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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4장 16절-30절, 긍휼이 없는 하나님의 통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설교 자료

욥기 34장 16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은 엘리후의 발언입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며, 모든 사람들의 길을 감찰하시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고 말합니다. 고난의 의미도 담고 있는 본문의 큐티와 새벽설교를 위한 자료를 정리하였습니다.


욥기 34장 16절-30절, 긍휼이 없는 하나님의 통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설교 자료


욥기 34장 16절-30절, 긍휼이 없는 하나님의 통치?



본문의 개요 1 : 엘리후의 주장, 과연 타당한가?


1. 내용

엘리후는 하나님이 결코 실수가 없으신 분이기에, 몸에게 임한 고난도 철저히 '보응원리'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

욥은 자신의 무고한 고난과 주변 악인들이 득세하는 상황을 직시하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를 의심했습니다. 다시 말해 '보응원리(의인은 잘되고 악인은 형벌을 받는다.)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엘리후는 이런 욥의 주장에 반기를 듭니다. 하나님은 결코 공의를 굽히지 않으신다며 말입니다. 엘리후에 따르면, 하나님은 소위 세상에서 힘 있다는 왕, 지도자, 고관부자라 할지라도 봄의가 드러나면 한밤중에라도 그들의 생명을 거둬가시는 분입니다(18~20), 나아가 사람의 길을 항상 감찰하시고(21), 악행이 드러나면 신속히 심판하십니다(23-25)

하나님은 자신을 떠나거나 불순종하는 자들을 치시고 (26-27),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않으며(28) 불경건한 자가 권세를 잡지 못하게 하여 백성을 보호하십니다(30)


3. 엘리후의 주장의 문제점

엘리후의 말이 맞다면 세상은 '보응 원리를 따라 악인이 즉각 심판받고 의인은 항상 잘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욥의 상황과 주변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이는 매우 비현실적인 주장입니다. 오늘날에도 보응 원리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까?


4. 하나님의 개입 시점

그렇다면 엘리후가 말하는 '보응원리'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우선 보응원리 자체가 틀렸다고 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의인과 악인을 선악 간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한편, 엘리후의 문제는 그가 보응원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악인에 대한 심판이 즉각 입하는 것처럼 설명하는 데 있습니다. 나아가 그는 욥의 고난이 죄가 아닌 사탄의 공격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사실 욥기를 기록한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런 오해를 바로잡기 위함입니다.


5. 욥기의 가르침

욥기의 신학적 중심인 28장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개입 시점은 우리가 알수없습니다. 비록 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신뢰하며 하나님이 사탄과 악인을 심판하실 그때를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고난받는 성도가 취해야 할 바른 자세라고 말합니다.


6. 나의 결론

엘리후의 주장은 의인의 고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보응원리를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측면도 있습니다. 욥기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고난과 악의 문제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임을 재차 깨닫게 됩니다. 고통을 겪는 중에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신뢰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본문의 개요 2 : 엘리후의 주장


1. 요약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을 정죄하는 것을 반박하면서,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시며, 모든 사람들의 길을 감찰하시고,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공의로우신 분임을 강조합니다.


2. 핵심 구절

"하나님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7절)

"그는 사람을 질병으로 징계하시고 그의 육체를 고통으로 괴롭게 하시나니 이는 그의 영을 구덩이에서 건지사 구별하여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19-20절)

"사람이 지혜를 얻고 깨닫게 되어 하나님께 돌아오고 그의 손을 펴서 그에게 간구하면 하나님은 그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그의 불법을 더 이상 기억지 아니하시리라" (23-24절)


3. 묵상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첫째,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하시고, 죄악을 심판하시며, 의로운 자를 보상하십니다.
  • 둘째,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삶을 관심 있게 지켜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실을 감찰하시고,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면 징계를 내리기도 하지만,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십니다.
  •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통해 우리를 성장시키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고난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그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설교문 요약 : 긍휼이 없는 하나님의 통치?


1.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408장,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2. 본문 이해

엘리후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에 대한 변호를 이어간다. 왕으로서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 영역에는 한계가 없다. 세상의 권력자나 부자, 혹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까지 통치의 대상이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통치가 모든 민족과 모든 악한 자들에게 공의롭게 시행된다고 확신한다. 그는 욥의 말을 염두에 두면서 하나님의 침묵을 이야기한다. 그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누구도 정죄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엘리후의 주장은 옳으나 완전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를 완전히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28:13).


3. 설교 방향

'긍휼이 없는 하나님의 통치?'로 설교할 수 있다. 엘리후는 세상 권력자를 향하여 공의로운 통치를 행하시는 하나님을 변호한다. 그러나 엘리후의 말대로 악한 지도자를 향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을 현실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 실현된다면, 판단자의 자리에 서 있는 엘리후는 어떻게 되는가? 까닭 없는 고난으로 신음하는 자를 위로하지 않는 그는 악인이요 심판 받을 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말을 하는 그를 즉각 심판하지 않으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긍휼로써 세상을 통치하신다.​


​4. 주제 개설 

오늘의 말씀은 '긍휼이 없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물음표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하신 분이기에 긍휼 없는 통치는 있을 수 없습니다.


5. 본문에 대한 적용적 해석 

엘리후는 세상의 권력자와 부자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편견 없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변호합니다. 고위 고관들이라도 악인이라면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엘리후의 말과 달리 현실은 너무 다릅니다. 악한 지도자들이 그대로 통치하며, 그들의 통치로 고통 받는 자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엘리후에게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보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까닭 없는 고난 가운데 신음하는 욥을 위로하기보다 판단자로 서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안다고 자처하며 욥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단히 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말을 하는 그를 즉각적으로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긍휼로 이 세상을 공의롭게 통치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악인을 즉각적으로 벌하지 않으셔서 원망스럽지만, 그런 긍휼하심 덕분에 나도 살아 있음을 깨닫습니다.


6. 청중을 향한 해석적 적용 

오늘의 말씀은, '긍휼이 없는 하나님의 통치?' 입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판단하는 자로 서 있었습니다. 긍휼한 마음을 품지 않고 상대를 정죄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볼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엘리후와 같이 우리를 대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도 실패하여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나를 사랑하느냐?” 하며 물으셨습니다. 이처럼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덕분에 우리가 위안과 소망을 얻습니다. 그러나 한편 악인에 대한 심판이 늦어지고, 의인이 까닭 없는 고난을 당하는 것이 여전히 한탄스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욥기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내로써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7. 결론과 도전 

긍휼하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십니다. 그러니 긍휼하심에 감사를, 악인의 심판에 대해서는 인내를, 고난당하는 이웃에게는 긍휼로 대하는 성도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참고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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