미이다. 지금 여기서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은 사마리아 사람이다. 나의 선택 즉,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선택해야 이웃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이웃으로 받아들여야만 정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되는 것이다.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

다시 강조하면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 당연히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율법교사와 강도 만난 사람이 동일시 된다. 즉 이 율법교사는 천국을 강도 당했다. 그래서 율법교사에게 천국이 회복 되려면 사마리아인처럼 취급받는 예수님 자신을 이웃으로 받아 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내가 강도 당한 자가 아닌 다른 나를 고르고 나면 예수님은 내게 구원을 주시는 이웃이 아닌 게 되고, 예수님은 내 삶의 수단에 불과해 진다. 이런 것에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서 오직 생명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출발한다.



오늘의 기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다가오신 주님을 온전히 믿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독공보/박종반 목사/은혜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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