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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3장 19절-33절, 진정한 중보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설교 자료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욥기 33장 19절부터 33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징계와 중보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징계는 회개와 성장을 위한 것이고, 중보는 구원과 화해를 위한 것입니다. 이 은혜를 바라볼 때, 우리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욥기 33장 19절-33절, 진정한 중보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설교 자료


욥기 33장 19절-33절, 진정한 중보자



내용의 개요 1 : 엘리후는 욥의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1. 내용

엘리후는 욥의 고난이 숨겨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때문이라 말합니다. 회개만이 모든 회복의 첩장이라는 권면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합니다.


2. 하나님의 징계?(19-28)

앞서 엘리후가 엘리바스의 비전(4:12-21)은 욥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기 위해 주어졌다고 했습니다. 이제 엘리후는 욥의 재앙을 하나님의 징계와 연결합니다. 욥이 재산, 자녀, 건강을 다 잃고 지금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것은 (19-22), 그를 회개시키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징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엘리바스도 욥의 고난을 하나님의 징계와 연결했습니다(5:17), 특히 이를 위해 하나님이 일천 천사 가운데 한 중보자를 보내셨다고 말하는데(23), 이는 일차적으로 엘리바스의 비전의 영적 존재를 가리키고, 나아가 비전에 기초해 회개를 촉구하는 세 친구 및 엘리후 자신을 지칭합니다. 엘리후는 '회개만이 현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말하며(23), 그렇게 할 때 놀라운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24-28).

지금 상황에는 전혀 맞지 않는, 바른 교훈처럼 들리는 말을 억지로 맞추지는 않습니까?


3. 경고를 들으라(29-33)

엘리후는 다시 한번 하나님이 욥에게 침묵하지 않으심을 강조합니다(29) 하나님은 엘리바스의 비전과 세 친구 및 엘리후 자신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14-16, 23) 반복되는 징계 가운데 욥이 회개하고 회복되기를 촉구하고 계시다고 말합니다(29) 이런 의미에서 엘리후는 욥이 자신의 말을 계속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31-33) 흥미로운 점은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23)의 밑줄 친 글자를 모으면 "내(엘리후)가 지혜로 그대를 가르치리라"(33%)의 밑줄 친 히브리어 표현과 일치하는데, 이는 엘리후가 스스로를 "일전 천사 가운데 한 중보자'로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엘리후는 비전의 영적 존재 및 세 친구의 계보를 잇고 있는 자신의 말을 듣고 회개함이 욥의 살길이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어리석은 세 친구의 모습을 계속 답습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고 있습니까? 나는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며, 엘리후와 세 친구의 생각을 답습하고 있지 않습니까?


4. 결론

엘리후의 주장은 바른 교훈처럼 들리지만, 욥의 경우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욥은 죄가 아닌 신실함 때문에 고난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후는 욥의 고난을 하나님의 징계로 해석함으로써, 욥의 고난을 이해하는 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또한, 엘리후는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며, 욥에게 회개를 강요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5. 나의 상황과 관련하여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욥과 같은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에 대한 해석은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고난이 하나님의 뜻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해석이 옳은지는 각자의 신앙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후의 주장처럼,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고난받는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내용의 개요 2 : 징계와 중보의 은혜


1. 내용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징계도 은혜요. 중보자를 통해 죄를 사하심도 은혜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건대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징계를 베푸시는 은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때때로 징계를 내리십니다. 징계는 우리를 깨우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사람을 깨우치기 위해서 그에게 질병과 고통을 주시는 때도 있다."(욥기 33:30, 현대인의 성경)

우리에게 임하는 고통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하나님께서 잔인하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실이 그만큼 깊고 크기 때문입니다.


3. 중보자를 세우시는 은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사하고,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드리셨으니 이는 우리 죄를 대속하려 하심이라"(로마서 3:24)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참된 중보자이십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화해할 수 있습니다.


4. 영혼을 건지시는 은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징계하시고, 중보자를 세우시고, 이러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행하심은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욥기 33:30)

하나님의 징계와 중보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은혜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이 은혜를 바라볼 때,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에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

때로 우리의 삶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도, 주님의 사랑과 섭리를 신뢰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주님의 사랑과 섭리를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순탄하게 흘러갈 때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에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징계하시고, 중보자를 세우시는 이유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때,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는지 신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교문 요약 : 진정한 중보자


1.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


2. 본문 이해

엘리후의 말이 이어진다. 그는 욥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지닌 교훈적 측면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과 자비를 강조한다(25-30). 엘리후는 천사가 범죄한 사람의 중보자가 되어 그에게 정당함을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23). 그는 천사의 중보와 대속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신다고 한다. 사실 엘리후 자신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욥의 문제는 회개의 문제가 아니다. 엘리후는 욥의 대답을 기다리지만, 욥은 대답하지 않는다(31-33). 다만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뿐이다.


3. 설교 방향

'진정한 중보자'를 설교할 수 있다. 중보자가 메시지의 핵심이다. 중보자는 욥이 간절히 찾았던 천상의 존재이다(9:33; 16:19; 19:25), 이에 대한 응답으로 엘리후는 중보자를 소개한다. 여기서는 엘리바스와 엘리후에게 '하늘의 지혜'를 깨닫게 해 준 존재이며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이 있는 엘리후이다. 욥의 의로움을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닌 회개를 촉구하는 중보자이다. 욥은 그와 같은 중보자를 의지하지 않고 '하늘의 중보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는 참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4. 주제 개설 

오늘의 말씀은 '진정한 중보자' 입니다. 교회 가운데도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대변하며 가르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분명 교만한 태도이며, 하나님 앞에서 죄악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대변하여 욥을 가르치려 하였습니다. 엘리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 본문에 대한 적용적 해석 

엘리후가 '중보자'를 언급합니다. 이 중보자는 자신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혜를 깨닫게 해 준 영적 존재입니다(32:8,18 ; 33:4). 갑자기 중보자가 왜 나왔을까요? 욥이 중보자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증언해 줄 존재입니다. 이 땅의 위로자들은 자신의 의로움을 증언해 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욥은 더욱 하늘의 중보자를 기다렸습니다. 그런 가운데 엘리후는 '또 다른 중보자'를 제시하였으며, 이 중보자가 욥을 바른 길로 이끌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중보자는 엘리후 자신을 뜻합니다. 회개하라는 내 말을 들으면 용서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엘리후는 진정한 중보자가 아니며 될 수도 없습니다. 까닭 없는 고난 속에 있는 욥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일 뿐입니다.


6. 청중을 향한 해석적 적용 

오늘의 말씀은, '진정한 중보자' 입니다. 글자로 된 엘리후의 말만 보아도 그가 교만하며, 신뢰할 수 없는 자인 것을 느낍니다. 엘리후는 정말 마음이 교만으로 가득 찬 자입니다. 욥이 오히려 엘리후의 말을 분별합니다. 그는 엘리후의 말에 답변하지 않음으로 자신의 태도를 견지합니다. 욥은 여전히 자신을 진정으로 변호해 줄 중보자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욥이 중보자를 알지 못하는 중에 끝까지 인내하였다면, 참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요일 2:1-2)를 아는 우리는 더욱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 가장 믿을 만하고 신뢰할 만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참된 길로 인도해주시고, 우리의 의로움을 변호해 주실 것입니다.


7. 결론과 도전 

우리의 참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욥이 하늘 중보자에 대한 확신을 끝까지 가지고 있던 것처럼 진정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끝까지 붙드는 성도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참고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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